13일 서울 대치동의 한 식당에서 만난 대학생 박모씨(21)는 서울 주요 대학 기계공학부에 재학 중이다. 재수 끝에 들어간 학교지만, 한 번 더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 대치동 스터디카페에 등록했다. 그의 목표는 ‘반도체 계약학과’ 진학이다. 박씨는 “성과급을 10억원까지 받을 수 있다는 뉴스를 보며 확실한 보상체계에 끌렸다”며 “입학과 동시에 취업 걱정을 덜 수 있는 만큼 지금 투자하는 시간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입시 업계에서 더 이상 대학 서열은 무의미해졌다. 최상위권의 진로가 의약학계열, 반도체 계약학과, 로스쿨 연계 문과 최상위 학과라는 세 개 축으로 재편되면서다. 경기가 어려워지고 취업난이 심화된 것도 반도체 계약학과의 인기가 높아진 배경이다. 삼성전자 계약학과인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와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 경쟁률은 각각 5.84 대 1, 5.33 대 1을 기록했다. SK하이닉스 계약학과인 한양대 반도체공학과는 11.80 대 1, 서강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9.0 대 1, 고려대 반도체공학과는 7.47 대 1을 기록했다. 고려대 생명과학과 경쟁률은 2.96 대 1, 연세대 기계공학부는 2.95 대 1에 그쳤다.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대기업의 실적 개선과 주가 흐름, 고액 성과급 등이 반도체 전공의 매력을 키우면서 최근에는 반도체 계약학과가 의대와 견줄 만한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의약학계열 지원자들이 정시 원서를 쓸 때 ‘의대 두 곳, 반도체 계약학과 한 곳’을 세트로 묶어 쓰는 전략을 주로 활용하면서 의대와 반도체 계약학과 지원자가 겹치기 시작했다. 주요 대학에서 반도체 계약학과의 합격선이 의대 다음으로 높아진 배경이다. 2025학년도 연세대 자연계열 정시모집 합격선(국수탐 백분위 70% 기준)을 분석한 결과 의예과(99.25점) 치의예과(97.75점) 약학과(96.25점)에 이어 시스템반도체공학과(95.59점)가 4위에 올랐다. 시스템반도체공학과의 합격선이 생명공학과(94.0점) 첨단컴퓨팅학부(94.0점)보다 높았다.
신창환 고려대 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이번 AI발(發)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의대에 미친 한국’을 ‘공대에 미친 한국’으로 만드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라며 “공대 부활로 반도체뿐 아니라 기계 항공우주 등 공학 분야 전반이 고소득·고성장 산업으로 자리잡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재연/최영총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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