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한국 증권사의 '호의' 걷어차는 개미들

입력 2026-04-15 11:39   수정 2026-04-15 11:40

“한국에선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분석이 공공재다.”

많은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애널리스트가 이같이 토로한다. 고액을 지불한 일부 고객에게만 애널리스트 리포트가 제공되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계좌를 개설한 증권사의 리서치센터가 발간하는 리포트를 공짜로 볼 수 있다.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시작한 증권사의 '호의'를 '권리'로 인식한 일부 투자자가 몰상식한 행태를 보이며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자신이 보유한 특정 종목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제시한 애널리스트를 비난하며 소속 증권사에 항의하고 금융당국에 무고성 민원을 넣기도 한다.

심지어 2023년 11월에는 한 2차전지 종목 주가의 과열을 지적한 담당 애널리스트가 물리적으로 공격당하는 일도 발생했다. 결과적으로 그 애널리스트의 지적은 옳았고, 2차전지 관련주 주가는 캐즘(신문물의 대중화 전 수요 감소) 장기화로 2025년 2분기까지 장기 우하향했다.

기업도 애널리스트에게 압력을 행사한다. 최근 주가가 급락한 삼천당제약은 경구용(먹는 알약)으로 개발 중인 비만 치료제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 제네릭에 대한 임상시험이 필요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낸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법적 대응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삼천당제약의 경구용 세마글루타이드가 제네릭으로 인정받아 임상시험보다 절차가 간소한 생물학적동등성시험만으로 미국 시판허가를 받을 수 있을지에 관해선 여전히 논란이 많다.

법적 대응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사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제시한 애널리스트에게 기업이 탐방 기회와 충분한 자료를 주지 않는 일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결국 애널리스트들은 스스로 입단속하기 시작했다. 주가 과열을 지적할 수 없으니 시가총액이 커진 종목에 대한 분석을 내놓지 않는다.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종목에 대한 분석이 실종된 이유다. 현재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 중 7개는 애널리스트의 추정치가 3개에 못 미쳐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가 형성되지 않고 있다.

의견을 제시했다가 반발을 살 만한 종목을 피하자, 이번엔 금융당국이 등장한다. ‘분석의 독립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애널리스트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작년 12월19일 발표한 ‘코스닥 시장 신뢰·혁신 제고 방안’에서 기관 투자가의 코스닥 시장 진입을 유도할 방안 중 하나로 “증권사의 코스닥 기업 대상 리서치 보고서 확대"를 제시했다. 투자 판단에 필요한 정보 제공 기반을 확충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서는 투자의견이 ‘매도’인 리포트가 드물다는 걸 문제삼아왔다. 처음 문제가 제기된 건 10여년 전이었지만 여전히 국내 증권사의 '매도 리포트'를 찾아보기 힘들다. 금융감독원은 작년 가을 몇몇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을 소집해 관련 논의를 했다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당국은 애널리스트가 비판적 분석을 하지 않는 것을 두고 독립적인 분석을 해야 한다고 종용하고, 애널리스트가 비판적인 분석을 내놓으면 기업과 주주들이 들고 일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애널리스트의 전망이 틀릴 때가 있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애널리스트는 미래를 맞히는 예언가가 아니다. 애널리스트의 직접적 고객인 펀드매니저도 참고용으로 그들의 전망을 활용할 뿐, 맹신하지는 않는다. 애널리스트가 전망의 근거로 제시하는 분석의 논리가 타당한지를 따져, 그의 분석을 구매할지 결정한다. 그 논리는 우리가 공짜로 보는 리포트의 본문에 모두 담겨 있다.

공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몇몇 증권사는 애널리스트 분석의 유료화를 위해 외부의 리포트 이용에 제약을 걸기 시작했다. 한국투자증권은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게재된 자사 리포트의 다운로드와 인쇄에 제한을 뒀으며, 일부 리포트는 요약본만 제공한다. 메리츠증권과 DB증권의 일부 리포트도 에프앤가이드에선 요약본만 볼 수 있다.

고도로 훈련된 애널리스트의 분석을 사실상 공짜로 접하는 건 전 세계에서 한국의 소액투자자만 누리는 특혜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증권사들은 불만이 많지만, 한국 주식시장 참여자 전체의 공리(公利) 차원에선 분명히 긍정적이다. 대표적 수혜자인 ‘개미’가 개별 종목의 수익률 때문에 공리의 소멸을 촉진해서는 안 된다. 한 종목에서만 수익을 내고 평생 주식투자를 하지 않을 게 아니라면 말이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삼성바이오로직스현대차삼성전자트럼프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