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꺼냈던 '상호주 카드'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공정위의 판단은 명분 싸움으로 흘러가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공정위가 2014년부터 금지해온 신규 순환출자 형성 금지 규제의 빈틈을 파고든 첫 사례인 만큼 이번 결정은 무게감이 남다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16일 법조계와 공정위 등에 따르면 공정위 기업집단감시국은 고려아연이 지난해 초 해외 계열사를 활용해 순환출자 구조를 형성한 행위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는지에 대한 법리 검토를 거의 마쳤다. 검찰의 공소장에 해당하는 심사보고서 작성을 마무리하는 단계다. 공정위가 최 회장의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기 시작한 지 약 1년여 만이다.
최 회장 측은 MBK파트너스·영풍 연합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던 지난해 1월 임시 주총을 앞두고 고려아연의 호주 손자회사인 선메탈코퍼레이션(SMC)이 영풍 지분을 10% 이상 취득하도록 해 '고려아연→선메탈홀딩스(SMH)→SMC→영풍→고려아연'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만들었다. 이로 인해 상법상 '상호주 의결권 제한'에 걸려 MBK 연합은 임시 주총에서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의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최 회장 측은 같은 해 3월 정기 주총에서도 SMC가 보유한 영풍 지분을 SMH에 현물 배분하는 방식으로 구조를 바꿔 MBK 연합의 의결권 행사를 막고 경영권을 지켰다.
MBK 연합은 최 회장 측이 해외 계열사를 활용해 탈법적으로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하고, 기업집단 규제를 회피했다며 공정위에 최 회장 등을 신고했다. 핵심은 최 회장 등이 공정거래법 36조를 위반했는지다. 이 법은 규제를 회피하려는 행위 자체를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 위반이 아니더라도 규제를 피하려는 목적의 탈법 행위라면 형사 처벌이 가능하다. 처벌 규정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년 이하의 벌금형이다.
최 회장 측은 공정위의 판단 이전에 나온 가처분 소송 결과를 주목하고 있다. MBK 연합은 주총에서 의결권이 제한되자 곧장 의결권 행사 허용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이는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됐다. 대법원은 의결권 제한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됐고, 이 행위를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로 보기로 어렵다는 원심의 판단도 정당하다고 봤다. 최 회장 측은 이런 재판 결과에 비춰 볼 때 공정위의 조사 결과도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가처분 소송에서 법원의 판단은 상법상 상호주 의결권 제한의 절차적 적법성을 따졌을 뿐 최 회장 등의 공정거래법상 탈법 행위를 판단한 건 아니라는 법조계 시각도 있다. 한 대형 로펌의 공정거래법 전문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의 전체 취지를 보면 상호주 형성 행위의 위법성과 탈법성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판단을 하지 않았다"며 "법원이 가처분 신청 기각을 통해 최 회장 등에게 면죄부를 줬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공정위의 판단이 더욱 중요해진 건 최 회장 측과 MBK 연합의 경영권 분쟁이 명분 싸움으로 흘러가고 있어서다. 최 회장 측과 MBK 연합의 지분율을 우호 지분을 포함해 각각 37.9%, 41.1%로 추산된다. MBK 연합의 지분이 3.2%포인트가량 많지만 한쪽이 압도적 지배력을 확보하지 못한 만큼 주총에서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 중요하다. 기관투자가들은 양측의 정당성과 도덕성 등도 의결권을 행사할 때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올해 정기 주총에서 국민연금은 최 회장 재선임안에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기존 이사회를 지지하는 게 관행이었던 국민연금은 이런 이례적 결정을 내린 배경으로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 권익 침해 이력이 있는 자 등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꺼냈던 '상호주 카드'를 공정위가 탈법 행위라고 판단한다면 향후 국민연금 등의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학계에서도 공정위 결정을 주목하고 있다. 공정위의 신규 순환출자 형성 금지 규제의 허점이 처음 드러난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런 우회 방식이 허용되면 대기업 집단에 해당하는 기업들이 얼마든지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는 순환출자를 형성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임영재 공정거래학회장은 "해외 법인을 이용한 규제 회피가 용인된다면, 모든 대기업 집단이 국내법을 무력화할 수 있는 '법적 블랙홀'이 열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정거래법의 효력을 해외 법인으로 확장할 경우 다른 나라의 법 체계와 충돌할 수 있어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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