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비서실장' 강훈식

입력 2026-04-16 08:00   수정 2026-04-16 08:18


“얼굴 안 좋아졌다고 해서 비비크림 발랐습니다.”

강훈식 청와대 비서실장(사진)이 대통령 전략경제협력 특사 자격으로 7박8일간 중동·중앙아시아 4개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지난 14일 돌아왔다. 그는 카타르 국왕, 카자흐스탄 대통령, 오만 국왕의 장남,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 의장 등을 만나 연내 원유 2억7300만 배럴, 나프타 최대 210만t 도입 약속을 얻어냈다. 지난달 전쟁 와중에 아랍에미리트(UAE)로 날아가 원유 1800만 배럴을 추가 확보한 지 한 달여 만이다. 미국·이란 전쟁이 촉발한 ‘원유 확보 전쟁’에서 특사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그는 15일 청와대에서 연 브리핑에서 “어떤 자리에서는 ‘이럴 거면 대통령 특사를 왜 하겠다고 했나’라는 얘기도 한 적이 있다”며 협상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비비크림을 발라야 했을 정도로 얼굴이 상한 이유다. 여권 관계자는 “비상 경제 상황에서 왕정 체제인 중동 산유국의 도움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대통령 최측근인 비서실장이 움직여야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어느 정권에서나 은둔형이 많았다. ‘권력 2인자’로서 비서 역할만 충실히 하는 게 통례였다. 강 실장은 대통령의 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전천후 비서실장 캐릭터를 소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우방국을 상대로 방산 세일즈를 뛰는 실무형 비서실장이면서 동시에 인사위원장 자격으로 대통령 인사권을 보좌하는 실세형 비서실장으로 통한다. 급기야 원유 확보를 위해 전쟁 지역을 넘나들고 있다. 지금까지 없던 비서실장 유형이다.

강 실장이 이처럼 활동 폭을 넓힐 수 있는 건 대통령의 두터운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강 실장 없이 진행된 한 내부 회의에서 어느 참모의 보고에 이재명 대통령이 ‘강 실장이 검토한 거냐’고 물었다는 일화는 대통령 신뢰의 깊이를 잘 보여준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과 강 실장이 어떤 이슈를 각자 검토해 참모진에게 지시한 내용이 너무 비슷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했다. 대통령과의 ‘싱크로율’이 가장 높은 참모라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청와대 인사들은 강 실장이 일하는 방식이 대통령과 매우 비슷하다고 평가한다. 구체적이고 집요하다는 것이다. 1973년생인 자신보다 연장자인 수석·비서관이 많지만, 이들에 대한 장악력이 상당하다는 게 청와대 안팎의 평가다. 한 관계자는 “온갖 정보와 업무 보고를 받을 텐데, 어느 부서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고, 업무를 빠르게 가르마 타는 능력이 확실히 있다”고 했다.

강 실장이 처음부터 ‘명심(明心)’이었던 건 아니다. 손학규계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친명(친이재명)계와는 거리가 있었다. 2022년 전당대회에서는 당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하기도 했다. 당시 이 대통령을 거세게 몰아친 것도 강 실장이다. 그러나 이념 도그마에 빠지지 않고 실용적 정치 노선을 추구하는 강 실장을 이 대통령이 오랜 기간 눈여겨본 것으로 알려졌다. 강 실장은 혁신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규제 개혁 논의를 주도한 국회 ‘유니콘팜’ 대표 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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