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콘서트 오페라가 아닌 '오페라 콘서트'로 정의해야 할 공연."
지난 18일 저녁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정명훈이 지휘한 KBS교향악단의 제825회 정기연주회 '콘서트 오페라 <카르멘>'은 통상적 콘서트 버전의 오페라가 아니었다. 성악보다 오케스트라가 무대를 지배했고, 드라마보다 음악이 먼저였다. '오페라 콘서트'로 불러야 마땅한 공연이었다.
<카르멘>은 지난해 12월 정 감독이 부산에서 APO(아시안필하모닉)와 함께 선보여 호평받았던 작품이다. 공연에 앞서 여러 클래식 커뮤니티에는 지난해 부산 공연을 본 후 "정명훈이 이끈 두 악단의 실력을 비교하기 위해 예매했다"는 댓글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인지 무대에 등장하는 단원들의 표정에서 책임감과 긴장감이 느껴졌다.
서곡이 시작되자, 공연 시작 한참 전부터 무대 위에서 악기 상태를 점검하던 주요 단원들의 남다른 집중력이 빛을 발했다. 일찍부터 무대에 나와 팀파니를 튜닝하던 이원석 수석과 남관모 트럼펫 수석은 서로의 악기에 대한 상태를 물으며 철저히 준비했다. 정명훈 지휘자가 등장하며 순식간에 시작한 카르멘 서곡에서 무대 좌측 상단에 위치한 이원석은 반대편 우측 무대 끝에 위치한 더블베이스 파트까지 넓은 시야로 바라보며 템포의 호흡을 맞췄고 남관모 역시 트럼펫 파트를 잘 이끌었다. 음악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KBS교향악단 바순 수석 박준태의 솔로였다. 군인 돈 호세가 술에 취해 등장하며 부르는 콧노래 멜로디를 바순이 먼저 제시하는 부분에서 중후한 음색과 준수한 호흡이 돋보였다. KBS교향악단은 공연의 음악적 중심축을 맡아 '독창과 합창이 가미된 정기 공연'을 성공적으로 연주했다.

KBS교향악단과 정 감독이 처음으로 콘서트 버전 오페라를 함께한 것은 29년 전이다. 1997년 테너 김남두, 소프라노 김영미, 바리톤 고성현과 함께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를 공연했다. 정 감독은 악보 없이 전곡을 암보로 지휘하며 오케스트라를 완전히 장악했다. 특히, 이번 공연의 3막 마지막 장면에서 정 감독이 왼팔로 크게 원을 그릴 때마다 오케스트라의 볼륨과 배음이 폭발적으로 확장되는 장면에서 음악감독과 KBS교향악단의 음악적 호흡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번 공연의 또 다른 중심은 '합창'이다. 특히 CBS 어린이 합창단은 또렷한 딕션과 귓속에 꽂히는 듯한 직선적 음색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정 감독도 어린이 합창단의 연주에는 함박웃음과 박수로 화답했다. 어린이 합창단이 1막에서 제시한 주제가 4막에서 성인 합창으로 변주돼 다시 등장하는데, 훈련된 동요 단의 에너지 넘치는 목소리와 직업 성악가로 구성된 성인 합창단의 힘 있는 배음이 대비되는 음향적 재미 요소였다. 노이 오페라 코러스와 성남시립합창단으로 구성된 성인 합창단 역시 공연의 흐름을 안정적으로 지탱하며 완성도를 높였다.

성악적 음향이 풍부한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공연임에도,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주요 장면을 노래하기 위해 출연한 성악가들의 가창력과 연기력에선 명암이 나뉘었다. 타이틀 롤 '카르멘'을 노래한 메조소프라노 알리사 콜로소바는 무대를 가득 채우는 풍채에서 나오는 성량과 흉성의 중음으로 당당한 집시 여인을 표현했다. 멕시코 태생의 미국인 테너 갈레아노 살라스는 세계적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의 젊은 시절 로맨틱한 음색을 연상케 하는 완성도 높은 가창을 선보였다. 하지만 사랑에 눈이 먼 군인 '돈 호세'가 탈영을 하고 카르멘에 대한 집착으로 살인까지 저지르는 내면의 타락을 극적으로 표현하진 못했다.

2024년 대구 오페라하우스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장미의 기사>의 '옥스 남작'역을 노래했던 베이스 박기현은 '주니가' 역을 맡아 독일과 유럽 무대에서 오랜 기간 축적된 실력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레멘다도'역, 테너 김재일 역시 대편성 오케스트라의 두터운 배음 속에서도 정확한 음정을 들려주는 가창을 선보였다. '프리스키타'역, 소프라노 이혜진과 '메르세데스'역의 메조소프라노 김가영은 무희들과 함께 등장한 장면에서, 화려한 무용 동작과 가창으로 공연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달아오른 분위기에 청중들은 뜨거운 박수로 답했다.

반면, 일부 배역에서는 오케스트라를 중심으로 구축된 음향 구조 속에서 성악가들의 절대적 성량 차이가 드러나는 순간도 있었다. '미카엘라'역을 노래한 소프라노 김순영은 독창 장면에서 성량과 울림 면에서 다소 아쉬움을 남겼으나, 정확한 음정과 매끄러운 프랑스어 딕션으로 음악적 완성도를 지켜냈다. '단카이로'역 테너 위정민은 고유의 허스키한 음색이 개성적이었으나 소리가 멀리까지 전달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KBS교향악단은 오케스트라가 중심축을 맡아 '스테이징(Staging)'을 최소화한 콘서트 버전으로도 오페라 속 드라마가 전달된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날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은, 140분동안 정명훈이 무대 위 포디엄에 올라 지휘한 '오페라 콘서트'에 열렬히 환호했다.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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