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 후암동 남산하늘숲길. 시계가 오전 9시를 가리키자 30대 정도로 보이는 남녀가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이 일반 등산객이 아니란 건 복장과 '장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어깨와 허리춤엔 아기띠나 아기용 등산 캐리어가, 두 손엔 유아차가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모인 엄마·아빠 20명과 아기 18명은 길 오른쪽에 붙어 한 줄로 남산타워를 향해 올라갔다. 취미를 육아와 결합한 3040 부모들이 결성한 등산 동호회 '베이비 하이킹 클럽(베하클)'의 4월 정기 모임은 이렇게 시작됐다.


엄마 아빠와 야외에서 따뜻한 봄을 맞은 아이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두 딸을 업고 안고 등산에 나선 워킹맘 김나율 씨(35)는 "2년 전부터 시작해 벌써 스무 번 넘게 아기들과 산에 올랐다"며 "큰 아이(안지우·5)는 진달래, 다람쥐, 까마귀 등 산에서 만난 생명들이 TV에 나오면 이름을 다 맞힐 정도"라고 했다. 그의 손엔 큰 딸이, 등엔 둘째 딸(안서우·2)이 함께 했다.
패밀리 등산의 인기는 동호회 가입자 수에 그대로 드러난다. 베하클은 문을 연 지 1년6개월 만에 2000명 넘는 가입자를 확보했다. 오언주 베하클 회장(36)은 "처음 시작할 때 '가입자가 한 명도 없으면 어쩌지'라고 걱정했다"며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젊은 부모가 이렇게 많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등산 모임이 아이 교육에도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데다 다른 가족과 소통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성도 배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씨는 "첫째는 문화센터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둘째는 문화센터 대신 산으로 갈아탔다"며 "문화센터는 또래와의 소통 없이 각자 놀아야 하는 반면 등산은 엄마 아빠는 물론 다른 가족들과도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서희 씨(31)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남편 김영빈 씨(42) 큰아들 김이안 군(5), 막내딸 김이나 양(3)과 함께 남산을 찾은 박씨는 "함께 등산하고 나면 아이들이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잔다"며 "아이들의 몸과 마음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데 등산만 한 게 없다"고 했다. 남편 김씨는 "주로 엄마와 아이만 참여하는 문화센터와 달리 등산은 가족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며 "아이들과 오랜 시간 함께할 수 있으니 애착 형성에도 도움이 된다"고 맞장구쳤다.

패밀리 등산 수요는 가파르게 늘고 있지만, 인프라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기저귀 교환대나 유아용 변기 등 아이를 위한 시설이 턱없이 부족해서다. 최준혁 씨(45)는 "6살 큰 딸과 등산할 때마다 화장실 문제로 곤란을 겪곤한다"며 "남자 화장실에 데려가기도 꺼려지고, 아이 혼자 여자 화장실에 보내는 것도 부담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만 2세 아들을 키우는 워킹맘 우정은 씨(38)도 같은 불만을 털어놨다. 그는 "대다수 등산로에 아기 의자가 없다 보니 아이를 안고 불편하게 볼일을 봐야 한다"고 했다.
동호회가 찾은 해법은 정보 공유다. 가족 화장실 등이 잘 갖춰진 곳을 찾아 '아기와 함께 등산하기 좋은 30대 명산 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하는 것. 베하클은 등산 장비와 난도를 고려해 수준별 등반 챌린지를 진행하고 있다. 아기와 부모가 안전하게 등산하고, 아웃도어 육아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서다.
이날 베하클이 찾은 남산하늘숲길은 여자·남자 다목적 화장실에 기저귀 교환대와 영유아용 보호의자, 유아용 변기가 모두 설치된 '특급 유아 동반 등산로'다. 오 회장은 "이런 곳이 별로 없다"며 "회원들과 공유하려고 사진을 찍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트렌드가 일시적 유행을 넘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다. 육아 트렌드가 여가와는 별개인 ‘소극적 육아’에서 육아와 취미를 하나로 엮는 ‘적극적 육아’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만큼 관련 인프라를 확충하고 육아와 여가를 묶은 새로운 서비스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적극적인 육아로 바뀌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문화 현상"이라며 "과거의 육아는 부모의 희생을 전제로 했지만, 지금은 아이는 물론 부모 만족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트렌드가 자리 잡으려면 인프라가 뒷받침돼야 한다"며 "정부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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