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한국 금융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중동 전쟁발 고유가 여파로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 흐름이 이어지면서 경영 여건은 팽팽한 긴장 상태에 놓여 있다. 내수 부진이 깊어지며 가계와 기업의 상환 능력이 약화되고, 이는 금융사의 자산 건전성 악화로 이어지며 리더들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위기는 언제나 리더의 진가를 증명하는 무대였다. 한국 증시는 기업가치 제고(밸류업)를 향한 강력한 드라이브와 함께 재평가받기 시작했고 금융주는 견조한 이익 체력을 바탕으로 그 변화의 앞단에 섰다. 험난한 파고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조직을 이끈 리더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경비즈니스는 2019년부터 매년 ‘파워 금융인 30’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재무 성과부터 주주 중시 경영, 금융 소비자 보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리더십, 글로벌 역량 등 종합적인 평가를 통해 선별된 이들은 한국 금융이 나아가야 할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치환하며 새로운 금융 영토를 개척하고 있는 파워 금융인 30인의 면면을 살펴본다.
삼성·한화 등 대기업계 ‘약진’
‘2026 파워 금융인 30’ 조사에 참여한 기업 재무 담당자와 금융 애널리스트는 ‘높은 실적’과 ‘주주가치 제고’, ‘디지털·인공지능(AI)’을 챙기는 최고경영자(CEO)에게 좋은 평가를 줬다. 글로벌 역량과 비전을 보인 CEO도 주목했다.
올해 선정 결과에서도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 회장은 전원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룹의 수익성을 견인하는 4대 은행장 역시 모두 포함됐다. 이는 2025년 4대 금융지주가 합산 순이익 약 18조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한 것에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4대 은행은 약 14조원의 순이익을 거두며 그룹 전반의 이익 체력을 뒷받침하는 핵심 보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4대 금융 계열 증권사 가운데 강진두 KB증권 대표와 이선훈 신한투자증권 사장이 30인 명단에 입성하며 그룹 내 비은행 부문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NH농협금융지주의 경우 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명단에 오르지 못했지만 윤병운 NH투자증권 사장이 비은행 부문의 실적 방어를 주도하며 그룹 내 핵심 수익원으로서의 존재감을 입증했다.
반면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와 카드론 영업 위축, 조달금리 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수익성이 둔화된 금융지주 계열 카드사들은 이번 명단에 단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고금리 환경에 따른 건전성 관리 부담이 실적 압박으로 이어지며 은행·증권업권과의 리더십 온도차를 극명히 드러낸 결과다.
지난해 명단에 포함됐던 IBK기업은행과 IBK투자증권은 올해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대기업 계열 금융사 중에서는 삼성금융의 약진이 독보적이다. 탄탄한 실적을 바탕으로 홍원학 사장(생명), 이문화 사장(화재), 박종문 사장(증권), 김이태 사장(카드) 등 4명의 계열사 CEO가 모두 명단에 진입하며 저력을 입증했다. 한화금융은 이경근 한화생명 사장과 나채범 한화손해보험 사장이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오너 경영인인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특유의 브랜딩 경영을 앞세워 작년에 이어 올해도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존재감을 유지했다.
디지털 금융의 축인 인터넷전문은행의 기세도 매서웠다.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가 금융 플랫폼 영향력을 바탕으로 작년에 이어 자리를 지킨 가운데 올해는 최우형 케이뱅크 행장이 합류하며 전통 은행권과의 리더십 경쟁을 본격화했다.
보험업계에서는 신창재 교보생명 의장과 정종표 DB손해보험 사장이 변함없이 명단에 포함되며 안정적인 경영 기조를 보여줬다. 재보험사인 코리안리의 원종규 사장은 지난해의 공백을 깨고 올해 명단에 복귀했다.
증권가에서는 성과 중심 경영으로 시장에서 주목받는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부회장이 포함된 가운데 메리츠증권(김종민·장원재)이 기업금융(IB) 중심의 수익 구조를 바탕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실적 흐름을 유지하며 올해 새롭게 명단에 포함됐다.
기존 강자들의 수성도 잇따랐다. 김미섭 미래에셋증권 부회장,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사장, 엄주성 키움증권 대표는 탁월한 위기 관리 능력과 실적 성장세를 인정받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명단에 올랐다. 여기에 진승욱 대신증권 대표가 새롭게 합류했다. 외국인 CEO로는 뤄즈펑 유안타증권 대표가 포함됐다.
‘86세대로 SKY(서울·고려·연세대) 출신의 상경계열을 전공한 남성.’
2026년 한국 금융 시장을 움직이는 CEO 30명의 표준 모델이다. CEO들의 평균 나이(연 기준)는 약 61.3세로 1960년대생들이 과반(25명)을 차지했다. 55~59세(1967~71년생) CEO가 12명으로 가장 많고 △60~64세(1962~66년생) 11명 △65~69세(1957~61년생) 5명 △70~74세(1952~56년생) 2명 △50~54세(1972~76년생) 1명 순이다. 종합하면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생)’가 한국 금융계를 주도하고 있다는 얘기다.
1968년생(58세) 원숭이띠는 총 6명으로 최다 인원을 기록했다. 강진두 KB증권 대표를 비롯해 김미섭 미래에셋증권 부회장, 엄주성 키움증권 대표, 이선훈 신한투자증권 사장, 진승욱 대신증권 대표 등 증권사에서만 5명의 CEO가 포진해 ‘원숭이띠’ 파워를 과시했다(가나다순). 은행권에서는 정진완 우리은행장이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반면 은행권은 1964년생(62세) 용띠가 장악했다. 이호성 하나은행장, 이환주 KB국민은행장, 정상혁 신한은행장 등 ‘빅3’ 행장이 모두 동갑내기다(가나다순). 여기에 홍원학 삼성생명 사장까지 합류해 금융권 전반의 허리이자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견고히 하고 있다.
올해의 띠인 말띠 수장으로는 1966년생인 김이태 삼성카드 대표와 최우형 케이뱅크 행장이 속한다. 관록과 연륜을 지닌 70세 이상 CEO들도 있다. 1953년생인 신창재 교보생명 의장이 이번 선정에서 최고령 CEO로 이름을 올렸으며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도 1956년생으로 70대 반열에 오르며 노련한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1972년생인 김종민 메리츠증권 대표는 이번 조사 대상 중 가장 젊은 수장으로 파악됐다.

출신 학교(학부 기준)로 보면 서울대(9명) 출신 CEO가 가장 많았으며 연세대(4명)와 성균관대(4명)가 뒤를 이었다. 고려대, 한양대, 해외 대학에서는 각각 2명씩 리더를 배출했고 나머지 8개 대학(서강대·중앙대·한국외대·단국대·경북대·영남대·방통대·경희사이버대)은 각각 1명씩 이름을 올렸다.
특히 서울대 출신 중 절반 이상이 상경계열(경영·경제·국제경제 등)로 채워졌다. 김용범 메리츠금융 부회장과 김이태 삼성카드 사장이 경영학과를, 김미섭 미래에셋증권 부회장과 최우형 케이뱅크 은행장은 경제학과를, 정상혁 신한은행장은 국제경제학과를 나왔다.
이러한 상경계 쏠림 현상은 전체 전공 분석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전공별로도 상경계열 출신이 전체의 54.8%(17명)에 달했다. 세부적으로는 경영학 전공자가 10명으로 가장 많았고 경제학 전공자는 7명으로 파악됐다.
상경계가 장악한 지형도 속에서 어문학계열 리더들의 존재감도 뚜렷하다. 서울대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한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을 비롯해 홍원학 삼성생명 사장(고려대 일어일문학), 윤병운 NH투자증권 사장(한국외대 중어중문학) 등이 대표적이다.
전통적인 엘리트 코스로 꼽히는 법학 전공자는 총 3명이었다. 나채범 한화손보 사장(영남대)과 정종표 DB손해보험 사장(연세대), 정진완 우리은행장(경북대) 등이 법대 출신으로 금융권의 원칙 경영을 이끌고 있다(가나다순).
파워금융 CEO 중 가장 이색적인 이력은 단연 신창재 교보생명 의장이다. 서울대 의과대학을 나와 산부인과 의사로 활동한 리더는 명단 내에서 그가 유일하다. 이 밖에도 강진두 KB증권 대표가 산업심리학을 전공한 이력으로 상경계 일색인 금융권에서 보기 드문 사례로 꼽힌다.
2026년 파워금융 CEO 선정 명단에선 여성 리더의 부재가 두드러졌다.지난해 유명순 한국씨티은행장이 유일하게 명단에 올랐지만 올해 30인 명단에선 아쉽게 빠졌다. 주요 금융지주와 은행·증권·카드사를 통틀어 여성 CEO가 단 한 명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면서 국내 금융권의 견고한 유리천장을 보여주고 있다.
2026 파워 금융인 30은 금융지주 5인, 은행 4인, 인터넷은행 2인, 증권 11인(각자 대표 포함), 보험 7인, 카드 2인이 나왔다. 70명의 명단(1차 조사)에 올랐던 캐피탈 4인과 기타금융 기관 2인은 30위 안에 들지 못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