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는 시시때때로 분노의 분화구로 변신한다. 경적을 울려대고 상향등을 켜면서 운전자를 위협한다. 더 심각해지면 보복 운전까지 벌어진다. 화를 내는 쪽의 말을 들어보면 한결같다. 얌체 운전을 하는 상대방 때문에 내가 피해를 봤다고.
도덕심리학 석학인 커트 그레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는 신간 <나와 당신은 왜 분노하는가>에서 사람들 간 싸움은 본능적인 ‘위험 인식’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피해의식이 갈등을 유발한다는 것. 도로에서의 싸움뿐만이 아니다. 갈등이 만연한 정치 이슈에서도 사람들의 판단은 ‘정의’나 ‘공정’이 아닌 위험에 대한 인식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그는 인간의 분노가 어디서 시작됐는지부터 짚는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인간은 본래부터 공격적인 포식자가 아니었다. 오랜 시간 ‘사냥감’으로 살아온 피식자였다. 작은 위협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생존 본능이 형성된 배경이다. 수백만 년에 걸쳐 위험을 감지하고 달아나도록 진화하면서 위험을 예민하게 경계하는 성향이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다.
이 본능은 잡아먹힐 위험이 없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감정과 판단에도 깊게 배어 있다. 피해를 주는 누군가로 인해 내가 큰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느끼곤 한다. 산 속에 호랑이는 없지만 현대인은 그 대신 선거 결과, 단체 대화방에서 벌어지는 다툼, 학부모 회의가 내리는 결정을 두려워하게 됐다. 물리적 포식자가 사라진 이후에도 위험 인식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 대상만 달라졌다는 것이다.
특히 SNS에 ‘피해자 경쟁’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고통을 확대해석하는 동시에, 상대편의 고통에는 눈을 감는다. 세상에서 가장 힘센 존재가 된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연쇄 성범죄를 저지른 영화감독 하비 웨인스타인도 자신이 언론의 희생자라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를 인간이 자신의 피해에는 민감하고 타인의 고통에는 둔감해지는 경향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다른 사람의 정신에는 접근할 수 없지만 자신의 고통은 아주 선명하게 경험한다.
많은 사람들은 ‘팩트’가 갈등 해소를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단순히 대화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이같은 분열을 쉽게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도덕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여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객관적 증거가 아닌 각자가 직관적으로 느끼는 위험성에 따라 각자의 신념을 형성한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무엇이 더 위험한지, 누구를 더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 대신 저자는 정치 얘기를 하기 전에 사람 대 사람으로 유대를 형성하라고 말한다. 같은 취미나 취향을 공유하거나 자신의 꿈에 관해 얘기하는 게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특히 “저 사람은 무엇을 위험하고 해롭다고 느끼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부탁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상대방의 의견을 구하는 게 ‘약점을 드러내라’는 식이면 결코 답이 될 수 없다. 반발을 사지 않으려면 의견을 강요하지 말고 부탁을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상대방이 하는 말도 맞다고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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