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에너지 기업 엑손모빌은 1일(현지시간) 1분기 순이익이 41억8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6% 감소했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전했다. 셰브런도 같은 기간 순이익이 22억1000만달러로 37% 줄었다고 발표했다.
다만 이들 기업 실적 모두 월가 분석가들이 제시했던 비관적 전망보다는 양호했다.
실적 악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중동 지역 생산 차질이 지목됐다. 미·이란 전쟁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길어지면서 이들 회사가 보유한 중동 지역 시설의 생산량이 급감했다.
대런 우즈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CNBC 방송을 통해 전체 생산량 중 약 15%가 이란 전쟁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해협이 다시 열리더라도 원유 수송 흐름이 정상화되는 데 최대 2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쟁 여파는 생산 차질에만 그치지 않았다. 석유 공급 혼란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파생금융상품 관련 일시적 손실도 1분기 손실을 키운 요인으로 꼽혔다. 우즈 CEO는 애널리스트들과의 콘퍼런스콜에서 글로벌 석유 시장이 역사적으로 전례 없는 에너지 공급 혼란의 완전한 영향을 아직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마이크 워스 셰브런 CEO도 CNBC 방송에서 "글로벌 에너지 시스템이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다만 셰브런은 경쟁사와 비교하면 중동 전쟁에 따른 생산 차질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유가 급등에도 미국 석유 메이저들이 생산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석유 생산량 증대를 바라고 있지만 업체들은 투자 확대보다 기존 계획을 유지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우즈 CEO는 미국과 가이아나에서 생산을 늘리고 있지만 생산량이 기존에 설정한 계획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코노코필립스도 비슷한 기류다. 라이언 랜스 코노코필립스 CEO는 전날 콘퍼런스콜에서 "거시 환경이 여전히 변동성이 큰 상황이고 전망을 내놓기가 불가능하다"며 "이 같은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의 우선순위를 확고히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주가치를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뜻을 재확인한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을 때도 엑손모빌·셰브런·코노코필립스 등 석유 메이저들이 생산 확대를 위한 자본지출보다 배당·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에 더 집중했다고 지적했다. 이번에도 전쟁과 공급 차질이 생산 확대보다는 신중한 자본 운용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다만 국제 유가 급등이 석유 업계의 태도를 일부 바꾸고 있다는 신호도 포착됐다. WSJ은 미·이란 전쟁으로 석유시장 공급 혼란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엑손모빌·코노코필립스 등 석유 메이저들이 그간 접근을 꺼렸던 베네수엘라 사업 가능성을 평가하기 위해 현지에 직원을 파견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미국 대사관 임시 사무실로 쓰이는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JW메리어트 호텔엔 미 석유회사 엔지니어 기술팀과 변호사들이 수시로 방문해 노후화된 유전 재건 계획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에너지 메이저 관계자 수십명은 트럼프 행정부와 긴밀하게 협조하는 것으로 알려진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과 면담을 마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아직 베네수엘라 사업에 자본투자를 결정한 회사는 없는 상황. 하지만 불과 몇 달 전 우즈 CEO가 베네수엘라를 두고 "투자 불가능"이라고 언급했던 상황과 비교할 경우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관측이다. 석유 메이저들이 전쟁이 길어지고 공급 불안이 커지면서 과거엔 선을 그었던 지역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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