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록히드마틴’ 노리는 김승연의 승부수, 한화 KAI 인수 ‘카운트다운’

입력 2026-05-05 07:54  




한화그룹의 ‘방산 대통합’이 마지막 퍼즐을 향해 치닫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지분을 5.09% 확보하며 경영권 인수 작업에 시동을 걸었다.

단순 투자를 넘어 ‘경영 참여’를 공식화한 이번 행보는 재계 순위 5위에 오른 한화가 ‘빅4’ 진입을 위한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는 한화의 공격적 행보가 가져올 재계 서열 파괴와 ‘승자의 저주’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14년의 구애, 한화는 왜 지금 KAI를 조준했나



한화의 KAI 인수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화는 2012년 KAI가 처음 매물로 나왔을 당시 자금 여력 부족으로 대한항공과 HD현대중공업의 각축전을 지켜봐야만 했다. 이후 2015년 삼성의 방산 계열사(삼성테크윈 등)를 인수하는 ‘빅딜’과 2016년 두산DST(한화디펜스) 인수를 거치며 엔진과 지상 화력을 보강했으나, 정작 ‘항공기 플랫폼’이라는 핵심은 갖지 못했다.

2022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인수를 확정 지은 직후 KAI 인수설이 다시 불거졌을 때만 해도 시장의 시각은 반신반의였다. 당시 한국수출입은행은 “논의한 바 없다”며 선을 그었으나, 한화는 묵묵히 실탄을 비축했다.

IMF 외환위기 시절 대우중공업·삼성항공·현대우주항공의 강제 통합으로 탄생한 KAI의 태생적 한계를 민간의 효율성으로 돌파하겠다는 김승연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이번 지분 매집은 지난 10여 년간 뿌린 씨앗을 거두기 위한 마지막 수확 단계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4일 KAI 주식 10만 주를 추가 취득하며 관계사 포함 지분율을 5.09%로 확대했다고 공시했다. 보유 목적은 ‘경영 참여’로 상향 조정됐다.

한화 측은 이번 지분 확대와 관련해 “사업 시너지 가치와 투자 가치를 모두 고려해 지분을 확대하는 것”이라며 “향후 정부 주도의 KAI 민영화가 공론화될 경우 정부 정책 방향에 맞춰 인수 또는 통합 등 추진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폴란드와 중동 등에서의 잇따른 수출 잭폿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 중이다. 주가 역시 사상 최고가 부근에서 형성되며 자금 조달 여력이 최상에 달했다는 평가다.

주가가 높고 현금 흐름이 풍부한 지금이 대규모 M&A를 밀어붙일 최적기라는 분석이다. 특히 연말까지 5000억원을 추가 투입해 지분율을 8%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로드맵은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현재 KAI의 지분 구조를 보면 최대 주주인 한국수출입은행(26.41%)을 제외하고 피델리티(9.38%)와 국민연금공단(8.56%)이 주요 주주로 포진해 있다.

한화가 연말까지 8%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려는 것은 민영화 논의가 시작되기 전 기존 기관 투자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이들을 제치고 ‘민간 1위 주주’이자 ‘압도적 2대 주주’ 지위를 굳히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변경한 것은 향후 이사회 진입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개정 상법에 따라 5% 이상 주주는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통해 이사회 진입이 수월해진다.

한화가 수출입은행에 이은 2대 주주가 되면 향후 정부의 지분 매각 방식에 한화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정부 입장에서도 KAI는 ‘공기업 딜레마’의 상징이다. 정권 교체기마다 수장이 바뀌고 시장 원리보다 정책에 좌우되는 구조를 탈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IB 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 등 재무적 투자자(FI)의 지분율에 근접하거나 이를 넘어서는 순간, 한화는 단순 주주를 넘어 경영 전반에 실질적인 목소리를 내는 ‘예비 주인’으로서의 입지를 확보하게 된다”며 “이는 향후 수출입은행의 지분 매각 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등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국민 세금으로 키운 기업, ‘특혜·독과점’ 우려



KAI 매각이 현실화할 경우 ‘헐값 매각’과 ‘특혜’ 논란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KAI는 지난 20여년간 약 12조원의 공적 자금이 투입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사례와 마찬가지로, 국민 세금으로 일군 국가 안보의 핵심 자산이다. 자주국방의 결실을 특정 사기업이 독식한다는 비판은 인수 기업이 넘어야 할 가장 큰 관문이다.

독과점 폐해에 대한 우려도 깊다. 한화가 KAI를 인수하면 육상(전차·자주포), 해상(함정), 항공(전투기·헬기), 우주(발사체)를 모두 아우르는 전무후무한 ‘방산 공룡’이 탄생한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국내 방산 수요가 정부(방사청) 단일 처인 상황에서 공급자마저 한화로 일원화될 경우, 가격 협상력의 불균형과 하도급 생태계의 종속이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총사업비 8조원 규모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에서 불거진 특수선 수주 갈등처럼, KAI 인수 역시 경쟁사들의 강력한 반발과 공정위의 엄격한 잣대를 마주할 전망이다.




김동관표 ‘스페이스 허브’의 화룡점정



재계가 한화의 KAI 지분 확대에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김동관 부회장의 승계 구도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김 부회장은 그룹 내 우주 사업 총괄 조직인 ‘스페이스 허브’를 진두지휘하며 미래 먹거리 발굴에 주력해왔다.

KAI 인수에 성공하면 단순히 외형 확대를 넘어, 김 부회장이 추진하는 ‘한국형 스페이스X’ 비전의 완성차 역할을 하게 된다.

방산 부문은 김 부회장의 경영 능력을 입증하는 핵심 시험대다. 이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통해 누리호 체계 종합 사업을 따내며 기틀을 닦았으나, 완제기 제작 역량을 갖춘 KAI 없이는 글로벌 우주 강국들과 경쟁하기 어렵다. 재계 관계자는 “KAI 인수는 김 부회장이 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독보적인 성과를 창출했다는 명분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 특수에 그룹 위상 변화…‘빅4’ 체제 위협


향후 한화가 KAI 인수를 마무리 지을 경우 재계 순위의 지각변동은 피할 수 없다. 2026년 5월 기준 한화그룹의 자산 총액은 149.6조원으로 재계 5위다. 여기에 단순 합산으로 재계 53위 KAI의 자산(약 10.3조원)이 더해지면 한화의 몸집은 160조원을 넘어서게 된다.

4위 LG그룹(187조원)과 여전히 20조원 이상의 격차가 존재하나, 산업계는 ‘체감 순위’에 주목한다. 가전과 화학 등 민간 소비재 비중이 높은 LG와 달리, 한화는 국가 안보와 에너지 등 필수재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했다.

한화의 포트폴리오는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안보 자산을 독점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는 경기 변동에 민감한 타 그룹과 차별화된 독보적인 현금 흐름과 강력한 대정부 협상력을 보장한다. “자산 규모는 5위지만, 대정부 영향력과 산업 지배력은 이미 4대 그룹 수준”이라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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