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대·최고의 현대미술 축제인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6일 평론가와 큐레이터, 기자와 VIP 관람객을 대상으로 미리 문을 연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오는 9일 공식 개막해 11월 22일까지 이어지는 제 61회 행사는 총감독의 갑작스러운 별세, 대폭 줄어든 작가 수, 심사위원 전원 사퇴로 인한 황금사자상 폐지 등 이전과 확연히 다른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젊은 작가, 중동·아프리카·남미 약진
올해 제61회 비엔날레의 총감독인 카메룬 태생의 큐레이터 코요 쿠오는 개막식을 볼 수 없다. 지난해 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전시 준비 중 감독이 사망한 것은 비엔날레 131년 역사상 처음이다. 하지만 유족과 비엔날레 측은 쿠오의 유지를 이어받아 그가 남긴 원안 그대로 전시를 실행하기로 했다. 그녀가 정한 비엔날레 주제는 ‘In Minor Keys’. 음악의 단조(短調)를 뜻하지만, 동시에 ‘주류가 아닌 것’, ‘소수의 것’을 암시하는 제목이다. 그 말대로 올해 비엔날레는 거대한 스펙터클 대신 조용하고 잔잔하면서도 위안을 주는 전시를 지향한다.

올해 본전시의 가장 큰 변화는 본전시 참여 작가가 111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2024년 331팀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양 대신 깊이를 택했다는 게 미술계의 해석이다. 전시 동선 곳곳에 ‘오아시스’라는 쉼터를 배치해 관객이 천천히 전시를 음미하며 볼 수 있게 했다. 참여 작가의 특성도 확 달라졌다. 직전 두 회 비엔날레가 과거의 작가를 재조명하는 데 집중했다면, 올해 비엔날레는 다시 현재로 눈을 돌린다. 참여 작가의 90% 이상이 생존 작가인 데다, 그중 절반 이상이 1950~1980년생 중견 세대다.
비엔날레의 지도도 달라지고 있다. 올해 행사에서는 중동·아프리카·중남미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본전시 작가 중 아프리카 출신 비중이 20%,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는 15%에 달한다. 근 10년간 열린 전시에 비하면 비율이 2배 가까이 늘었다. 카타르는 국가관이 밀집한 자르디니 공원에 신축 파빌리온을 열었다. 자르디니 공원에 신축 국가관이 들어서는 건 1995년 한국관 이후 30년 만이다. 엘살바도르와 에콰도르도 공원 밖에 사상 처음으로 국가관을 열었다.
심사위원 전원 사퇴 '충격'
올해 비엔날레는 어느 때보다 격렬한 정치 논쟁의 무대가 되고 있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지난달 30일 심사위원단 5명이 전원 사퇴한 것이다. 위원장인 브라질 큐레이터 솔란지 올리베이라 파르카스 등은 앞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전쟁범죄·반인도범죄 혐의로 기소된 지도자가 있는 국가에는 황금사자상과 은사자상을 수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우크라이나 침공 혐의)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자지구 작전 혐의)를 겨냥한 결정이었다.

비엔날레 측은 결국 가장 우수한 국가관이나 작가에게 수여하는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 시상 자체를 폐지했다. 대신 폐막일인 11월 22일 일반 관객 투표로 수상자를 가리는 '관객상'을 신설해 본전시 최우수 작가와 최우수 국가관을 뽑는다.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4년 만에 국가관을 다시 신청해 받아들여졌다. 다만 5월 5~8일 사전 공개 기간에만 기자·관계자에게 열고, 9일 정식 개막 후엔 폐쇄한 채 외벽에 작품 영상을 투사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이스라엘관은 평소의 자르디니 상설관이 아닌 아르세날레 인근 외부 공간으로 옮겨졌다.
이로 인해 비엔날레 기간 동안 '예술이 현실 정치에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가'를 둘러싼 논쟁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전쟁 가해국을 배제하는 건 정당하다는 입장과, 해당국 작가까지 차단하는 것은 또 다른 검열이라는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
'해방공간' 꾸린 한국관…요이·이우환·윤송이 전시도
국가대표팀 격인 한국관 전시관에서는 최빛나 예술감독이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라는 주제로 전시를 꾸린다. 1945년 해방에서 1948년 정부 수립 사이 3년의 의미를 되짚는 기획이다. 최고은과 노혜리가 작가로 참여한다. 한강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미술 작품으로 참여하는 이례적 사례다. '더 퓨너럴'은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첫 장면에서 영감을 받은 설치 작품. 하얀 풍경 위에 검게 탄 나무들이 서 있는데, 이는 제주 4·3 사건 희생자를 상징한다.
본전시에 초대된 111팀 중 한국 작가는 요이(39) 한 명이다. 예일대와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에서 공부한 그는 뉴욕에서 활동하다 2021년 제주도로 이주해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도 제주도 관련 작업을 소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엔날레 기간에 베네치아 시내 전체는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으로 탈바꿈한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80세 기념전이 열린다. 이 미술관 250년 역사상 살아 있는 여성 작가가 대규모 전시를 여는 건 처음이다. 카페사로(베네치아 국제 근대 미술관)에서는 제니 사빌의 대규모 전시가 열리고, 피노 컬렉션은 마이클 아미티지, 아마르 칸와르, 로나 심프슨, 파울루 나자레트 4명의 개인전을 팔라초 그라시와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동시에 선보인다.
이 중 주목할 만한 한국 작가 전시로는 공식 병행 전시로 열리는 이우환 회고전이 꼽힌다. 이우환 탄생 90주년을 기념해 산마르코 광장의 산마르코 아트센터 8개 전시실에서 약 20점을 소개한다. 196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60여년 화업을 아우르는 회화·조각 작품과 이번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위해 제작한 신작을 함께 선보인다. 윤송이 작가, 심문섭 작가도 비엔날레 기간 동안 전세계 관객을 만난다.
베네치아=성수영/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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