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했던 평택 사업장은 최근 인공지능(AI)발 훈풍으로 단박에 달궈졌다. 올 1분기 영업이익 57조원을 기록하며 화려한 부활을 알린 삼성전자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난과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수요 증대에 발맞춰 전방위적 설비 투자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오는 7월 평택 사업장 마지막 생산 라인인 P5 팹2 건설에 들어간다. 내년 초로 예정된 일정을 6개월가량 앞당겼다. 이번 공사는 지난해 말 재개된 P5 팹1과 함께 추진된다. 두 라인에 투입되는 총투자비는 120조원으로 추산된다.
삼성전자가 속도전에 나선 것은 AI 인프라 확대로 인한 폭발적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며 메모리 품귀 현상이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구형인 PC용 DDR4 D램 고정거래가격은 지난해 4월 1.65달러에서 올해 4월 16달러로 1년 새 10배 가까이로 폭등했다.
2029년 가동될 P5 팹2는 시장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멀티팹으로 지어질 예정이다. 주력인 HBM을 포함해 차세대 D램뿐 아니라 낸드플래시, 첨단 공정 파운드리 라인까지 모두 갖춘다. P5 팹1·2 생산 능력을 합치면 월 60만 장(12인치 웨이퍼 기준) 수준이다. 삼성전자의 현재 D램 전체 생산량(월 65만 개)과 맞먹는 압도적 규모다.
파운드리 시장의 지각 변동도 삼성전자의 속도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간 대만 TSMC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엔비디아, 테슬라, 퀄컴 등 빅테크가 공급망 다변화와 리스크 분산을 위해 삼성 파운드리와의 협력을 대폭 강화하고 나섰다. 이들을 수용할 생산 거점 확보가 향후 점유율 싸움의 승패를 가를 핵심 변수가 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본격적으로 물량을 쏟아내기 시작하면 ‘규모의 경제’를 통해 원가 경쟁력에서 경쟁사를 압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현 SK하이닉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달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올해 설비투자 규모는 미래 인프라 투자 확대로 전년 대비 상당한 수준의 증가가 예상된다”고 했다.
미국 마이크론도 가세했다. 마이크론은 미국 뉴욕과 아이오와에 HBM을 포함한 첨단 메모리 팹을 건설하고 있다. 일본 히로시마 공장 증설까지 포함하면 마이크론의 생산 능력 또한 2~3년 내 급격히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증설 경쟁이 단순히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치킨게임이었다면 지금은 누가 더 빨리 인프라를 완공해 AI 칩 공급 능력을 증명하느냐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강해령/원종환 기자 hr.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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