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모임 강의 의뢰를 받으면 부담도 되지만, 흥분되는 면이 있다. 우선, 부담은 청중이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강사로서 전하는 메시지 하나하나의 영향력이 근접한 거리만큼 커질 수 있기 때문에 강의 자료를 준비할 때 고민이 깊어진다. 반면, 강의 집중력이 매우 높고 쌍방향 소통이 즉각적으로 이뤄지는 현장감은 즐겁다.
필자가 의뢰 받은 주제는 ‘리더십’. 전문분야인 커뮤니케이션, 브랜딩, 위기관리를 넘어서는 주제라 애초에는 고사하려 했지만, 모임의 리더께서 “그간 커리어 여정을 통해 쌓은 글로벌 경험과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를 편하게 나눠달라”고 하여 강의자료를 준비해 CEO들을 만났다.

F&B,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배터리 산업 등 다양한 업종에서 경험을 쌓은 경영자들은 역시나 매우 높은 강의 집중도를 보였고,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사실 강의 그 자체 보다 이후 주고받는 소통에서 더 많은 것들을 얻을 때도 있다.
그 모임의 리더는 글로벌 비즈니스 경험이 풍부한 분으로, 함께 자리한 CEO들도 글로벌 진출을 위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수많은 스타트업 CEO들이 글로벌 시장에 브랜드를 론칭하고, 굴지의 VC에서 투자를 받아 성장 로드맵을 실현하는 꿈을 꾸는 것을 떠올려본다면 새로울 것이 없었다.
‘Go Global’을 현실화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을까. 몇 개월 전 스타트업 CEO 멘토링 부트캠프에서도 필자는 같은 고민을 들었다.
커뮤니케이션(PR)과 브랜딩을 업으로 삼고 있는 필자로서는 “브랜드 작명부터 글로벌하게 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브랜드명에는 창업자의 스토리나 철학이 담겨 있을 때도 많은데, 중요한 것은 그 이름이 들었을 때 간결하고, 발음하기 쉽고, 기억되기 쉬운 리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조건들은 모두 인간의 ‘인지’와 관련돼 있다. 브랜드를 발음할 때 화자가 느끼는 ‘기분’은 소비자의 ‘첫인상’과 환치될 수 있다. 발음할 때(또는 들을 때) 기분 좋은 이름은 당연히 긍정적으로 기억된다. 여기에 짧지만 리듬감이 느껴지는 독창성이 가해진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다만, 브랜드를 다른 언어로 표현했을 때 글이나 발음에서 부정적인 의미나 뉘앙스는 없는지 문화권별 확인은 필수다.
세계인이 모두 인지하고 있는 구글(Google), 나이키(Nike), 애플(Apple), 코카콜라(Coca-Cola), 자라(Zara) 등의 브랜드들을 떠올려 본다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요즘 K-푸드 열풍을 타고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비비고(bibigo)도 일례다. 하나같이 짧고, 쉽고, 경쾌하다. 기억하기도 쉽다.
실제로 브랜드명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은 ‘프로세싱 플루언시(Processing Fluency)’라는 이론으로도 증명됐다. 이는 ‘주관적 처리용이성’ 정도로 해석되는 개념으로, 자극을 인지하고 처리하는 과정이 얼마나 부드럽고 쉽게 흐르는지에 대한 연구다. 이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받아들인 정보가 더 쉽게 이해되고 처리될수록 그 대상에 대해 긍정적 감정, 신뢰, 매력, 행동(구매, 클릭 등)을 강화된다는 것이다. 즉, 쉽게 느껴지는 것을 더 좋은 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 이름의 첫인상과 마찬가지로 브랜드명에서도 매우 직관적으로 드러나는데, 발음하기 쉽고 리듬감이 좋은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친숙함을 주고, 그 친숙함이 장기적으로 보면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와 신뢰도로 이어진다. 반대의 경우를 가정해 보라. 발음할 때 마다 힘이 들고 낯설다면? 사람들은 브랜드명을 기억하는데 추가적인 에너지를 쓰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필자는 재직했던 기업에서 이 브랜드명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낀 적이 있다. 세계 최고의 프로페셔널 서비스 브랜드인 딜로이트(Deloitte)의 경우 원래의 풀네임(법인명)은 딜로이트 투쉬 토마츠 리미티드(DTTL: Deloitte Touche Tohmatsu Limited)다. 앞의 세 단어는 모두 사람의 성으로, 180여년 간의 대규모 인수합병의 성장역사가 담겨진 이름이다. 하지만, 고객과 시장, 대중에게 ‘딜로이트’로 쉽고, 리드미컬하게 소통하며 길이는 짧아졌지만 브랜드는 보다 강렬한 임팩트를 가지게 됐다. 이 얼마나 스마트한 결정인가.
반면, 글로벌 회사의 위상을 가지고 있던 IT 회사의 경우, 매번 어렵고 긴 이름 때문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 국내는 물론 해외 파트너, 고객들과 소통할 때 상대방이 브랜드명을 잘못 발음하거나 되묻는 하는 일이 수없이 많았다.
사람의 이름도 느낌 좋고 쉬워야 기억이 잘 되고, 지금처럼 AI시대에는 짧고 독창적인 브랜드명이 검색에서 독보적 우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브랜드의 이름 하나가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이름값’은 브랜드에도 여지없지 적용되는 말이다.
장헌주 님은 홈쇼핑TV 마케터로 재직 중 도미(渡美), 광고 공부를 마친 후 중앙일보(LA) 및 한국경제매거진 등에서 본캐인 기자와 부캐인 카피라이터 사이를 오가며 살았다. 딜로이트 코리아에 이어 IT기업 커뮤니케이션 총괄 디렉터를 역임한 후 지금은 크리에이티브 솔루션 랩 '2kg'에서 PR & 위기관리, 브랜딩 전문가로 세상의 일에 '시선'을 더하고 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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