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회계기준 바꿨더니 보험사 순익 2.3조 → 1800억

입력 2026-05-20 17:54   수정 2026-05-20 17:55

보험업계가 ‘회계 착시’ 쇼크에 빠졌다. 2022년까지 사용한 옛 보험회계기준(IFRS4)을 바탕으로 집계한 지난해 주요 보험사 실적이 적자에 가까울 만큼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조 단위’ 흑자를 낸 보험사에 IFRS4 기준을 적용하자 이익이 수백억 원 수준까지 쪼그라들었다. 업계에서는 보험사의 비용 지출을 우려하고 있다. IFRS17 착시에 기대 사업비와 마케팅비를 과도하게 쓰고 있다는 얘기다.
◇IFRS17 ‘회계 착시’ 걷어내니

19일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손해보험업계 1위 회사인 삼성화재는 지난해 IFRS17 기준 2조3335억원(별도 기준)의 세전이익을 거뒀다. 반면 IFRS4 기준 세전이익은 1836억원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삼성화재가 법인세로 6426억원을 낸 걸 감안하면 IFRS4 세후 이익은 사실상 순손실을 낸 셈이다.

삼성화재만의 문제가 아니다. DB손해보험도 IFRS17과 IFRS4 기준 세전이익이 각각 2조1080억원, 4217억원으로 크게 차이 났다.

메리츠화재(2조2940억원·7338억원), KB손해보험(1조1408억원·779억원), 현대해상(6943억원·4014억원) 등도 마찬가지다. 현대해상은 부동산 매각에 따른 일회성 이익(약 2400억원) 때문에 IFRS4와 IFRS17 간 이익 차가 적게 나타났다. 생명보험사는 집계된 데이터가 없다. 하지만 업계에선 IFRS4와 IFRS17 기준 실적 차이가 상당한 것은 손보사와 똑같다고 보고 있다.

국내 보험사들은 2023년부터 IFRS4 대신 IFRS17을 채택하고 있다. 2023년부터 보험사 실적이 급증하자 ‘착시’ 가능성이 제기됐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IFRS4 실적이 드러나며 회계 착시가 입증된 것이다. 이러한 ‘회계 착시’가 문제인 건 대부분 대형 보험사가 상장사이기 때문이다. 주식 투자자나 보험 계약자들은 IFRS17 기준 실적만 확인할 수 있다.

IFRS4와 IFRS17은 ‘현재’와 ‘미래’ 중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차이를 두고 있다. IFRS4는 당기 보험료 수입에서 보험금 지출을 빼는 현금주의다. 반면 IFRS17은 장기 보험상품에서 미래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는 이익을 시가 평가한 뒤 매년 일부를 당기 이익으로 반영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IFRS4와 IFRS17이 근본적으로 다른 기준이기 때문에 단순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단기 성과주의가 낳은 출혈 경쟁
문제는 IFRS4 기준으로 봤을 때 보험사 업황이 극도로 나빠졌다는 점이다. 삼성화재의 2022년 말 세전이익은 1조5368억원이었다. 지난해 IFRS4 세전이익(1836억원)은 3년 전 대비 88.1% 급감했다. 5대 손보사 가운데 2022년 말 대비 지난해 세전이익이 늘어난 곳은 한 곳도 없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2022년 1조5368억원(IFRS4), 2025년 2조3335억원(IFRS17)이라는 숫자만 보며 ‘실적이 개선됐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동일한 IFRS4를 기준으로 볼 때 보험사 실적이 3년 새 악화한 건 과도한 사업비 지출 탓이다. IFRS4와 IFRS17 이익이 극도로 차이가 나는 결정적 이유도 사업비 반영 수준과 관련이 깊다. 2023년 도입된 IFRS17은 보험사 사업비를 보험기간 전체로 이연해 반영한다. 반면 IFRS4에선 사업비를 최대 7년까지만 이연해서 처리한다.

종신보험 등 보험기간이 긴 상품이 대부분인 국내 보험업계에선 IFRS17 도입 이후 사업비를 당기에 반영하는 정도가 크게 줄었다. 회계상 비용 부담이 줄어들다 보니 회사들은 공격적으로 사업비를 집행하며 출혈 경쟁을 벌였다. 한승엽 이화여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보험사의 주주 배당을 막는 요인인 해약환급금 준비금이 늘어난 것도 사업비 증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금융당국과 업계 안팎에선 IFRS17 관련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회사들이 낙관적 가정을 바탕으로 실적을 부풀리고 있다는 게 대표적이다. 20~30년 뒤 장기적으로 회사에 손실이 되는 상품이라도 당장 매출을 늘리기 위해 낙관적 가정을 채택하고 출혈 경쟁에 나선 것이다. 보험사 최고경영자(CEO) 임기는 3년 안팎에 그치는 점도 회사의 단기 성과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서형교/박시온 기자 seogy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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