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리아 디스카운트’에서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로. 생산적 금융과 자본시장 활성화가 새 정부 경제 정책의 핵심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자금 흐름도 부동산 중심에서 자본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단순히 유동성을 늘리는 차원을 넘어, 금융이 기술 혁신과 산업 전환, 지역 성장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업공개(IPO)와 세컨더리 시장, 비상장 투자 생태계, 모험자본 공급 확대 같은 과제들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 5월 12일, 자본시장 정책을 이끌어 온 서유석 전 금융투자협회장과 성주완 미래에셋증권 IB1부문대표, 이병식 하나은행 IB그룹 부행장이 한자리에 모여 생산적 금융의 방향성과 은행·증권의 역할 변화, IPO 제도 개선, 세컨더리 시장 활성화 등 한국 자본시장의 미래 과제를 심도 있게 짚어봤다. 이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옅어졌지만 진정한 ‘프리미엄’ 시대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 지난해 4월 상호관세 부과 당시 코스피가 2240선이었는데, 1년도 안 돼 8000을 바라본다.
서유석 전 금융투자협회장(이하 서 전 회장) “2023년 10월 협회에 부임해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았던 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였다. 기업 거버넌스를 투명하게 하고 주주 환원 정책만 제대로 하면, 당시 2200 수준에서 5000까지는 충분히 갈 수 있다고 봤다. 당시 우리나라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8 수준이었다. 미국은 3을 넘었고, 이머징마켓 평균도 1.8 정도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인 우리가 이머징 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었다. 제도적 결함과 정책·규제만 잘 풀리면 그 자체로 2배는 갈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5000을 뚫었고 6000, 7000으로 앞자리를 계속 바꿔 가고 있다. 새 정부 들어 상법 개정 1·2·3차를 통한 주주 친화 정책과 거버넌스 투명화 노력, 거기에 조선·방산·원전과 반도체 실적까지 더해지면서 고공행진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빨리 올라서 두려워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시장은 괜찮아 보인다.”
이병식 하나은행 IB그룹 부행장(이하 이 부행장) “현 정부 들어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가 국민들의 투자 수단에 큰 흐름의 변화가 생겼다는 점인 것 같다. 이전에는 부동산에 대한 비중이 컸는데, 지난 1년 사이 부동산에 대한 관심도가 상당히 낮아졌다. 개인적으로 지난해까지는 부동산 금융을 맡다가, 올해부터 국내 투자은행(IB) 총괄을 맡게 됐다. 전체 IB를 총괄하다 보니, 인프라나 투자금융 시장 등 투자할 영역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인생의 목표가 ‘내 집 마련’이라는 점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인생의 목표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집을 사야 한다’는 쪽에 올인한다는 것 자체가 삶의 질을 굉장히 떨어뜨린다고 생각한다. 이는 그동안 쌓여 온 수도권 집중 문제이기도 하다. 다만 몇 십 년 동안 쌓인 숙제를 1~2년 안에 해결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내고 그것을 수렴해 나가면 방법은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성주완 미래에셋증권 IB1부문대표(이하 성 대표)
“그동안 IPO 분야 일을 해 오다가, 지난해 IB1부문대표를 맡게 되면서 부동산을 제외한 기업금융 업무를 전반적으로 총괄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이 에쿼티(equity) 중심의 그룹이다 보니, 에쿼티 중심으로 기업금융을 잘 발전시키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상장사 주가와 연계해서 수익을 내는 부서는 자산관리(WM)나 세일즈 트레이딩 쪽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주식 시장이 좋다 보니 IB도 예년보다는 조금씩 더 나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고,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로 진입했다고 보나.
서 전 회장 “코스피 5000 달성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오명을 벗는 기점이었다. 그 이후를 ‘코리아 프리미엄’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프리미엄은 정상 가치 대비 플러스알파라는 뜻인데, 우리나라 기업들의 기대 이익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어 이를 반영하면 아직 프리미엄은 아니라고 본다. 그동안 억눌렸던 기업 가치가 펀더멘털을 기초로 제대로 반영돼 가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 특히 고무적인 것은, 그동안 ‘서학개미’라는 이름으로 미국 시장에 투자하던 한국 개인투자자들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자본시장의 체질이 튼튼해지고 꾸준한 수익을 낼 수 있다면, 거꾸로 미국 개인투자자들이 한국에 못 올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이야말로 우리 자본시장의 체질 개선과 전 세계 톱 수준의 수익률을 보여주는 중요한 시점이다. 나아가 이제는 해외 투자자들을 국내 시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주식 시장의 수요 기반을 단단히 만드는 것이 결국 우리 기업의 펀더멘털을 강하게 해주는 길이다.”
- 단순히 주가가 높다고 해서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말씀이 중요한 대목이다. 프리미엄 시대로 가기에는 여전히 저평가됐다는 부분을 지적해주셨다. 실제 한국 증시 위상이 국제 시장에서 어떻게 달라지고 있다고 느끼나.
성 대표 “해외 개인투자자들이 해외 증권사 계좌를 통해 국내 주식을 살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한 증권사도 있고, 대부분의 대형사가 준비 중이다. 그만큼 해외에 니즈가 있다는 의미로, 우리나라 주식의 위상이 많이 올라갔다고 판단된다. 특히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비중이 높은 해외 상장지수펀드(ETF)가 거래 순위에서도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우리나라 반도체 관련 기업들에 대한 수요가 굉장히 많아지고 있다는 점은 실제 시장에서도 보인다.”
- 최근 IPO 시장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상대적으로 부진해 보인다는 평가도 있다.
성 대표 “5월은 IPO 업계의 계절적 비수기다. 지난해 3·4분기 실적으로 진행한 기업은 3월 전후 상장되고, 올해 감사 기업들은 6·7·8월에 상장이 많이 이뤄진다. 실제 IPO 시장 자체는 굉장히 뜨겁다. 어제(5월 11일) 상장한 한 기업은 첫날 공모가 대비 4배가 올랐다. 상장 첫날 주가가 좋은 편이고, 기대 수익이 높으니 일반 청약 단계에서도 자금이 많이 몰리고 있다. 청약 경쟁률과 청약 증거금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 다만 중복 상장 이슈로 대기업 계열사들의 상장이 다소 주춤하면서, 예전처럼 공모 규모가 조 단위를 넘는 큰 기업들이 없다 보니 시장이 전체적으로 위축돼 보이는 측면이 있다.”
- 중복 상장 문제는 그동안 제도 개선 논의가 가장 활발했던 영역이다.
서 전 회장 “중복 상장은 기존 모기업 주주들의 이익을 해치는 부정적 영향이 크다. 미국 상장 기업들은 대부분 홀딩컴퍼니(지주회사) 개념의 구조여서, 그 회사 주식 하나만 보유하면 아래에 있는 자회사들이 어디서 수익을 내든 그 수익이 홀딩컴퍼니로 집중되도록 설계돼 있다. 대주주와 소액주주 사이, 또는 물적분할 등에 따른 차별적 이익이 생기지 않는 구조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물적분할을 통한 중복 상장 사례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카카오, LG에너지솔루션이 많이 거론되는 사례다. 이후에도 몇 차례 비슷한 시도가 있었지만, 자본시장 참여자들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그런 시도가 좌절되기도 했다. 중복 상장, 특히 물적분할 이후 핵심 자회사를 상장시키는 것은 모회사 주주에게 기본적으로 마이너스 요인이다. 상법 개정 1·2·3차에 더해, 추가로 물적분할 시 모회사 주주에게 주식을 추가 부여하거나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보완 장치도 마련되고 있다. 100% 막는 것이 답은 아니지만, 소액주주를 보호할 장치는 강하게 작동돼야 한다고 본다.”
은행에서도 최근 예대마진 중심의 전통 금융을 넘어 IPO와 투자금융 등 비은행 수익 확대에 힘을 싣고 있다.
이 부행장 “은행도 이제 단순 예대마진 중심의 전통 금융만으로는 성장을 이어가기 어려운 환경에 놓였다. 금리 경쟁 심화와 비대면 거래 확대 속에서 수익 구조 다변화가 필요해지면서, 최근에는 IPO, 지분투자, 대체투자 등 비전통 금융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하나은행은 상대적으로 안정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에너지·신재생·인프라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생산적 금융’의 확대 기조에 맞춰 관련 투자와 금융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 결국 한국도 은행과 증권의 영역이 허물어지면서 종합금융사 체제로 가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나.
서 전 회장 “실질적으로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종투사라고 한다. 증권사들의 업무 영역을 보면 발행어음이나 종합투자계좌(IMA)는 사실상 은행이 하던 전통적인 수신 기능에 해당한다. 지급결제도 지금은 개인에 국한돼 있지만, 향후 법인 영역으로 확대되면 사실상 은행 업무 중 일부를 수행하는 셈이다. 반면 은행도 신탁을 통해 다양한 자산 운용 업무를 할 수 있고, 업무 범위를 상당히 확대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은행과 자본시장 각각의 핵심 역할은 분명히 살아 있다고 본다. 은행은 예대마진을 통해 이익을 내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그것이 잘돼야 한다. 비이자 수익은 플러스알파일 뿐이다. 반면 자본시장은 리스크 테이킹을 통해 수익을 추구한다. 우리나라 개발금융 시대에는 은행의 역할이 컸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자본시장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성 대표 “IB 부문을 맡고 있어서 회사 전체의 구체적인 방향성을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다만 회사의 방향성은 단순한 IB 업무의 틀을 떠나서, 이제는 금융투자 플랫폼을 완성하는 방향이라고 본다. 미래에셋증권이라는 금융투자 플랫폼이 있다면, 거기에 전 세계인들이 들어와서 미래에셋증권이 공급하는 좋은 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그리는 미래의 모습이다. 그 좋은 상품에는 주식도 있을 것이고, 대체투자도 있을 것이며, 코인도, 토큰증권발행(STO)도 포함될 수 있다.”
- 최근 생산적 금융 논의 과정에서 부동산 금융은 소비적이고, 자본시장 금융은 생산적이라는 식의 이분법적 시각도 나온다. 하지만 대통령도 지나친 양분화는 경계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부행장 “부동산 금융 논란은 결국 수도권 집중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본다. 실제 근로소득자 상당수가 수도권에 몰려 있고, 서울 안에서도 강남권과 강북권의 격차가 크다 보니 특정 지역으로 자산과 수요가 집중되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부동산을 무조건 비생산적이라고 보기보다, 지역 격차 해소와 균형 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인지 함께 봐야 한다.”
- 부동산은 투기이고 주식은 투자인가. 어떻게 봐야 하나.
서 전 회장 “사람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욕구가 의식주다. 돈이 없을 때는 작은 집에 살거나 월세, 전세로 살지만, 돈이 어느 정도 벌리면 자기 집을 갖게 되고, 더 돈을 많이 벌게 되면 더 좋은 집을 사고 싶어진다. 주식 시장에서 돈을 번 사람들 중 상당수도 집을 넓히거나 더 좋은 지역으로 이사 가는 용도로 그 돈을 쓸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기본적인 욕구이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서울, 특히 강남 3구에 집중돼 있는 구조다. 과거부터 이야기돼 온 지역균형발전이나,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5극 3특’가 그런 맥락이다. 전국을 균형 있게 발전시켜 서울·수도권 집중 현상을 완화시키겠다는 취지다. 개인적인 생각 중 하나는, ‘5극 3특’으로 하면 8개 구역이 되는데, 그렇게 한꺼번에 많은 구역에 리소스를 분산하는 것보다는 서울, 부산, 세종 정도로 1차적으로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부산은 지리적 특성상 제조업이 매우 강하고, 물류의 거점이 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도시다. 그런데 좋은 기업이 없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좋은 기업을 지방으로 내려보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최근 유상증자가 다소 주춤한 배경으로, 정부의 친증시·밸류업 정책과 충돌하는 분위기를 기업들이 의식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현장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감지되나.
성 대표 “상장사 유상증자는 단기적으로 주가 희석 이슈가 있어 현재 주춤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기업이 증자를 통해 성장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통해 다시 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 필요하다. 단기 관점에 초점이 맞춰져 유상증자가 큰 잘못처럼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 투자를 위한 유상증자는 좋은 행위다. 특히 중복 상장이 제한되는 상황에서는 모회사가 증자를 통해 자회사 성장 재원을 공급해야 하는 만큼, 투자 목적의 유상증자까지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서 전 회장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은 은행 대출 아니면 직접금융이다. 직접금융을 하려면 유상증자나 채권 발행이 대표적 수단이다. 어떤 형태로든 자금조달 통로는 활짝 열려 있어야 한다. 채권은 이자 부담이 있지만, 유상증자는 이자 부담 없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수단이다. 과거에는 유상증자가 호재였다. ‘뭔가 새로운 사업을 하려고 증자하나 보다’ 하는 긍정적 인식이 있었다. 최근 밸류업 정책이 부각되고 투자자들이 자본비용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되면서, 조달한 자본을 장기적으로 이익이 될 곳에 적극 투자하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그런 확신만 있다면 유상증자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배당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배당하지 않고 그 돈으로 투자해 나중에 주가가 올라가면 그 수익은 주주가 전체적으로 가져간다. 굳이 매년 배당하라고 압력을 넣을 필요가 없다. 일부 기업들은 충분한 자금이 있는데도 거기에 투자하지 않고 별도로 자금을 모집하는 사례도 있긴 하다. 원칙적으로 기업이 새로운 투자 기획이나 인수합병(M&A)을 할 때 필요한 자금, 성장을 위한 기본 자금은 주식이든 채권이든 조달에 장애가 있어서는 안 된다.”
- 최근 자금 흐름이 부동산에서 주식 시장으로 이동하면서 기업 보유 부동산 가치가 위축되고, 결과적으로 기업 경영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부행장 “수도권 집중도가 높다 보니 국내 기업들의 지방 투자가 균형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또한 해외 기업 유치를 통해 지역 산업 기반과 일자리를 함께 키우는 접근이 필요하다. 부동산 역시 단순히 생산적·비생산적으로 나눌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최근 지방은 공사비 급등과 소득 정체로 신규 공급 자체가 어려운 상황인데, 이는 일자리뿐 아니라 문화, 교육, 의료 등 삶의 질 격차와도 연결돼 있다. 인구구조 변화까지 고려해 20~30년 장기 관점에서 지역과 산업·금융 정책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번에는 수요 측면을 짚어보겠다. 한국 증시의 균형적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상장 기업뿐 아니라 비상장 영역에 대한 투자 길도 열어줘야 수요와 공급이 맞는다.
서 전 회장 “자본시장의 본질은 리스크 테이킹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데 있다. 상장 기업 투자뿐 아니라 비상장 모험기업 투자도 중요하다. 테슬라,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도 모두 작은 기업에서 출발했다. 결국 자본시장의 역할은 그런 ‘숨은 진주’를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데 있다고 본다. 그동안 국내 자본시장은 IPO 중심으로 비상장 기업을 상장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비상장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시드 단계 이후 시리즈 A·B 등 성장 단계별 자금 공급이 이어져야 한다. 현재 국내 시장은 그 중간 구간이 비어 있는 경우가 많아 기업들이 ‘데스밸리’를 겪는다. 지난해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법이 통과돼 올해부터 본격 도입될 예정인데, 이런 제도를 통해 유망 기업 투자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벤처기업협회 쪽에서는 우리나라에 투자할 만한 벤처기업이 너무 많다고 한다. 자본시장과 은행도 기존 기준에 맞는 기업만 볼 것이 아니라 투자 영역을 더 확장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발굴한 기업에 국민이 함께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면, 성장의 과실이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다.”
이 부행장 “그동안 금융권은 전통 대출 중심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어 생산적 금융 영역에 필요한 투자·심사·관리 체계를 충분히 갖추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최근 금융기관들은 전문 조직과 인력을 빠르게 확충하고 있다. 좋은 기업을 발굴하고, 심사하고, 관리하는 인력의 삼박자가 갖춰져야 투자가 활성화된다. 새롭게 진입하는 영역은 인프라 구축 시간이 당연히 필요하다. 하나금융지주뿐 아니라 대부분의 금융기관이 생산적 금융을 위한 조직 체계를 갖춰 가고 있고, 유기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기존에 벤처캐피털(VC)에서 활동했던 인력 풀은 제한적이다. 결국 풀 자체가 함께 커야 한다. 발굴 인력뿐 아니라 심사 인력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 그러면 관리 영역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밖에 없다. 은행뿐만 아니라 관계사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은행, 증권, 캐피털, 벤처투자 자회사까지 자주 모여 회의하고 유기적으로 협의하면서 시스템을 갖춰 가는 중이다.”
- 마지막으로 정부의 IPO 정책 방향과 자본시장 과제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린다.
서 전 회장 “국내 IPO 시장은 사실상 코스닥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문제는 상장은 많지만 퇴출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현재 코스닥 상장 종목 수가 약 1800개에 이른다. 퇴출은 안 되고 상장만 계속 이뤄지니 물량은 계속 늘고 코스닥 지수는 좀처럼 오르지 못한다. 시장 매력도가 떨어진다. 혁신 기업과 기술 기업의 상장 활성화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일정 기준에 미달하는 기업은 과감히 퇴출하는 시스템이 함께 작동해야 시장이 건강해질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세컨더리 마켓 육성이다. 현재 국내 스타트업과 초기 투자자들의 자금 회수 경로는 사실상 코스닥 상장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상장이 빠른 회수 수단으로 변질되거나 기업 가치 부풀리기 같은 부작용도 나타난다. 상장 외에도 M&A나 다양한 인수 시장을 통한 회수 경로가 활성화돼야 한다.”
이 부행장 “금융도 결국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 은행이 자산을 축적하는 산업이라면 자본시장은 자금의 회전율을 높이며 새로운 투자를 만들어내는 구조다. 최근에는 두 영역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고 있다. 은행도 자본시장 기능을 확대하고 있고, IMA처럼 자본시장 영역에서도 은행의 수신 기능을 일부 흡수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저희도 지분투자를 직접 하고 있는데, 현재는 IPO 외에 뚜렷한 투자 회수 경로가 부족하다 보니 투자 의사결정 기간이 지나치게 길어지고 예측 가능성도 떨어진다. 해외처럼 세컨더리 시장 등 다양한 회수 장치가 활성화되면 금융기관들도 보다 적극적으로 생산적 금융과 성장 기업 투자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서 전 회장 “금융지주는 은행, 증권, 자산운용사가 함께 있는 구조인 만큼, 은행이 보유한 비상장 기업 정보와 심사 역량을 자본시장과 연계하는 협업에 유리하다. 은행은 대출 과정에서 기업의 신용 정보와 경영 현황, 대표자 평판 등 다양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어 유망 기업 발굴에 강점이 있다. 반면 증권, 운용사는 인력과 조직 한계로 비상장 기업 리서치 커버리지가 부족한 만큼, 그룹 차원의 협업 체계가 필요하다. 실제 비상장 기업에 투자할 때 예상보다 상장까지 시간이 더 걸리는 경우가 많다. 비상장 투자 활성화를 위해서는 IPO 외에도 중간 단계에서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투자 비히클 확대가 필요하다. BDC나 국민성장펀드 같은 상품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국민성장펀드의 경우 세제 혜택이 과감하다. BDC에도 그런 혜택을 과감하게 부여해 개인투자자들이 중간에 엑시트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면 더 많은 수요가 생길 것으로 본다.”
사회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 정리 이현주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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