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반도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시장은 환호하지만 이내 ‘양산 지연’이나 ‘검증 탈락’ 소식에 차갑게 식는 일이 반복되곤 한다. 주범은 ‘수율(Yield)’이다. 반도체 경쟁의 축이 “얼마나 작게 만드느냐”는 전공정 나노 경쟁에서 “얼마나 완벽하게 검증하느냐”는 후공정 고도화 경쟁으로 이동하면서 불량 칩을 걸러내고 공정을 개선하는 ‘테스트 공정’의 난이도와 가치가 치솟고 있다.

테스트 공정은 본격적인 조립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 관문이다. 수개월 동안 수백 개의 공정을 거치며 정성을 다해 만들었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먼지 하나 때문에 작동하지 않는 불량품이 섞여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후속 공정 비용을 고스란히 날리는 것은 물론이고 최종 제품의 품질 신뢰도까지 뚝 떨어진다.
웨이퍼의 건강 상태를 미리 진단해 양품과 불량품을 확실하게 솎아내는 작업은 쉽게 말해 웨이퍼(칩)의 건강검진과 같다. 전문 용어로는 ‘EDS(Electrical Die Sorting) 공정’으로 불린다. 종합검진센터에 의사, 침대, 검사장비가 필요하듯 웨이퍼 건강검진센터도 완벽한 진단을 위해 세 가지 핵심 설비를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테스터(Tester)다. 종합검진센터의 메인 분석 장비다. 사람의 뇌와 같은 역할을 하며 웨이퍼에 전기 시그널을 보내 칩들이 정상적으로 반응하는지 불량인지 최종 판단을 내린다. 장비 한 대당 수십억에서 수백억원에 달할 만큼 고가다. 전 세계 시장은 일본의 어드밴테스트와 미국의 테라다인이 90% 이상 과점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엑시콘, 디아이 같은 기업들이 메모리 반도체와 극한 환경의 테스트 영역에서 국산화에 성공했다.
환자(웨이퍼)를 정확히 검사하려면 정확한 위치와 자세로 환자를 준비시켜야 한다. 프로버(Prober)는 밑에서 웨이퍼를 받쳐 들고, 상하좌우 고속으로 오차 없이 정밀하게 움직여주는 기계 팔이자 초정밀 이동식 침대 역할을 수행한다. 초정밀 위치 제어와 칩의 온도를 제어하는 열 방출 및 관리 기술이 프로버의 핵심 경쟁력이다. 일본 도쿄일렉트론(TEL)과 아크레텍, 한국의 쎄믹스가 이 시장 3대 업체다.
프로버가 환자의 자세를 잡았다면 이제 청진기를 댈 차례다. 테스터가 보내는 전기신호가 실제 웨이퍼 칩까지 전달되려면 둘 사이를 연결해 주는 물리적 접점이 필요하다. 웨이퍼 모양의 판 위에 수많은 미세한 바늘이 촘촘히 박혀 있는 형태의 장비가 바로 프로브 카드(Probe Card)다. 이 바늘들이 웨이퍼 위 칩의 전극 패드에 콕 도장 찍듯 접촉하면서 전기신호를 통하게 만든다. 미국의 폼팩터, 일본의 마이크로닉스재팬이 글로벌 선두 주자로 국내에서는 피엠티, 티에스이, 마이크로투나노, 샘씨엔에스 등이 국산화 수혜를 바탕으로 점유율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반도체 건강검진센터의 3대 로직이 완성된다. 구조는 직관적이다. 프로버(기계 팔)가 웨이퍼를 정확한 위치에 올리면 프로브 카드(바늘)가 칩의 전극을 찌르고 테스터(두뇌)가 합격과 불량 판정을 내리는 식이다.
조립(패키징) 이후에도 테스트 과정이 한 번 더 진행된다. 최종 칩을 꽂아 마지막 검사를 할 때는 ‘반도체 소켓’이라는 부품이 청진기 역할을 이어받는다. 국내 소부장 기업인 리노공업과 ISC가 이 최종 소켓 시장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
테스트 핵심 장비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TSMC 같은 반도체 제조사뿐 아니라 이들의 일감을 받아 테스트를 대행하는 후공정 외주 전문 기업(OSAT)들이 대거 사들인다. 글로벌 1위인 대만의 ASE와 자회사 스필, 미국의 앰코, 중국의 JCET를 비롯해 한국의 두산테스나, 네패스아크, 하나마이크론 등이 대표적인 거점이다. 이들은 장비사들의 핵심 고객으로서 글로벌 후공정 생태계를 지탱해왔다.
그러나 최근 AI 반도체 시대가 열리면서 이 분업 체계와 투자 지형도마저 요동치고 있다. 수율이 곧 기업의 생사결단으로 직결되자 글로벌 반도체 공룡들은 핵심 테스트 공정을 외주에만 맡기지 않고 직접 통제하려는 ‘내재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는 최근 AI 메모리 칩 수요 폭발에 대응하고 독점적인 수율을 사수하기 위해 베트남에 약 2조2000억원을 투입, 대규모 자체 반도체 테스트 공장을 착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에 따르면 내년 11월 가동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조연에 가까웠던 테스트가 이제는 AI 반도체 패권을 좌우할 거대한 승부처이자 글로벌 제조사들이 직접 거머쥐어야 할 ‘가장 강력한 무기’로 부상하고 있는 셈이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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