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 밈에서 출발한 공포영화 ‘백룸’이 미국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온라인 하위문화와 젊은 창작자 기반 콘텐츠가 기존 프랜차이즈 중심 흥행 공식을 흔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터넷 기반 창작 영화 흥행 몰이
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독립 스튜디오 A24의 영화 백룸은 북미 개봉 첫 주말 8150만달러의 추정 수입을 올렸다. 속편이거나 책 원작이 아닌 공포영화 가운데 역대 최고 개봉 성적이다. 이 영화는 2019년 인터넷 게시판 '4chan'에 올라온 형광등 조명의 기이한 방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됐다.해당 이미지는 온라인 하위문화로 확산됐고, 당시 10대였던 케인 파슨스가 유튜브에 올린 영상 시리즈로 대중적 인지도를 얻었다. 파슨스는 유튜브에서 ‘케인 픽셀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졌고, 현재 20세 감독으로 백룸을 연출했다. 영화는 으스스하게 비어 있는 공간을 탐험하는 온라인 신화에서 공포를 끌어낸다.

흥행의 핵심은 Z세대 관객이다. 백룸 관객의 약 86%는 35세 미만이었다. 인터넷 밈에서 태어난 영화가 픽사의 최신작과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스크림’ 속편보다 더 큰 개봉 성적을 거두자, 기존 브랜드와 프랜차이즈를 가장 안정적인 흥행 수단으로 봐온 스튜디오 경영진의 판단도 흔들리고 있다.
같은 주말 2위도 인터넷 기반 창작자의 공포영화였다. 26세 커리 바커가 각본, 연출, 편집을 맡은 ‘옵세션’은 264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바커는 영화학교를 중퇴한 뒤 틱톡과 유튜브에서 첫 대중적 관객을 확보한 인물이다. 배급사 포커스 피처스에 따르면 ‘옵세션’은 1982년 이후 비공휴일 주말 기준으로 개봉 후 두 주 연속 관객 수입이 증가한 첫 와이드릴리스 영화다. 제작비 75만달러의 이 영화는 누적 1억470만달러를 벌었고, 관객의 약 4분의 3은 18~35세였다.
스타워즈 등 대형 프랜차이즈 고전
기존 대형 프랜차이즈의 부진은 대비를 키웠다. 같은 주말 3위인 ‘스타워즈: 만달로리안 앤 그로구’는 티켓 판매가 69% 줄어 2500만달러에 그쳤다. 지난 1월에는 유튜브 창작자 마키플라이어가 자체 자금으로 만든 SF 공포영화 ‘아이언 렁’이 전 세계에서 5000만달러를 벌며 할리우드를 놀라게 했다. 다음 주 개봉하는 ‘어메이징 디지털 서커스: 더 라스트 액트’도 유튜브 채널에서 출발한 영화로, 배급사 패덤 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이미 900만달러의 예매 수입을 올렸다.이 같은 흐름은 팬데믹 이전 이후 가장 좋은 극장가 성적에도 기여하고 있다. 컴스코어에 따르면 미국 내 박스오피스 매출은 지난해보다 11% 늘었다. 마블과 트랜스포머 같은 프랜차이즈가 힘을 잃는 가운데, 할리우드에서는 문화가 온라인에서 형성되는 세계만 경험해온 30세 미만 관객에게 맞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커지고 있다.
스튜디오와 제작자들은 과거 사업 위협으로 여겼던 인터넷 영역에서 영화 소재와 인재를 찾고 있다. 유튜브, 애니메이션, 비디오게임이 그 대상이다. A24와 함께 제작비 1000만달러 규모의 백룸을 공동 투자한 처닌 엔터테인먼트의 코리 아델슨 담당 임원은 젊은 관객에게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이야기로 흐름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파슨스는 약 4년 전 영화 관계자들의 연락을 받기 시작했을 때 캘리포니아 페탈루마의 고등학생이었다. 그는 당시 자신에게 연락한 사람들 대부분이 온라인 하위문화인 ‘리미널 스페이스’의 감각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봤다. 그는 줌 회의에 참석한 어느 누구도 이 현상을 실제로 경험한 세대에 속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파슨스는 제작진을 골라 2년 넘게 이야기를 개발했다. 영화는 초현실적 공간의 미로로 들어가 폭력적 존재와 마주하는 가구점 주인의 이야기다. 전통적 공포영화가 어두운 화면과 갑작스러운 놀람을 결합하는 것과 달리, 백룸은 밝게 조명된 긴 복도와 막다른 모퉁이를 통해 서서히 공포를 쌓는다. 제작자인 제임스 완은 평범함이 공포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마케팅도 로블록스, 레딧, 틱톡 중심
마케팅에서도 줄거리나 스타 파워보다 분위기가 우선됐다. 첫 홍보 티저에는 출연 배우 치웨텔 에지오포와 레나테 레인스베가 등장하지 않았다. 대신 점점 더 이상해지는 방들이 내려가는 장면만 담겼다. 옥외광고와 TV 광고도 많지 않았다. 틱톡이나 레딧 알고리즘에서 타깃 관객층과 맞지 않는 이용자는 영화 존재 자체를 모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관객의 체험 경로도 기존 영화와 달랐다. 19세 소피아 로페스는 로블록스의 팬 제작 게임을 통해 백룸 세계를 처음 접했고,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에서 남자친구와 영화를 봤다. 그는 또래 세대가 백룸 관련 게임을 하거나 영상을 보며 자랐기 때문에 이 콘텐츠가 매우 익숙하다고 말했다.
유튜브 출신 감독들 역할 커져
영화 관객 조사 전문가 케빈 괴츠는 Z세대가 10대와 20대 시절 과거 세대보다 연평균 두 편 정도 영화를 덜 본다는 조사 결과를 제시했다. 그는 스튜디오들이 온라인 문화 경험에 진정성 있게 맞닿은 콘텐츠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젊은 관객에게는 스스로 발견한 것처럼 느껴지는 유기적 콘텐츠를 보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는 설명이다.이 변화는 젊은 관객과 신인 감독을 배출해온 공포 장르에서 더 급하다. ‘옵세션’의 총괄 프로듀서인 제이슨 블룸은 제임스 완과 함께 운영하는 블룸하우스-아토믹 몬스터의 전략을 프랜차이즈 중심 사고에서 인터넷 창작자 중심으로 크게 전환했다고 밝혔다. 그는 10년 전에는 틈새 공포로 여겨졌을 콘텐츠가 이제 주류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인터넷 출신 감독들의 산업 내 역할도 커지고 있다. 바커는 최근 애런 폴과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가 출연하는 가짜 초자연 현상 조사관 소재 영화 ‘애니싱 벗 고스츠’ 촬영을 마쳤다. A24는 그에게 다른 세대의 공포 고전인 ‘텍사스 전기톱 학살’을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도 맡겼다. 바커는 한때 일주일에 두세 차례 온라인 콘텐츠를 올렸지만, 이제는 두세 달 동안 게시하지 못할 정도로 영화 작업이 늘었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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