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는 세상에서 그림값이 비싼 화가 중 하나다. 최고 기록은 2015년 경매에서 ‘누워 있는 나부’로 세운 1억7040만달러(약 2585억원). 이렇게나 ‘몸값’이 비싼 만큼 그의 작품을 한국에서 볼 기회는 흔치 않다.
지금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인상주의를 넘어: 디트로이트 미술관 걸작전’에 그의 작품이 세 점 나와 있다. 한국에서 그의 작품 여러 점이 한자리에 모이는 건 2015년 예술의전당 전시 이후 11년 만이다. 그런데 막상 작품을 보면 의문이 든다. 그림 속 얼굴은 왜 이렇게 길고, 눈동자는 비어 있을까. 왜 이런 그림이 그토록 높은 평가를 받는 걸까.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서 그는 파르미자니노의 ‘긴 목의 성모’에 매료됐다. 목을 비롯한 신체를 의도적으로 늘여 우아함을 연출한 그림이었다. 여기에 더해 베네치아에서 본 동방 정교회 성화(聖畵)의 기울어진 고개, 평면적인 표현은 모딜리아니 작품의 뿌리가 됐다.


스물두 살 때 당시 세계 미술의 중심지였던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그는 인류사 박물관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그는 아프리카 및 동남아시아 등지의 유물을 봤다. 아프리카 가면에서는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방식으로 얼굴을 표현하는 방식을, 캄보디아의 크메르 부처 석상에서는 부드러운 면(面)의 미학을 발견했다. 모딜리아니는 고귀한 대상을 단순한 형태로 표현하는 방식에 인류 미(美)의 본질이 있다고 봤다.
그는 이 모든 것을 합쳐 1916년 특유의 양식을 완성시킨다. 길쭉한 얼굴, 한 줄로 떨어지는 코, 평면 위에 펼쳐진 인물.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없던 모딜리아니만의 화법이었다.


가운데에 걸린 ‘여인’(1917~1920)은 모딜리아니 특유의 양식을 가장 잘 드러낸다. 길게 늘어난 얼굴, 한쪽으로 살짝 기운 머리, 어깨로 흐르는 곡선이 전형적이다. 오른쪽의 후기작 ‘모자를 쓴 청년’(1919)에서 색채는 더욱 따뜻해진다.
세 작품 모두 모델의 이름이 없다. 신분도 사연도 식별할 수 없고, 옷차림도 잘 구분되지 않는다. 모델의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는 걸 중시했던 이전의 서양 초상화 양식과는 전혀 다르다. 이를 통해 모딜리아니는 인간을 둘러싼 겉치레를 벗기고 본질을 포착하려 했다.
다만 모델의 눈동자만큼은 비워둘 때가 많았다.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그때 눈동자를 그리겠다.” 모딜리아니에게는 ‘상대에 관해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은 그리지 않겠다’는 솔직함이 있었다.
가난과 결핵에 시달리던 모딜리아니는 1920년 1월 수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약혼녀는 이튿날 뱃속의 아이와 함께 목숨을 끊었다. 무명의 화가로 스러졌지만,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가 남긴 얼굴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다. 그가 그린 얼굴은 분명 특정 모델을 그린 초상화지만, 그 누구의 얼굴도 아닌 인류 보편의 얼굴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전시는 8월 23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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