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 인터뷰 기사 전문은 한국경제신문이 만드는 온라인 투자전문 플랫폼 '한경 프리미엄9'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근로소득은 이제 꺼져가는 등불입니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에 스스로 창업할 수 없다면, 적어도 당대의 혁신을 이끄는 1등 기업에 투자하는 '동업자'가 되어 자본소득을 누려야 합니다”
자산운용 업계의 ‘살아있는 전설’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사진)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직장인이 되는 시대는 빠른 시일 내에 사라질 것"이라며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60년생인 강 회장은 1990년대부터 명성을 쌓은 한국 자본시장의 1세대 스타 펀드매니저다. 30년에 육박하는 운용 이력에 걸쳐 'IMF 당시 1억원으로 156억원을 만든 남자', '미국 언론이 선정한 세계 99대 투자자 중 유일한 한국인', '한국 가치투자의 원조' 등 수많은 타이틀로 불렸지만, 본인은 언제나 자신이 '운 좋은 주식 농부'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자신은 위대한 기업들을 발굴하고, 그들과 동업(투자)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강 회장의 투자철학은 '미래의 1등 기업을 발굴하고, 장기투자한다'는 한마디로 정리된다. 투자를 '동업'이라고 표현하듯, 빈번한 매매보다는 소수의 유망 종목을 선정하고 장기투자하는 방식으로 유명하다. 이는 강 회장 자신의 투자 인생에서 체득한 투자 원칙을 따른 결과기도 하다.
미래의 1등을 찾는 기준은 세 가지다. 첫째는 ‘미래 기업 환경에 적응 가능한가’이다. 5년, 10년 뒤에도 살아남아 시장을 장악할 기업을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강 회장의 첫 '투자 대박' 사례인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통해 체득한 원칙이다. 그는 1989년 당시 매출액 300억~400억 원 규모의 카폰 회사에 불과했던 한국이동통신의 증권 신고서에서 미래의 독점 가능성을 포착했다. 이후 2만원에 산 주식이 70만 원을 넘어설 때까지 인내하며 자신의 통찰이 막대한 수익으로 이어지는 성공을 경험했다.
가장 극적인 순간은 IMF 위기였다. 모두가 공포에 질려 시장을 떠날 때, 그는 ‘성공한 비관론자는 없다’는 신념으로 증권주 우선주에 베팅했다. 자본주의 체제가 존속하는 한, 안정적인 성장이 보장된 증권 산업의 가능성을 믿고 보통주 대비 85%나 할인된 가격, 배당수익률만 60%에 달하던 우선주를 사 모으며 2개월 만에 수십 배의 수익을 거뒀다. 이어 홈쇼핑의 등장을 보고 택배업의 호황을 예견하며 한진 지분 5%를 매수하면서 지분 공시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투자자 강방천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한 순간이다.

둘째는 ‘불황을 즐기는 시장에서 검증된 1등 기업’이다. 강 회장은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당시 비상장 주식에 투자했다가 70억 원을 잃었던 처절한 경험에서 이 원칙을 얻었다. 그는 “100개가 넘는 비상장 기업에 투자했는데, 닷컴 버블이 가라앉고 나니 살아남은 곳은 단 2개 뿐이었습니다”며 “결국 상장 시장에서 처절한 검증을 뚫고 살아남은 위대한 1등 기업과 함께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도 공격적인 투자전략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고 말했다.
셋째는 ‘이익의 양보다 질’이다. 강 회장은 좋은 이익의 조건으로 확장성, 지속성, 예측 가능성, 비변동성 네 가지를 꼽았다. 특히 ‘확장성’이 없는 이익은 채권과 다를 바 없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철학은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이 지금 같은 장세에서도 삼성전자 보통주에 직접 투자하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강 회장은 “한국의 대형 반도체주와 미국의 빅테크 기업 사이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기업이 일으키는 이익의 질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라며 “메모리 반도체는 결국 이익의 70%를 다시 공장에 쏟아부어야 하는 ‘비자발적 설비투자(CAPEX)’ 산업인 반면, 미국 IT 플랫폼기업은 벌어들인 돈이 고스란히 현금으로 쌓이는 만큼 이익 대비 높은 평가를 받는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전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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