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일본은행 총재' 된 베선트…日 금리인상 '막전막후' [도쿄나우]

입력 2026-06-17 08:04   수정 2026-06-17 08:29

'그림자 일본은행 총재' 된 베선트…日 금리인상 '막전막후' [도쿄나우]



"베선트에 굴복한 다카이치."

일본은행(BOJ)이 16일 31년 만에 기준금리를 1%로 인상한 배경에는 시장과 물가뿐 아니라 미국의 강한 압박도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을 상대로 사실상 금리 인상을 촉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일본 금융정책을 둘러싼 미·일 간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7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베선트 장관은 지난 5월 11일 일본 방문 당시 가타야마 사쓰키 재무상에게 “지금 금리를 올리는 편이 미래에 올려야 할 금리 인상 폭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행이 금리 인상을 미루다 인플레이션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질 경우, 결국 더 큰 폭의 긴축에 나서야 하고 이는 경제와 금융시장에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한 것이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베선트 장관이 당시 금리 인상에 소극적인 다카이치 사나에 정권과 이를 의식하는 일본은행에 사실상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베선트 장관은 이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회의 기간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와도 직접 만났다. 그는 회동 직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우에다 총재가 일본의 금융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끌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적었다. 일본 재무성 내부에서는 이를 두고 “금리 인상을 주저하는 일본은행의 등을 떠민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베선트 장관이 일본의 금리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미국 경제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는 그동안 일본의 장기금리 상승이 글로벌 자금의 일본 회귀를 유발하고, 결과적으로 미국 국채 매도와 미국 금리 상승 압력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를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실제 미국 정부의 기류를 감지한 다카이치 정권 내부에서도 변화가 감지됐다. 중동 정세 악화로 경기 둔화 우려가 커졌던 4월까지만 해도 총리관저 안에서는 금리 인상 신중론이 우세했다. 하지만 5월 22일 다카이치 총리와 우에다 총재가 3개월 만에 회동한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세계적인 흐름을 고려하면 일본도 금리 인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럽중앙은행(ECB)은 최근 약 3년 만에 금리 인상에 나섰고, 미국 중앙은행(Fed) 내부에서도 추가 긴축 가능성을 언급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결국 일본은행은 16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1%로 인상했다. 이는 199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번 결정이 일본은행의 독자적 판단보다는 미국과 금융시장의 압력에 떠밀린 결과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미국 경제조사기관 SGH 매크로 어드바이저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제 베선트 장관이 사실상 ‘그림자 일본은행 총재’가 됐다”는 시장 참가자들의 반응을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은행의 고민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엔화 약세와 물가 상승 압력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시장은 벌써 다음 금리 인상 시기를 점치고 있다. 반면 다카이치 정권은 금리 인상이 가계와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 금리 인상으로 일본은행은 31년 만에 정상화의 상징적 이정표를 세웠지만, 그 이면에는 미국의 압박과 정치권의 견제, 시장의 요구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일본은행이 앞으로도 독립성을 유지하며 추가 긴축에 나설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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