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르망24' 넘은 현대차그룹, 끝나지 않은 추격

입력 2026-06-17 17:34   수정 2026-06-18 00:11

세계 최고 권위의 내구레이스 ‘르망24’가 처음 개최된 건 1923년이다. 막 태어난 자동차 브랜드들은 이곳에서 기술력을 입증했다. 벤틀리, 부가티, 애스턴마틴 등 세계적인 명차가 이때 거둔 우승으로 지금까지 명성을 지키고 있다. 그 시절 한국은 부품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자전거 바퀴를 제조하는 경성정공(현 기아)이 설립된 게 21년 뒤인 1944년이다. 현대자동차는 1974년에야 첫 독자 개발차 ‘포니’를 생산했다.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는 출범한 지 11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현대차그룹이 올해 르망24 데뷔전을 치렀다. 변방의 추격자가 기술력으로 세계 무대에 우뚝 선 장면이다.

르망24는 자동차 제조사에 꿈의 무대로 통한다. 24시간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만큼 엔진 내구성과 연비, 차체 안전성을 한꺼번에 증명할 수 있어서다. ‘지옥의 마라톤 레이싱’으로도 불린다. 폭우가 쏟아지거나 안개가 짙어도 달려야 한다. 1960년대만 해도 2년에 한 번꼴로 드라이버가 숨을 거뒀을 정도다. 특히 어둠이 찾아오고 잠이 쏟아지는 ‘새벽 3시’는 마의 구간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쟁쟁한 완성차 업체도 데뷔전에서 무너졌다. 포드는 1964년 첫 출전에서 기어박스 파손 등으로 차량 3대가 모두 멈췄다. BMW, 닛산, 알핀 등도 데뷔전 완주에 실패했다. 제네시스는 이번 대회에서 24시간4분 동안 총 372바퀴(약 5069㎞)를 고장 없이 내달리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무모해 보이던 도전이 ‘값진 완주’로 평가받는 이유다.

완주를 이끈 원동력은 현대차그룹 특유의 ‘도전 DNA’였다.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팀은 2024년 12월 창단 후 1년6개월 만에 최고 등급인 하이퍼카 대회에 출전했다. 남들이 다 닦아놓은 안전한 길 대신 실패 확률이 높은 최상위 무대로 향했다. 차량 개발부터 드라이버 구성, 팀 운영까지 직접 챙겼다. 차량에 들어간 3.2L 터보 V8 엔진도 자체 개발했다. ‘달리는 냉장고’라고 조롱받던 미국 시장에서 다져온 품질 집착이 완주의 밑바탕이 됐다.

현대차그룹은 르망24 밖에서 또 다른 ‘새벽 3시’를 달리고 있다. 국내 시장에선 지난달 처음으로 테슬라 모델Y에 판매 1위 자리를 내줬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원가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업체에 밀리고 있다. 테슬라와 중국 비야디(BYD) 등이 공세를 펴는 자율주행 기술은 출시조차 못 했다. 자전거 바퀴를 제조하던 회사가 르망24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힘은 위기 속에서 빛을 발한 도전 정신이다. 5년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패러다임 전환기라는 어둠 속을 현대차그룹 특유의 DNA로 뚫고 나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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