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무너진 선거 관리, 위기의 민주주의

입력 2026-06-17 17:35   수정 2026-06-18 00:07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공고화됐는가. 6·3 지방선거에서 선거관리위원회의 총체적 부실 선거 관리 여파로 K민주주의가 도전에 직면했다. 선관위는 인력 부족과 선거철 과중한 업무 부담, 투표용지 수요 예측 실패 등을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으나, 국민 참정권 침해라는 본질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선관위가 여론을 의식해 몇 차례 사과했으나 대학가와 2030세대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성난 민심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다.

선관위 자체 조사 결과 6·3 지방선거 본투표 당일 전국 91개 투표소에서 총 7194장의 투표용지가 부족했고, 투표가 중단·지연된 곳은 서울 송파구와 부산 북구 등 총 26곳으로 확인됐다. 잠실7동 투표소는 서울시 선관위 직권으로 투표시간을 밤 10시까지 연장했다. 개표 입력 과정에서도 오류가 확인된 이번 사태는 선거 무효소송 등 심각한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정치학 이론에서 ‘민주주의’는 선거 결과는 불확실하지만 그 과정과 절차는 확실한 체제를 의미한다. ‘민주주의 공고화’는 민주주의가 ‘마을의 유일한 게임이 되는 상태’를 뜻한다. 미국 비교정치학자 린즈(Juan J Linz)와 스테판(Alfred Stepan)은 특정 세력이 초헌법적 권한을 행사하는 ‘유보 영역’(reserved domains)이 부재해야 민주주의가 완성된다고 주장한다. 민주화를 경험한 한국은 이 정신을 헌법에 반영하고, 공정한 선거 관리를 통해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왔다.

투표용지 부족과 개표 오류 등 부실한 선거 관리는 민주주의 원칙이 얼마나 허약하게 작동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국민 참정권은 민주주의의 출발점이자 정당성의 근간이다. 선거 절차의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민주주의 정당성도 침식된다. 선관위는 선거 절차의 확실성을 무너뜨리고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했으며, 부정선거 논란을 자초해 민주주의 공고화에 역행했다. 선관위는 해체에 준하는 전면 개혁이 정답이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성역 없는 수사로 사태의 진실을 규명하고, 관련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선관위 쇄신은 선거 관리의 독립성을 보장하되 민주적 책임성과 통제 장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 중앙선관위원장과 위원들은 헌법기관 지위를 누리지만 대부분 비상근직이며 실제 선거 관리는 사무처 몫이다. 권한과 책임이 분리된 구조에서 선거 문제가 발생하면 정치적·행정적 책임 공백은 불가피하다. 선관위 지휘부의 상근직 전환 등 책임 운영을 위한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

지난달 기준 전국 선관위 휴직자는 181명으로 전체 정원의 6%에 해당한다. 제8회 지방선거 당시 휴직자는 226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전국 단위 선거를 앞두고 반복되는 휴직과 대체인력 중심의 편의적 인사 관행은 선거 관리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약화한다. 구조적·고질적 기강 해이는 ‘아빠 찬스’ 논란을 낳았고, 이번 사태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독립성이라는 방패 뒤에 책임은 실종되고 특권만 남은 조직문화가 고착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민주주의에서 독립성은 책무를 전제로 하며, 선관위 또한 국민적 감시의 예외가 아니다. 헌법기관이 스스로 유보 영역으로 군림하는 현실은 민주주의의 역설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선거제도 전반의 혁신도 서둘러야 한다. 투표용지 부족의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된 사전투표 제도는 존치 여부부터 재검토하되, 유지한다면 재외동포와 군 장병 등 부재자를 제외하고 사전투표 장소를 주민등록지 관할 투표소로 한정하는 방식이 합리적이다. 아울러 사전투표용지가 개표소에 전달되기까지 전 과정을 추적 관리하는 시스템은 ‘배달 사고 위험’을 줄이고 부정선거 논쟁을 잠재울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본투표 기간을 휴일과 근무일 이틀로 지정하는 방안은 투표율과 생산성을 함께 살리는 해법이다.

6·3 지방선거 이후 대통령과 집권 여당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고 있다. 선거 결과와 ‘명청대전’에 대한 실망보다 공정·정의라는 민주적 가치를 국가가 외면한 데 대한 국민적 분노가 광장으로 향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가 국민 참정권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K민주주의 미래 또한 장담할 수 없다.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삼성바이오로직스현대차삼성전자트럼프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