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전환과 공급망 재편, 기후위기 대응이 동시에 이뤄지는 시대다. 공공기관의 사회적 책임도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과거에는 기부와 후원 중심의 사회공헌이 많았다. 최근에는 기관이 보유한 기술과 전문성을 활용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산업 경쟁력을 높이고 국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에 더해 식량안보와 환경 보호, 미래 인재 육성까지 공공기관이 책임지는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문제는 기술력이 있어도 실제 운전 실적이 없으면 시장 진입이 어렵다는 점이다. 가스공사는 평택 LNG 기지를 시험 무대로 개방했다. 국내 기업이 실제 현장에서 제품을 검증할 수 있도록 지원한 것이다. 그 결과 국산 펌프는 수백 차례 시험 운전을 거쳐 성능을 입증받았다. 가격은 외국산보다 저렴하고, 공급 기간은 짧아졌다. 공공기관이 보유한 인프라를 개방해 중소기업의 성장을 지원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발전소 현장에서는 AI와 로봇이 안전 관리를 맡고 있다. 한국서부발전은 네 발로 걷는 로봇을 발전소에 투입했다. 이 로봇은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구역을 순찰하며 설비 상태를 점검한다. 안전모 미착용과 작업자 쓰러짐 같은 위험 상황을 감지하고, 관련 정보를 관제센터에 실시간으로 전달한다. 반복적인 점검 업무를 로봇이 대신하면서 직원들은 정비와 안전관리 같은 고난도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서부발전은 연료 수송 관리에도 AI를 적용했다. 선박 위치와 기상 정보를 분석해 입항 시간을 예측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서부발전 관계자는 이를 통해 발전 연료 재고를 더욱 정확하게 관리하고 물류 비용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수원은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닥터헬기를 활용해 신속히 병원으로 이송하는 체계도 구축했다.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안전 교육과 컨설팅도 확대했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 협력사까지 함께 안전 수준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최근에는 식량안보 측면에서도 공공기관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기후위기와 전쟁, 공급망 불안이 겹치면서 식량 확보가 국가 안보 문제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농림식품축산부 등 정부와 함께 국제 식량원조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올해는 식량 부족을 겪는 아프리카·중동·아시아 국가에 총 5만t의 쌀을 지원할 계획이다.
태풍과 홍수 피해를 본 동남아시아 국가를 대상으로 한 긴급 쌀 지원 사업도 지속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은 이제 국제사회에서 대표적인 식량 공여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과거 식량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식량안보를 지원하는 국가로 위상이 달라졌다는 의미다.
해양 분야에서는 미래 인재 육성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지역 상생과 해양 인재 육성, 해양환경 보호를 핵심 축으로 사회공헌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취약계층 청소년에게는 해외 해양문화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중학생 대상 해양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최근에는 AI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해양산업 교육 과정도 새롭게 마련했다. 친환경 선박과 스마트 항만 등 미래 산업에 필요한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다.
친환경 제품 할인 행사와 리필 캠페인 등을 통해 녹색 소비 확산에 나서고 있다. 환경 보호를 일상 속 소비 행동과 연결하려는 시도다. 친환경 제품 소비가 늘어나면 관련 산업도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의 사회공헌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고 평가한다. 단순한 지원 사업을 넘어 기관의 본업과 전문성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다. 기술 자립과 AI 혁신, 안전 경영, 식량안보, 미래 인재 육성, 환경 보호가 모두 공공기관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사회적 가치로 자리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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