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황실, 대 끊기게 생겼는데…"여왕은 안돼" 고집하는 까닭 [도쿄나우]

입력 2026-06-18 14:54   수정 2026-06-18 15:20

日 황실, 대 끊기게 생겼는데…"여왕은 안돼" 고집하는 까닭 [도쿄나우]



‘임의 시대가, 천년 만년 이어져, 작은 돌들이 모여 큰 바위가 되고. 그 위에 이끼가 낄 때까지.’

일본 국가 기미가요에는 초대 천황으로 여겨지는 진무천황 이후 단 한 번의 왕조 교체도 없이 같은 혈통이 이어져 왔다는 이른바 '만세일계(万世一系)'의 이상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 만세일계가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황실규정상 아버지를 따라가는 '남계 혈통'의 남성만 왕이 될 수 있어서다. 국민들 사이에선 인기가 많은 아이코 공주가 여왕이 됐으면 좋겠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일본 국회는 양자를 들여서라도 대를 이어야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현재 일본 황실은 심각한 후계자 부족 문제에 직면해 있다. 나루히토 일왕의 자녀는 외동딸인 아이코 공주뿐이다. 하지만 일본 황실전범은 "황위는 남계(男系)의 남자가 계승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아이코 공주에게는 왕위 계승권이 없다.

현행 제도상 다음 세대 남성 계승자는 나루히토 일왕의 조카이자 후미히토 왕세자의 장남인 히사히토 친왕 단 한 명뿐이다. 공주가 결혼해 낳은 자녀는 물론, 여성 일왕의 자녀인 이른바 '여계 천황'도 인정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일본 사회에서는 "이대로 가면 왕가의 대가 끊길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 아사히신문과 마이니치신문이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여왕을 허용해야 한다는 응답이 70%를 넘었다. 국민적 인기가 높은 아이코 공주를 차기 일왕 후보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도쿄의 한 직장인은 "이미 영국도 오래전부터 여왕을 인정하고 있는데 요즘 시대에 아직도 성별을 따지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 정치권, 특히 보수 성향이 강한 집권 자민당은 여왕 허용에 선을 긋고 있다. 대신 중·참의원 정·부의장들은 최근 '안정적인 황족 수 확보를 위한 입법부의 총의'를 마련해 정부에 전달했고, 다카이치 사나에 정권은 이를 토대로 황실전범 개정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합의안의 핵심은 두 가지다. 여성 황족이 결혼 후에도 본인이 원할 경우 황족 신분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과, 1947년 황실 축소 정책으로 황적을 이탈한 구 황족가 출신 남계 남성을 황족의 양자로 받아들여 황실에 복귀시키는 방안이다.



구 황족가 남성의 황실 복귀 방안이 가장 큰 논란거리다. 대상이 되는 11개 옛 궁가 후손들은 현재 황실과 혈연관계가 있지만 공통 조상을 찾으려면 약 6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보수 진영은 "남계 계승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남성 황족이 급감한 상황에서 남계 남자 계승 원칙을 유지하려면 구 황족가 후손의 복귀 외에는 현실적인 대안이 없다는 논리다.

반면 입헌민주당과 공산당 등 진보 진영은 "국민 다수가 지지하는 여왕 논의는 외면한 채 사실상 일반인이 된 옛 황족 후손을 다시 황실로 불러들이려 한다"고 비판한다.

결국 일본 정치권은 당장의 황족 수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 황족 신분 유지'와 '구 황족가 남성의 황실 복귀'라는 절충안을 내놓았지만, 국민 다수가 지지하는 여왕 허용 문제는 다시 미뤄두게 됐다.

여성도 왕이 될 수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남계 남성 계승 전통을 지켜야 하는가. 일본 황실의 미래를 둘러싼 논쟁은 황실전범 개정 과정에서 계속될 전망이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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