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주사고를 낸 운전자가 “내가 차를 몬 것으로 해주겠다”는 동승자의 ‘운전자 바꿔치기’ 제안을 승낙했다면 범인도피방조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조희대 대법원장)는 18일 범인도피방조와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된 전직 경찰관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범인이 제3자가 자신(범인)을 위해 허위로 자백하는 걸 방조하는 행위가 범인도피방조죄에 해당하는지, 방어권 범위에 속한다고 봐야 하는지가 쟁점이 된 사건이었다.
A씨는 2023년 5월 전북 전주에서 술을 마신 채 운전하다가 신호대기 중인 앞차를 들이받았다. 조수석에 있던 친구 B씨가 “내가 (술을 안 마셨으니) 운전했다고 하겠다”고 말하자 A씨는 이를 받아들이고 뒷좌석으로 이동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B씨의 음주 여부를 측정한 뒤 단순 사고로 처리했다. 이후 보험사 직원 신고로 운전자 바꿔치기 정황이 드러났다. 1심과 2심은 모두 A씨의 범인도피방조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대법관 8인은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봤다. 대법원 판례상 범인 스스로 도피하는 행위는 범인도피죄로 처벌하지 않는다. 방어권 차원에서 용인될 수 있다는 취지다. 그러나 타인에게 허위 자백을 시키거나, 허위 자백을 용이하게 만들어 ‘가짜 범인’을 수사기관에 내세우는 ‘범인 조작형 도피행위’는 범인도피교사·방조죄로 처벌해 왔다. 이 판례를 유지해야 한다는 게 대법관 다수 의견이다.
다수 의견은 “범인 조작형 도피행위로 인해 진범의 존재가 감춰지고 수사 방향 자체가 왜곡돼 진범에 대한 수사, 재판 및 형의 집행 등이 곤란하거나 불가능할 수 있다”며 “범인 조작형 도피행위에서 교사와 방조를 구분해 방조에 대해서만 방어권 남용 법리의 적용을 배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인혁/김유진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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