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이수동에 사는 15년차 직장인 이선주 씨(41). 이 씨는 평소 다니는 피부과에서 윤곽 레이저 관리를 최근 추가했다. 위고비로 체중을 감량한 뒤 이른바 '오젬픽 페이스(피부 처짐)'를 겪었기 때문이다. 그는 마사지숍에서 경락을 받고, 펩타이드 성분이 든 화장품을 바르고, 수면의 질을 높이는 보충제를 직구해 먹는다. 피부과와 약국, 화장대를 넘나들며 최적의 관리 포트폴리오를 짜고 끊임없이 수정한다.

BCG가 미국의 고관여 뷰티 소비자 5000여 명을 조사한 결과 옵티마이저는 전체 성인의 6%를 차지했다. 이들의 연평균 뷰티 관련 지출액은 약 3000달러(전통 화장품 1100달러, 미용 시술 900달러, 건강 관리 800달러)에 달한다. BCG는 이 집단 규모가 두 배로 성장할 경우 뷰티 산업에 300억 달러(약 40조 원) 규모의 거대한 신시장이 열릴 것으로 전망했다.
비만치료제의 대중화가 옵티마이저의 지갑을 여는 강력한 트리거가 됐다. 옵티마이저 중 30%가 최근 12개월 내에 위고비, 마운자로 등 GLP-1을 사용했다. 투약자 중 60%가 얼굴 볼륨 감소 등의 신체 변화를 느꼈고, 그 결과 이중 80%가 필러와 탄력 시술, 윤곽 레이저 치료 빈도를 늘렸다. 50%는 럭셔리 메디컬 스킨케어 사용을 확대했다. 다이어트약이 고가 스킨케어와 미용 시술 수요를 폭발시키는 연쇄 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카테고리를 겹겹이 쌓아 올리는 '레이어링' 소비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스킨케어 제품을 구매하는 옵티마이저의 60%는 수면이나 스트레스 관리를 위한 보충제를, 색조 화장품 구매자의 60%는 뷰티 관련 보충제를 함께 샀다. 피부 레이저 재생 시술 구매자의 50%가 관련 스킨케어를 추가로 사고, 치과 임플란트를 한 사람의 60%가 주사 시술을 동시 구매했다. 하나의 제품이나 시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여러 수단을 함께 쓰는 방식이다.
옵티마이저의 등장에 뷰티 기업의 마케팅 공식도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예쁜 패키지, 유명 모델, SNS 바이럴이 판매의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성분 근거, 임상 데이터, 전문가 추천, 개인화 진단, AI 검색에 걸리는 정보 구조가 중요해지고 있다. 소비자가 '나에게 맞는 제품인가'를 묻기 시작하면서 브랜드도 제품을 파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진단과 추천, 사후관리까지 제공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글로벌 미용 의료 기업 갈더마는 GLP-1 체중 감량 이후 급증하는 피부 처짐 시장을 겨냥해 특화된 포트폴리오를 개발하고 있다. 로레알은 피부 노화를 단순한 주름 문제가 아니라, 세포 활동과 염증 반응, 생물학적 나이 등 수명 연장 생태계와 연결해 막대한 연구비를 투입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옵티마이저형 소비의 전조가 뚜렷하다. 홈 뷰티 디바이스 '메디큐브 에이지알'로 급성장한 에이피알이 홈케어를 넘어 병원용 전문 의료기기 시장 진출을 선언한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 K뷰티 시장에서 PDRN, 펩타이드, 엑소좀, 리들샷 같은 단어가 메가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 역시 단순한 원료 마케팅을 넘어, '피부과의 언어'가 화장품으로 직접 내려온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뷰티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화장품 회사의 경쟁자는 같은 화장품 브랜드뿐만 아니라 피부과, 성형외과, 치과, 건강기능식품 회사, 의료기기 회사, AI 진단 플랫폼 모두가 될 것"이라며 "화장품 기업이 이들과 협업하거나 직접 진출할 기회도 커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품 하나를 잘 만드는 기업보다 소비자의 문제를 진단하고, 루틴을 제안하고, 시술과 홈케어를 연결하는 기업이 유리해지는 구조"라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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