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시]
아름다운 삶
김명화
하늘이 아름다운 건
별이 있기 때문이고
땅이 아름다운 건
꽃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아름다운 건
사랑이 있기 때문이고
우리의 삶이 아름다운 건
곁에 친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태헌의 한역]
美麗人生(미려인생)
彼天美麗因有星(피천미려인유성)
此地美麗緣有英(차지미려연유영)
世上美麗爲有愛(세상미려위유애)
吾生美麗由賢兄(오생미려유현형)
[주석]
* 美麗(미려) : 아름답다. / 人生(인생) : 인생, 삶.
* 彼天(피천) : 저 하늘. ‘彼’는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因有星(인유성) : 별이 있음으로 인해서 (이다), 별이 있기 때문이다.
* 此地(차지) : 이 땅. ‘此’는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緣有英(연유영) : 꽃이 있음으로 인해서 (이다), 꽃이 있기 때문이다.
* 世上(세상) : 세상. / 爲有愛(위유애) :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 吾生(오생) : 우리의 인생, 우리의 삶. / 由賢兄(유현형) : 친구로 말미암아서 (이다),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賢兄’은 어진 형님이라는 뜻이지만, 옛날에 편지나 시문에서 가깝게 오래 사귄 ‘친구’를 높여 부르는 말로 자주 사용됐다.
[한역의 직역]
아름다운 삶
저 하늘이 아름다운 건
별이 있기 때문이고
이 땅이 아름다운 건
꽃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아름다운 건
사랑이 있기 때문이고
우리의 삶이 아름다운 건
친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역 노트]
삶의 시계가 가리키는 눈금이 깊어질 때마다 역자는 버릇처럼 오래된 책을 뒤적거리거나 눈에 밟히는 시를 나직이 읊조려 보고는 했다. 한글로 쓰여진 시를 한역(漢譯)하고 다시 그 시를 위해 글을 쓰는 일은, 단순히 문자 의미의 호오(好惡)를 저울질하거나 언어를 다듬는 기계적인 작업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역자의 단조로운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고, 삶의 굽이마다 마주했던 인연들의 얼굴을 복원해내는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숭고한 영혼의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역자의 마음을 오랫동안 붙잡고 놓아주지 않은 시가 한 편 있었다. 김명화 시인의 「아름다운 삶」이라는 단조롭고도 맑은 위의 시였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역자는 오랫동안 이 시를 김명화 시인의 작품으로 알고 그 따뜻한 감성에 깊은 위로를 받아왔지만, 막상 그 시인이 정확히 누구인지 지금으로선 특정할 수도 없는 기묘한 상태에 놓여 있다. 시인의 구체적인 생애나 약력, 혹은 이 시가 어떤 상황에서 지어졌는지조차 안개 속에 가려져 전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시인이 시에 새겨놓은 언어만큼은 세월의 풍파를 견디고 이토록 선명하게 살아 숨 쉬며 역자의 영혼을 뒤흔들고 있다. 시인의 이름 석 자 뒤에 숨은 구체적인 삶은 파악할 수 없어도, 시인이 시를 통해 세상에 각인한 ‘아름다운 다정함’만큼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역자의 가슴에 도달한 것이다.
역자는 애초에 이 시가 지닌 순수하고 투명한 서정성에 매료돼 한동안 멍하니 시를 바라보다가 이내 시 전문(全文)을 복사해 ‘새 문서’에 붙여넣기 했다. 그리고 바로 이 시를 한시로 옮기는 작업에 착수했다. 원시에서 구현된 울림을 온전히 한시로 재구성해 보고 싶다는 욕망이 부지불식간에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彼天美麗因有星(피천미려인유성) 저 하늘이 아름다운 건 별이 있기 때문이고
此地美麗緣有英(차지미려연유영) 이 땅이 아름다운 건 꽃이 있기 때문입니다
世上美麗爲有愛(세상미려위유애) 세상이 아름다운 건 사랑이 있기 때문이고
吾生美麗由賢兄(오생미려유현형) 우리 삶이 아름다운 건 친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광활하고 적막한 우주 속에서 저 머나먼 하늘[彼天]이 빛날 수 있는 까닭은, 밤하늘을 조용히 수놓는 무수한 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별이 없다면 하늘은 그저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하고 무서운 암흑의 구렁텅이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가 매일 거친 발걸음으로 딛는 이 투박한 땅[此地]이 매 순간마다 감동과 생동감으로 다가오는 것 역시, 저마다 어렵게 피어난 꽃[英]들이 대지를 위로하고 있기 때문 아니겠는가! 하늘과 땅이라는 거대한 자연의 테마를 ‘별’과 ‘꽃’이라는 미소(微小)한 존재들의 상호작용으로 풀어낸 원시의 깊은 시선은, 우리 인간들이 잠시 머물고 있는 ‘세상’과 거기에서 엮어지는 ‘삶’의 영역으로 조용히 수렴됐다.
‘나’와 ‘남’이 매일 같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 세상이 거칠고 험함에도 궁극적으로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일까? 시인은 그 이유를 ‘사랑[愛]’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사랑’이 가장 구체적이고 밀도 높게 실현되는 순간을 자신 곁에서 숨 쉬고 있는 ‘친구[賢兄]’의 존재에서 찾았다.
그리하여 역자는 마지막 구절의 “친구가 있기 때문”이라는 대목을 “유현형(由賢兄)”으로 번역하면서 생각에 깊이 잠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대목의 ‘현형(賢兄)’은 단순히 나이가 비슷하여 편하게 어울리거나, 혹은 술잔을 기울이며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동무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내’ 삶의 모자란 부분을 소리 없이 채워주고, ‘내’가 절망의 언덕에서 뿌리가 얕은 나무처럼 하염없이 흔들릴 때 묵묵히 버팀목이 되어주며, 때로는 삶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기도 하는 지혜롭고 어진 모든 인연을 아우르는 말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역자의 삶을 가만히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역자를 키우고 지탱해 준 것은 역자의 그 얄팍한 지식이나 그 알량한 성취가 아니었다. 역자가 깊은 슬픔에 잠겨 괴로워할 적에 찻잔이나 술잔을 건넸던 이들, 먹고 사는 일로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고심하며 밤을 지새울 적에 소리 없는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그리운 이들이야말로 내 삶의 진정한 ‘현형’들이었다. 그 어진 인연들이 없었다면 역자는 고독이라는 메마른 사막에서 진작에 길을 잃고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은 본질적으로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외롭고도 쓸쓸한 여정이다. 아무리 화려한 무대 위에서 세상의 스포트라이트(spotlight)를 온몸에 받았다 하더라도, 조명이 꺼진 뒤에 찾아오는 적막과 고독은 온전히 스스로의 몫으로 감당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 깊고 어두운 고독의 심연 속에서도 우리가 다시금 미소 짓고 내일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것은,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주며 ‘내’ 그림자를 함께 밟아주는 ‘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별이 없는 하늘이 암흑에 불과하고 꽃이 없는 땅이 황무지에 지나지 않듯, 좋은 친구가 없는 삶이란 온기가 없는 적막과 다름이 없다. 친구의 존재는 우리의 거친 삶을 비추는 밤하늘의 별이며, 메마른 일상을 물들이는 대지의 꽃인 셈이다.
누구인지 잘 알 수 없는 김명화 시인이 세상에 뿌려둔 시 하나가, 역자의 손을 거쳐 먼 옛날 선비들이 읊조리던 한시의 가락으로 다시 태어났다. 비록 시인의 모습은 영영 특정할 수 없을지 몰라도, 이 시를 읽고 한역하며 눈물짓고 미소 지었던 역자의 주관적인 감동과 교감만큼은 생생한 진실로 남게 될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얼굴도 모르는 이의 문학적 고백이 또 다른 누군가의 영혼을 따스하게 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문학이 위대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오늘 다시 한번 시인의 원시와 함께 역자의 한역시를 나직이 읊조려 본다. 글자마다 번지는 여운 속에서, 역자에게 힘이 되어주었던 사람들의 얼굴이 밤하늘의 별이나 대지의 꽃처럼 아련하게 떠오르고 또 피어난다. 삶의 모든 여정 속에서 묵묵히 역자 곁을 지켜준 수많은 ‘현형’들에게,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외로이 삶을 견뎌내고 있는 이 칼럼의 모든 독자들에게,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감사의 마음을 진심으로 전하고 싶다. 당신이 있기에 ‘나’의 하늘에는 여전히 길을 밝히는 별이 뜨고, ‘나’의 땅에는 언제나 환한 미소를 보여주는 꽃이 피어난다. ‘나’의 삶이 그럭저럭 아름답고 그래도 살만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바로 지금 ‘내’ 곁에서 함께 걸어가고 있는 당신이라는 존재 덕분이다.
역자는 연 구분 없이 8행으로 구성된 원시를 4구의 칠언고시로 한역하였으며 그 압운자는 ‘星(성)’, ‘英(영)’, ‘兄(형)’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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