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 초기부터 '무용 특화 공연장'을 자처하며 지역 내 애호가들의 수요를 이끌어온 강동아트센터가 15주년을 맞이해 무대 뒤 리허설의 시간과 예술가의 진솔한 삶을 들여다보는 특별한 기획을 마련했다. 지난해 티켓 오픈 1분만에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호응을 얻었던 '최태지의 발레 오픈 리허설' 시리즈가 한층 확장된 구성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오는 8월 8일, 11월 14일 강동아트센터 소극장 드림에서 열리는 이번 시리즈는 클래식 발레와 현대무용을 아우르는 두명의 예술가, 윤혜진(46)과 차진엽(48)을 조명한다. 삶의 궤적, 창작의 과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무대를 앞두고 최태지 예술감독과 두 사람이 지난 19일 언론과 만났다.
○8월 무대엔 발레리나 윤혜진...스승과 함께 10년만의 '발레' 복귀
윤혜진은 반가운 얼굴이다. 과거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이자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에 입단해 세계를 누볐던 그가 토슈즈를 다시 신는다. 이번 무대는 2014년 국립현대무용단 '춤이 말하다' 이후 10여년만의 공식 복귀작이다. 발레 무대에 그를 세운 사람은 오랜 스승이자 발레계의 대모 최태지 예술감독(전 국립발레단장)이다.
최 감독은 윤혜진을 강렬한 카리스마로 전막 발레를 이끌던 독보적 무용수로 기억한다.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감독에게 직접 오디션을 주선해 그의 해외 진출도 도왔던 것도 최 감독이었다. 윤혜진이 이른 시기에 은퇴한 것을 아쉬워하던 그는 이번 공연을 기획하며 "혜진아, 무대 안 서고 싶어?"라는 말로 그의 마음을 두드렸다. 윤혜진은 "최 감독님이 늘 '너는 발레리나야. 내가 너를 다시 꼭 무대 위로 올릴거야'라는 말을 하셨던 터라 도무지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이번 8월 공연 '를르베: 다시, 무대 위로'는 총 3막으로 구성됐다. 윤혜진의 화려한 전성기, 결혼과 출산으로 무대를 떠났던 공백기, 다시 삶 속에서 춤을 발견하는 현재를 입체적으로 그려낼 계획이다. 말미에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대표 레퍼토리인 '도베 라 루나'를 선보인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안무가 마이요도 다시 시작하려는 윤혜진에게 아무 조건없이 무대를 허락했다.
현역 시절의 컨디션을 되찾기 위해 PT와 발레 클래스, 러닝을 병행하며 눈물을 삼켰다는 윤혜진. 그는 "젊은 날의 기교를 보여주기보단 살면서 겪은 일들이 투영된, 지금 내 나이의 춤이 가진 깊이로 감동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도베 라 루나'에 함께 출연해 호흡을 맞추는 무용수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한국인 수석무용수 안재용(34)이다.
안재용은 윤혜진의 복귀 소식에 "안무가 조금 바뀌었으니 직접 도와주겠다"며 의상까지 직접 챙겨 입국하겠다는 열정을 보였다. 세계적인 무대에서 활약 중인 까마득한 후배가 오랜만에 돌아오는 선배를 위해 든든한 지원군을 자처한 셈. 이들의 2인무는 단절을 경험한 이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용기를 주는 동시에, 스승에서 제자로 다시 선배에서 후배로 이어지는 무용계의 아름다운 연대를 확인케 한다는 점에서 묵직한 감동을 더할 예정이다.

○11월의 호스트, 안무가 차진엽 '원형하는 몸'을 통해 던지는 존재론적 질문
11월 무대를 책임질 현대무용 안무가 차진엽과 최태지 감독의 인연도 깊다. 윤혜진과 초등학교 시절 국립발레단 문화학교 1기 동창으로 함께 발레를 배웠던 차진엽은 고등학교 시절 현대무용을 접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동아무용콩쿠르에서 금상을 받았을 때 소감으로 최태지 단장에게 감사를 전했던 소녀는, 훗날 런던 유학 중 최 감독의 전화 한 통을 받고 한국에 돌아와 국립발레단과 협업했다. 2009년 초연한 창작 발레 '왕자 호동'의 조안무를 맡았던 것을 계기로 국내에서 창작을 활발히 이어온 그는 현재 국립현대무용단장 겸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차진엽은 2020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프로젝트 '원형하는 몸'을 토대로 창작가의 고뇌를 담은 무대를 올릴 계획이다. 그는 "제가 발레에서 파생된 현대무용을 하고 있지만, 모든 춤의 시작점은 같다"며 "이번 무대는 제 삶의 뿌리와 궤적을 찾아가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공연의 구체적인 형태는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차진엽은 직접 쓴 대본과 안무를 바탕으로 최근 깊이 탐구하고 있는 '정성'과 '돌봄'의 의미를 자신의 몸으로 풀어내며, 완성된 결과보다 창작이 무르익어 가는 과정 자체를 관객과 공유하겠다는 구상이다.
모든 것이 가속화되는 AI 시대에 왜 여전히 우리는 극장에 모여 몸의 언어를 바라봐야 할까.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창작 영역까지 빠르게 잠식하는 시대, 차진엽은 오히려 예술이 인간의 몸을 다시 발견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가 많은 것을 대신하는 시대일수록 결국 남는 것은 몸이라고 생각해요. 극장은 그 몸의 시간을 함께 통과하는 공간입니다. 무용은 아름다운 몸을 보여주는 예술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의 몸을 돌보며 살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예술이라고 믿습니다."
'최태지의 발레 오픈 리허설'이 가진 진짜 매력은 관객과 무대 사이의 거리감을 좁히는 데 있다. 윤혜진은 "단절을 어쩔 수 없이 맞이해야 했던 많은 사람에게 내 무대가 다시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차진엽 역시 "그저 동경하거나 대상화하는 공연이 아니라 관객이 그 안으로 함께 걸어 들어올 수 있는 무대가 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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