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역에서 차를 몰고 북서쪽으로 약 세 시간 이동해 도착한 폭스바겐 오스나브뤼크 공장. 퇴근 시간 전인데도 주차장이 텅 비어 있었다. 포르쉐의 박스터 등 고급 스포츠카를 수탁 생산하던 이 공장은 내년 6월 일감이 모두 사라진다. 폭스바겐은 이 공장에서 이스라엘 라파엘의 방공시스템 ‘아이언돔’ 부품을 생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요아브 투르제만 라파엘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잇따른 전쟁은 세계 각국이 전시에 필요한 수준보다 훨씬 적은 무기를 비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며 “유럽 전역에 무기 생산 기지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유럽이 재무장하고 있다. 1990년 동·서독 통일과 이듬해 소련 해체 이후 약 35년 만에 일어나는 변화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주요국이 앞다퉈 국방 지출을 늘리며 자국 방위산업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
이달 독일 베를린과 프랑스 파리에서 한 주 간격으로 열린 방산 전시회는 문전성시를 이뤘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ILA 베를린 에어쇼에서 항공우주 전략을 발표하면서 “미국처럼 군산 복합체제를 구축하겠다”고 공언했다. 메르츠 총리는 지난 9년간 프랑스와 함께 진행한 차세대 전투기 개발 사업(FCAS)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기반으로 한 유럽의 집단방위 체제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세계 무기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유럽 최대 미사일업체인 딜디펜스의 헬무트 라우흐 CEO는 “3년 전부터 미사일 생산량이 전년 대비 60%씩 증가했다”고 말했다.
국방비 지출 5년간 두 배 늘리는 EU
지난 15일 프랑스 파리에서 개막한 유럽 최대 방산 전시회 유로사토리. 축구장 24개 면적(약 17만㎡)에 달하는 노르 빌팽트 전시장은 전 세계 60여 개국에서 몰려든 2000여 개 방산기업 관계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전시회 개막 수개월 전부터 세계 방산기업의 신청이 폭주하면서 야외 전시장이 크게 늘었다. 유로사토리를 주최한 샤를 보두앵 코게스 이벤트 대표는 “59년 전시회 역사상 최대 규모로 개최됐다”며 “공식 초청된 각국의 군 대표단만 250곳 이상”이라고 말했다.전시장에서 만난 방산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이란 전쟁 후 방산이 가파르게 커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유럽 3대 탄약업체인 남모의 모르텐 브란트세그 CEO는 “전쟁으로 텅 빈 무기 창고를 채우고 새로운 공급망 구조를 마련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전쟁이 모든 것을 바꿔놓고 있다”고 했다. 유럽 내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시도도 과거에 볼 수 없는 흐름으로 평가됐다. 전시장 곳곳에서 ‘100% Made In Europe’ 문구를 볼 수 있었다.
폭스바겐뿐만이 아니다. 르노그룹은 유럽 방산기업 탈레스와 함께 군용 드론을 생산할 계획이다. 고급차 브랜드인 메르세데스벤츠도 인공지능(AI) 기반 드론 스타트업과 손잡고 안티드론 시장에 진출했다.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미국 완성차업체도 방산 시장을 기웃거린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용 둔화) 등으로 늘어난 유휴 설비를 활용하기 위해서다.
맥킨지는 유럽의 국방비 지출이 지난해 3810억유로에서 2030년 8000억유로로 5년간 약 두 배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오스나브뤼크·베를린=성상훈/김다빈 기자 uphoon@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