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입성 앞둔 아이비…"간절한 꿈 있으니 기적"

입력 2026-06-23 14:51   수정 2026-06-23 15:07

브로드웨이 입성 앞둔 아이비…"간절한 꿈 있으니 기적"

"K팝스타가 아니어도, 나이가 많아도, 영어를 못해도 간절한 꿈과 노력이 있다면 브로드웨이 무대에 설 수 있다는 희망을 드리고 싶어요."(뮤지컬 배우 아이비)



한국 무대에서 총 592회나 '록시 하트'를 연기하며 가장 오랜 기간 자리를 지켜온 배우 아이비(43)가 8월 뮤지컬 본토에 진출한다. 그는 뉴욕 앰버서더 극장에서 열리는 뮤지컬 '시카고'에서 매력적인 '록시 하트'로 다시 태어날 예정이다. 아이비는 8월 17일부터 9월 6일까지 3주간 24회 출연한다.
아이비의 미국 진출에 다리를 놓아준 공연제작사 신시컴퍼니는 23일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간담회를 열고 한국 배우 최초로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에 캐스팅된 아이비의 소감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뮤지컬 '시카고'는 1920년대를 배경으로 살인마저 쇼가 되는 냉혹한 미디어 세상을 풍자한 작품이다. 이야기는 남편과 여동생을 살해한 배우 '벨마 켈리'와 내연남을 살해한 코러스 걸 '록시 하트'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미국 뮤지컬 역사상 1만 2000회 이상 공연돼 최장기 흥행 기록을 이어가고 있으며 올해로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버전' 30주년을 맞았다.



이날 아이비는 "한 우물을 오래 팠더니 엄청난 기회가 찾아왔다"며 "많은 분들의 도움 덕에 뮤지컬 본고장에서 공연하게 돼 영광스럽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미국의 선진 무대 시스템과 현지 스태프의 작업 방식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단 생각에 설레기도 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지원한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겸 예술감독은 "아이비의 뉴욕 진출이 한국 뮤지컬의 높아진 위상을 증명하는 기념비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박 프로듀서는 16년 전 국립극장 로비에서 아이비를 처음 만나 뮤지컬 배우를 권유했던 시절을 회고하며 "(아이비가) 데뷔작 '키스 미 케이트'의 작은 역할부터 시작해 '시카고'의 주역으로 차근차근 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진출은 아이비의 도전의식이 일군 쾌거"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브로드웨이 합류는 1년에 걸쳐 진행된 세 차례의 치열한 영상 오디션 끝에 이뤄졌다. 아이비는 "토종 한국인으로서 가장 미국적인 정서와 은어가 가득한 작품에 도전하는 건 불가능해보였다"고 털어놨다. 실제 아이비는 4년 전에도 현지 프로덕션으로부터 브로드웨이 무대의 '록시 하트' 오디션을 제안 받았지만 언어 장벽과 용기 부족으로 한차례 거절한 바 있었다.
그러나 2024년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아이비는 록시 하트의 긴 독백과 뮤지컬 넘버를 영어로 완벽히 외워 오디션에 임했다. 3개월마다 영상 오디션이 이뤄졌고 최종 3차는 미국 여행 중에 준비해야 했다.
"클래식 전공자는 재즈의 리듬을 부담스러워해서, 세번이나 피아노 반주자들에게 거절을 당했어요. 기적처럼 현지 아주머니께서 밤새 연습해 반주를 해주셨고 그 분 집 거실에서 영상을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현지 크리에이티브 팀은 아이비가 오디션 과정을 거치며 발음과 엑센트를 무섭게 발전시키는 헌신적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2012년 한국어 버전 초연 때부터 그의 재능을 지켜봐 온 브로드웨이 관계자는 '노래와 춤, 연기를 모두 갖춘 '트리플 쓰렛(Triple Threat)' 배우로 기량을 앰버서더 극장에서 맘껏 펼치길 기대한다'는 메시지를 신시컴퍼니 측에 전했다.
박명성 대표는 최근 세계 무대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한만큼 국내 스태프와 배우들끼리만 작업하는 시대를 지나 글로벌 예술가들과 협업이 필수적인 미래 뮤지컬의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아이비의 진출이 후배 배우들에게 이정표가 되길 희망했다.

다음주 뉴욕 출국을 앞둔 아이비는 현재 원어민 9명의 지도를 통해 '록시 하트'를 정교하게 다듬고 있다. 아이비는 "영어로 원문을 파고들수록 한국어 버전에서 담지 못했던 1920년대 미국 특유의 날선 풍자, 섹슈얼한 은유의 재미가 온전히 느껴진다"며 "원어가 주는 매력을 무대 위에서 온전히 살려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를 믿어주신 분들의 응원 덕분에 이 자리에 선만큼 한국 뮤지컬 배우의 저력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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