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산업은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더 이상 외국에서 제작된 항공기를 들여와 운용만 하는 국가가 아니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순수 기술로 보라매 전투기(KF-21), 수리온 헬리콥터(KUH-1), 나라온 비행기(KC-100) 등 비행기와 헬리콥터를 독자 개발해왔으며, 지금도 꾸준히 기술 자립을 확대하고 있다. 그런데 항공기는 개발에 성공했다고 해서 책임이 끝나지 않는다. 국산 항공산업의 경쟁력은 제작 역량뿐 아니라, 항공기의 안전을 얼마나 체계적으로 잘 관리하고 책임질 수 있는가에도 달려 있다.모든 항공기에서 안전은 타협할 수 없는 최우선 가치다. 운용, 정비, 개량, 퇴역에 이르는 전 생애주기 동안 결함과 위험요인을 식별하고 개선하는 지속감항 관리는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민간 감항당국과 군 감항당국, 운영기관, 제작사가 안전 정보와 시험평가 데이터를 공유하고, 결함 대응에 있어 함께 협력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민과 군이 각자의 경험과 역량을 결합해 얻을 수 있는 시너지 효과이다.
최근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첨단 혁신 기술들은 단순히 산업의 지형을 바꾸는 것을 넘어 국가의 생존과 직결된 안보 패러다임까지 뒤흔드는 중이다. 해외 선진국들의 사례와 기술 발전의 흐름을 볼 때, 국방과 민간의 벽을 허무는 긴밀한 ‘민·군 기술 협력’이야말로 이 시대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필연적 국가 생존 전략이다. 과거에는 통신망 파괴에 대비해 만든 ‘아파넷(ARPANET)’이 오늘날의 인터넷으로 변화되고, 미사일 정밀 유도를 위한 GPS 기술이 일상 네비게이션으로 활용되는 사례에서 보듯이 군사 기술이 민간으로 이전되는 ‘스핀오프(Spin-off)’ 중심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공지능, 드론, 반도체, 클라우드, 사이버 보안 등 민간의 첨단 기술을 군에 접목하는 ‘스핀온(Spin-on)’을 거쳐, 기획 단계부터 민과 군이 함께 개발하고 검증하는 ‘스핀업(Spin-up)’ 방식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 동일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된 소형무장헬기(LAH)와 소형민수헬기(LCH)가 그 증거다. 같은 기반에서 출발했지만 군과 민간의 다양한 요구사항을 처음부터 제각기 반영함으로써, 개발 효율성을 높이고 기술적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었다.
이러한 협력이 실제 정책과 산업으로 이어지려면, 민과 군이 단순히 각자의 경험을 나누는 것을 넘어 처음부터 함께 기준을 만들어가는 구조가 필요하다. 또한 안전을 위해 민·군이 협력하여 안전기준과 감항 인증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 전략이다. 민간의 정교한 인증 기준 및 지속감항 관리 제도와 군의 운용 경험이 결합될 때 비로소 보다 확실한 항공안전 체계가 구축될 수 있다.
그러므로 민과 군은 개발부터 운용까지 항공기의 안전을 뒷받침하는 인증기준 개발, 시험·평가, 지속감항 체계 구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은 단순한 항공기 제작 국가를 넘어 글로벌 미래 산업의 핵심인 K-항공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그 여정의 시작이 바로 지금이다.
이런 시대적 요구를 담아 국토교통부가 주최하는 '2026 항공기술협력주간'은 단순한 학술 교류의 장을 넘어 안보와 산업을 연결하는 기술 순환의 통로이자, 도심항공교통(UAM), 국산 항공엔진, 항공 AI, 드론, 무인기 등 미래 항공기술에 대한 인증 기준을 함께 논의하고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의미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민·군이 함께 지키는 안전, 인증으로 도약하는 K-항공”이라는 주제에 부응하기 위하여 국토교통부, 방위사업청, 육군, 산림청, 항공안전기술원, 산업계와 학계가 한자리에 모인다. 아무쪼록 이번 기회가 민·군 협력 체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글 황호원 항공안전기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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