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지배한 서유럽, 승리보다 보급에 투자했다

입력 2026-07-15 08:25   수정 2026-07-15 08:35


서유럽이 최근 20년간 남자 월드컵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이어가며 세계 축구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우승만을 목표로 한 엘리트 육성보다 누구나 쉽게 축구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15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2006년 독일 월드컵 이후 열린 남자 월드컵에서는 크로아티아와 아르헨티나를 제외하면 1∼3위를 차지한 모든 국가가 서유럽 국가였다. 올해 대회 준결승도 프랑스와 스페인,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의 대결로 치러졌다. 세계 인구의 약 5%만 차지하는 서유럽이 세계 축구를 지배하는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FT 칼럼니스트 사이먼 쿠퍼는 서유럽 국가들이 처음부터 월드컵 우승을 목표로 정책을 설계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추구한 것은 아마추어 축구를 저렴하고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으며, 공동체 형성과 공중보건 증진, 시민들의 행복이 정책의 핵심 목적이었다. 월드컵 우승은 이러한 시스템이 만들어낸 부산물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노르웨이축구협회 회장 리세 클라베네스도 같은 취지의 설명을 내놨다. 그는 협회의 최우선 과제는 최상위 리그가 아니라 노르웨이 전역의 축구 클럽을 유지하는 것이라며, 아이들이 몸을 움직이고 친구들과 경쟁하며 함께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협회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쿠퍼는 자기 경험도 소개했다. 그는 1976년 여섯 살 때 영국 런던에서 네덜란드 라이던으로 이주한 뒤 대부분의 또래가 지역 축구클럽에 가입해 있었고, 지방자치단체가 경기장을 꾸준히 관리하는 모습을 직접 경험했다고 전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 가운데 하나인 서유럽은 스포츠에도 지속해서 투자할 수 있었고, 노르웨이에서는 저소득층 어린이들이 대부분 무료로 축구를 할 수 있으며 다른 가정도 연간 10달러 정도만 부담하면 됐다고 소개했다.

라이던 일대에는 수십 개의 축구 클럽이 운영됐고, 일부 클럽은 성인팀 20개와 8세 이하 유소년팀 7개를 동시에 운영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네덜란드는 이러한 기반을 바탕으로 1970년대 두 차례 월드컵 결승에 진출했다.

쿠퍼는 축구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을 차단하는 '기하학'의 스포츠라고 설명했다. 서유럽에서는 이러한 경기 이해가 사회 전반에 자연스럽게 축적돼 있지만 아시아와 아프리카, 미국, 브라질에서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평가했다.


또 축구는 농구나 조정처럼 어린 시절 신체 조건만으로 미래 스타를 가려낼 수 있는 종목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장신 공격수 엘링 홀란과 왜소한 체격의 리오넬 메시 모두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한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청소년 시절 유망주가 성인 무대에서도 성공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국가 경쟁력은 일부 엘리트가 아니라 가능한 많은 어린이에게 축구 기회를 제공하는 데서 나온다고 분석했다.

노르웨이 몰데에서 홀란과 함께 뛰었던 당시 주장 루벤 가브리엘센도 17세였던 홀란이 특별한 선수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당시 누구도 홀란이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선수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며, 국가대표 경쟁력은 모든 여섯 살 아이들의 성장을 지원하는 데 달려 있다고 말했다.

쿠퍼는 1986년 영국으로 돌아간 뒤 서유럽식 시스템과 다른 현실도 경험했다고 소개했다. 당시 영국은 학교 중심의 스포츠 문화가 일반적이었지만 마거릿 대처 정부가 약 5천 개의 학교 운동장을 매각하도록 허용하면서 학생들의 운동 환경이 크게 악화했다. 그의 학교 역시 축구를 할 공간이 없어 체육 교사가 가끔 학생들을 먼 공원까지 데려가 진흙 운동장에서 공을 차게 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잉글랜드 축구는 도심 풋살 경기장과 소규모 축구장 확대, 프리미어리그의 상업적 성장에 힘입어 다시 경쟁력을 회복했다고 설명했다.

쿠퍼는 세 자녀를 프랑스 파리에서 키우며 현재 파리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축구 인재 공급지 가운데 하나가 됐다고 평가했다. 파리 외곽 대부분의 방리외에는 인조 잔디를 갖춘 관리 상태가 좋은 스포츠 시설이 조성돼 있다고 전했다.

그는 서유럽 축구의 또 다른 경쟁력으로 역사학자 노먼 데이비스가 언급한 '사용자 친화적 기후'를 꼽았다. 최근 기후 변화 이전까지 서유럽은 온화하고 비가 많은 날씨 덕분에 토지가 비옥했고, 좁은 지역에 많은 인구가 밀집하면서도 국가별로 서로 다른 축구 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국가마다 축구 철학은 조금씩 달랐지만 서로 가까운 위치에 있어 상대의 장점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었다. 유럽 최고의 성인 대표팀들이 지속해서 맞붙으며 학습 효과도 커졌다. 실제로 프랑스와 스페인은 유로 2024 준결승 이후 이번 대회 준결승까지 세 차례 맞대결을 치렀다.

쿠퍼는 이러한 시스템 덕분에 유럽은 세계 최고의 축구 경쟁력을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기술과 학문, 군사력 등 다른 분야에서도 이 같은 시스템이 동일한 성과를 낼 수 있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라고 글을 맺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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