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인과 어린이를 가리지 않고 '스트레스 해소템'으로 자리 잡은 촉감 완구 '말랑이'와 '왁뿌볼' 등을 둘러싼 안전성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제품을 만진 뒤 온몸에 발진이 생기거나 다래끼가 났다는 피해 경험담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잇따르자 한국소비자원도 안전성 조사에 착수했다.
◇ '조물조물' 스트레스 풀다가…발진·다래끼 호소
17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소비자원은 지난달 말랑이·왁뿌볼 등 스퀴시 제품에 대한 안전 실태 조사에 공식 착수했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공식 착수는 6월에 했고, 그전부터 모니터링을 통해 조사 대상 범위 등에 대한 사전 조사를 진행해 왔다"고 밝혔다.조사 배경에 대해서는 "워낙 유명해 많이 팔리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고,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에도 관련 위해 정보가 점차 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특히 해외에서도 유사한 위해 사례가 확인돼 조사에 착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말랑이는 손으로 주무르며 갖고 노는 말랑말랑한 재질의 촉감 완구다. 왁뿌볼은 왁스 재질의 겉면을 뿌시는 방식의 장난감이다. 손끝으로 반복해 조물거리면 긴장이 풀린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어린이뿐 아니라 20·30대 성인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음식이나 동물 모양 제품을 수집하거나 직접 만드는 영상도 SNS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인기가 높아지면서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한 소비자는 말랑이를 만진 뒤 발진이 온몸으로 번져 응급실에서 급성 알레르기 진단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20대 여성은 말랑이를 만진 손으로 눈을 비빈 뒤 눈이 붓고 충혈되는 증상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말랑이를 만진 뒤 다래끼가 생기거나 손이 붉어지고 가려웠다는 경험담도 온라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이 같은 증상과 제품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찾은 제품이 오히려 신체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는 커지고 있다.
말랑이와 왁뿌볼은 일반 장난감보다 피부에 닿는 시간이 길다. 손으로 반복해서 누르고 늘리는 데다 책상이나 바닥에 내려놨다가 다시 만지는 경우도 많다. 여러 사람이 제품을 돌려쓰면 표면에 묻은 세균과 이물질이 손을 거쳐 눈이나 입으로 옮겨질 가능성도 있다.
제품이 터졌을 때 내부 충전물이 피부에 직접 닿을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일부 제품은 강한 화학 냄새가 나거나 사용 중 내용물이 새지만, 포장지에는 구체적인 성분이나 대처 방법이 적혀 있지 않다.
최근에는 완제품을 구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겉피와 점토, 접착제를 따로 구입해 직접 만드는 'DIY 말랑이'도 유행하고 있다. 여러 재료를 섞어 사용하는 만큼 완제품보다 성분과 안전성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 '14세 이상' 붙이면 끝?…KC인증 비껴간 말랑이
안전 인증의 사각지대도 문제로 꼽힌다. 어린이제품안전특별법에 따라 만 13세 이하 어린이가 사용하는 완구는 안전기준에 따른 검사를 거쳐 KC인증을 받아야 한다.그러나 제조·수입사가 제품에 '14세 이상 사용'이라고 표시하면 어린이제품이 아닌 일반 공산품으로 분류돼 KC인증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안전성 논란이 확산하자 국내 판매업자들도 대응에 나섰다. 일부 업체는 판매 페이지와 안내문을 통해 실리콘과 점토 등 제품에 사용된 원재료를 공개하고, KC인증 여부와 사용 연령을 별도로 공지하고 있다. 제품을 사용한 뒤 손을 씻고 피부 이상이 나타나면 즉시 사용을 중단하라는 주의사항을 추가한 곳도 있다.
다만 판매자가 공개한 정보만으로 실제 유해물질 함유 여부까지 확인하기는 어렵다. 원재료 이름을 표시했더라도 구체적인 성분과 함량, 안전성 시험 결과가 빠진 경우가 많아서다. 소비자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자구책은 나오고 있지만, 공신력 있는 검증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해외 직구 제품은 관리가 더욱 어렵다. 말랑이와 왁뿌볼은 쿠팡과 네이버쇼핑 등 국내 온라인 쇼핑몰뿐 아니라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중국계 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판매자가 제시한 정보만으로는 국내 안전기준을 충족했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제품도 적지 않다.

◇ 국내도 중국도 이미 '빨간불'…되풀이되는 유해물질 논란
촉감 장난감을 둘러싼 유해물질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2019년 슬라임이 유행했을 당시 소비자원이 시중 제품을 조사한 결과 일부 제품과 재료에서 안전기준을 초과한 유해물질이 검출됐다. 당시 문제가 확인된 제품에는 판매 중지와 폐기 조치가 내려졌다.같은 해 소비자원이 스퀴시 제품 12개를 조사했을 때도 전 제품에서 휘발성유기화합물인 디메틸포름아미드가 방출됐다. 이 가운데 절반은 어린이에게 위해 우려가 있는 수준으로 조사됐다. 디메틸포름아미드는 눈과 피부, 코와 인후 등을 자극할 수 있는 물질이다.
중국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불거졌다. 2024년 중국에서는 '녜녜'로 불리는 주물럭 장난감이 유행하면서 일부 제품에서 강한 화학 냄새가 난다는 소비자 불만이 이어졌다.
당시 현지 매체는 한 제품을 대상으로 주변 공기 중 폼알데하이드 농도를 측정한 결과 1분 만에 수치가 80배 가량 크게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제품을 만진 뒤 인후통과 두통, 피부 가려움증을 겪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특히 중국의 장난감은 개인 판매자가 수작업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경우가 많아 생산자 정보와 품질 인증서가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당시 논란이 일었던 제품과 유사한 형태의 장난감은 현재 국내에서도 말랑이와 스퀴시 등의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제품 이름은 슬라임과 스퀴시에서 말랑이와 왁뿌볼로 바뀌었지만, 손으로 장시간 만지고 내부 재료에 직접 접촉하는 사용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소비자원은 이번 조사에서 판매량과 소비자 노출도가 높은 제품을 중심으로 유해물질과 표시 실태를 살펴보고 있다. DIY 말랑이 재료는 현재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소비자원은 조사 결과에 따라 겉피와 점토, 접착제 등 개별 재료로 범위를 확대할 가능성을 열어뒀다.
소비자원은 위해성이 확인될 경우 관련 조치를 검토하고, 구체적인 소비자 주의사항도 조사 결과와 함께 안내할 예정이다.
김희선 한경닷컴 기자 gimme_s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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