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말 찾은 경북 안동시의 안동제비원전통식품. 입구 문턱부터 야틈한 언덕을 100보쯤 오르니 절구를 찧거나 머리에 메주를 이고 있는 석상들이 보였다. 길을 따라 왼쪽으로 코너를 돌자 웬 장독대 ‘밭’이 나타났다. 장독대 사이사이를 지나갈 때마다 된장과 고추장 냄새가 코끝에 풍겨왔다. 이곳에서 만난 최명희 대표는 “처음엔 60개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한 1000개쯤 된다”라며 웃어보였다.
안동제비원전통식품은 최 대표가 1998년 설립한 전통 장류 제조업체다. 중소기업현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회사 매출은 84억2000만원, 영업이익은 5억9000만원을 기록했다. 운영하는 생산라인만 4곳. 이미 한 곳을 추가로 늘리고 있다고 한다.
회사를 설립한 최 대표는 1951년이다. 1970년대 대구은행에서 일하던 평범한 은행원으로, 사업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그랬던 그의 삶이 바뀐 건 스물다섯의 나이에 안동의 종갓집 며느리로 시집오면서다. ‘집안의 시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집안의 된장을 누가 담글까’ 고민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최 대표는 “우리 집안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면서 “맞벌이와 도시 직장인이 늘어나면, 사회적으로 장을 담그는 문화가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예 집마다 담그던 된장을 상품으로 만들기로 한 이유다.
주변에선 “누가 된장을 돈 주고 사 먹겠느냐”며 만류했지만, 최 대표는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그러나 최 대표는 막상 시작한 사업이 절대 쉽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규모의 경제를 갖춘 대기업 제품들에 비해 값비싼 안동의 된장이나 청국장을 찾는 소비자들은 많지 않았다. 설상가상 2008년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경영 부담도 커졌다.
결국 2011년 장남인 김준영 대표가 어머니를 돕기 위해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지금 돌아보면 ‘승계가 시작된 때’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눈앞이 캄캄한 때였다고 한다. 당시 회사 매출은 5억원 안팎. 회사를 키우려면 어떻게든 물량을 팔아줄 사람을 찾아야 했다. 김 대표는 “서울 바이어들을 만나기 위해 어머니와 서울 찜질방을 전전하며 영업을 다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결과적으로 회사의 운명을 바꾼 건 사고의 전환이었다. 김 대표는 “바이어들을 쫓아다니다, 반대로 ‘어떻게 하면 바이어들이 우리를 찾아오게 할까’란 고민을 했다”면서 “어머니를 전통식품 명인으로 등재시키는데 힘을 쏟았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바람대로 어머니인 최 대표는 단 한 번 만에 명인으로 등재되는 데 성공했다. 이때부터 회사 사정이 달라졌다. ‘값은 조금 비싸도 제대로 만든 전통 제품’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수요가 빠르게 늘기 시작했다. 학교 급식과 군부대, 대형마트 등으로 납품처도 잇달아 확대됐다. 저출생 시대에 ‘하나뿐인 아이, 좋은 것만 먹이자’는 소비 트렌드가 맞물린 점도 회사 성장에 도움이 됐다.
승계의 진짜 시험대는 그다음부터였다. 유통망은 넓어졌지만, 매출 증가세는 둔화하면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해졌다. 그가 내놓은 해법은 된장이나 고추장 완제품이 아니라 소비자가 집에서 손쉽게 장을 담글 수 있는 밀키트였다. 김 대표는 “된장·고추장 완제품은 대기업과 가격에서 밀리지만, 대신 소비자가 직접 장을 담가 먹는 패키지 상품은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첫 반응은 차가웠다”고 말했다. 방송을 앞둔 홈쇼핑 상품기획자(MD)는 “마트에 널린 게 된장인데, 누가 번거롭게 직접 담가 먹겠느냐”면서 핀잔을 줬을 정도다. 최 대표 역시 처음에는 성공 가능성을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홈쇼핑 방송 이후 밀키트 제품은 12회 연속 매진을 기록했다. 지금도 회사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이 이 제품에서 나온다.
최 대표와 김 대표에게 기업 승계란 무엇인지에 관해 물었다. 모자(母子)는 “가마솥으로 만들어 밀키트로 파는 것”이라고 답했다. 후계자가 창업주의 철학과 방식을 존중하면서도, 시장에 맞게 새로운 형식을 입힐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어머니인 최 대표는 새벽 4시에 일어나 가마솥 같은 시설을 둘러본다. 그녀는 “할 일이 없으면 마당에 풀이라도 뽑아야 직성이 풀린다”고 말했다. 아들인 김 대표는 여전히 예전 방식대로 가마솥에서 콩을 삶지만, 된장·고추장 제품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직접 된장을 담글 수 있는 밀키트 제품을 개발해 판매한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