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면 더 쓴다"…'가성비 AI'가 뒤흔든 반도체 폭락의 역설 [빈난새의 빈틈없이월가]

입력 2026-07-19 05:04   수정 2026-07-19 08:27

"싸면 더 쓴다"…'가성비 AI'가 뒤흔든 반도체 폭락의 역설 [빈난새의 빈틈없이월가]



험난한 7월입니다. 적어도 인공지능(AI) 반도체와 인프라 주식에는 그렇습니다. 2분기에만 89% 급등했던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7월 들어 15% 내렸고, 4월 상장 후 3개월 만에 166% 폭등했던 메모리 반도체 ETF DRAM은 20% 넘게 급락한 상태입니다. 이미 5월부터 과열 식히기에 들어갔던 전력과 광통신, 데이터센터 인프라 등 AI 하드웨어 종목도 조정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반면 그동안 막대한 설비투자 부담과 현금흐름 우려에 억눌렸던 빅테크 주가는 상대적으로 반등했습니다.


수요나 실적은 문제가 아닙니다. 마이크론과 삼성전자는 수요 폭증에 따라 유례 없는 수준의 초고마진을 기록했고, TSMC는 "현재 모든 산업군에 걸쳐 인류의 일상을 바꾸고 있는 신산업의 탄생이 진행되고 있다"며 "2029~2030년까지 반도체 수요는 매우 강력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AI 인프라주가 하락한 건 반도체 사이클 '피크아웃'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다시 커졌기 때문입니다. 'AI 수요가 진짜냐'는 의심은 더 이상 핵심이 아닙니다. 이제 문제는 반도체·인프라 기업들의 주가가 이미 너무 급격하게 오른 상황에서 지금 같은 초고마진과 높은 성장률, 그리고 그 원동력인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천문학적인 자본지출(CAPEX)이 얼마나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느냐는 점입니다.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이 의구심을 더 자극하고 있는 것은 '가성비' AI 모델들의 등장입니다.

지난 17일(미국 동부시간) 시장의 시선은 중국 문샷AI가 '세계 최대 오픈웨이트 모델'을 표방하며 공개한 'Kimi K3'에 쏠렸습니다. 총 2조8000억개의 매개변수와 100만 토큰의 문맥 처리 능력을 갖춘 K3는 자체 평가에서 미국 최고 성능 폐쇄형 모델에 근접한 성능을 내세웠습니다. 심지어 일부 코딩·에이전트 평가에서는 각각 앤스로픽과 오픈AI의 최상위 모델인 '페이블 5'와 'GPT-5.6-Sol'을 앞섰다는 게 회사 측 설명입니다.


눈길을 끄는 건 가격입니다. 100만 토큰당 입력 3달러, 출력 15달러. 앤스로픽 클로드의 최신 모델들 대비 절반 이하 수준입니다. 직전 모델보다 토큰 사용량도 21% 줄였다고 합니다. 작업당 비용은 $0.94로 GPT-5.6-Sol($1.04)과는 비슷했지만 오퍼스 4.8($1.80)에 비하면 절반, 페이블 5($2.75)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으로 측정됐습니다. 참고로 규모가 더 작은 중국 오픈 모델의 대표주자인 딥시크는 V4 플래시 기준 $0.02, GLM 5.2는 $0.37에 불과합니다.



2025년 1월 이른바 '딥시크 쇼크' 이후 중국산 오픈 모델들은 '가성비'를 내세워 미국의 폐쇄형 모델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클래리온AI파트너스의 창업자 베넷 보든은 “중국 AI 개발사들은 고성능 모델을 무료로 공개하고 공격적인 API 가격을 적용함으로써 전 세계의 AI 도입 장벽을 낮추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가 AI 경쟁 주도하는 오픈 모델
오픈웨이트는 완성된 가중치를 무료로 공개해 누구나 내려받아 직접 운영하거나, 자기 데이터에 맞게 미세조정할 수 있게 한 모델입니다. 가중치는 AI가 어떤 정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할지 결정해주는 숫자값인데, 이것을 알면 AI 모델이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픈소스는 여기서 더 나아가 전체 설계도 격인 소스코드와 학습 데이터까지 모두 공개합니다.

핵심은 사용자가 모델을 무료로 가져다 직접 고치고 운영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주는 것입니다. 같은 모델을 여러 AI 서비스 기업이 제공하고, 기업이 직접 운영할 수도 있기 때문에 모델 가격은 컴퓨팅 원가에 수렴하는 수준으로 내려갑니다. 대신 개발사는 자기 모델의 생태계를 넓히고, 모델 파인튜닝을 도와주는 플랫폼이나 직접 운영이 어려운 사용자를 위한 호스팅·API 서비스 판매로 돈을 법니다. 오로지 완성된 모델을 개발사의 서버에서 쓰도록 하면서 토큰 사용량에 따라 돈을 받는 '폐쇄형' 모델과는 전략이 다릅니다.

오픈 모델 시장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중국이 장악한 오픈 모델 시장에서 미국산은 엔비디아 니모트론 정도가 유의미한 존재였는데요. 15일에는 오픈AI 최고기술책임자(CTO) 출신 미라 무라티의 싱킹머신랩이 첫 모델 '잉클링'을 공개했습니다. 창업 1년 반만에 드디어 공개된 이 모델도 오픈웨이트입니다.

싱킹머신랩은 "종합 성능으로 보면 가장 뛰어난 모델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대신 대부분 업무를 '충분히' 좋은 수준으로, 훨씬 싸게 처리하는 '가성비'에 초점을 맞췄다고 강조했습니다.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건 모든 일에 통달한 만능 박사가 아니라, 특정 업무를 더 싸고 빠르고 정확하게 해내는 '지능을 갖춘 기계 노동자'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똑똑하고 비싼 프런티어 모델은 분명 필요하지만, 모든 업무에 다 쓸 필요는 없다는 것이지요.


실제 기업 고유의 데이터와 노하우, 전문가 판단을 학습한 오픈웨이트 모델이 최고 성능의 거대 폐쇄형 모델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내는 사례가 이미 나오고 있습니다.
"달러당 지능 늘면 컴퓨팅 수요 폭증"
이는 AI 경쟁의 기준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과거엔 누가 가장 크고 똑똑한 모델을 만들어 범용 인공지능(AGI)에 먼저 도달하느냐가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AI가 점점 실용적인 범용 기술로 진화하면서 이제는 업무에 맞는 모델을 골라 기업 데이터와 도구에 연결하고, 가장 싼 비용으로 정확하게 일을 끝내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값싼 모델은 단순 업무에, 최고급 모델은 복잡한 추론에 쓰는 ‘모델 라우팅’이나, AI 모델을 기업 현장에 잘 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보안·배포 소프트웨어의 가치가 커지는 이유입니다.

모델 경쟁의 핵심이 '가성비'가 된다면 모델 자체의 평균 가격은 계속 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모델 개발사는 모델만 팔아서 남기는 마진은 점점 줄어들 것이고요. 그렇다면 오픈AI나 앤스로픽, 구글처럼 최고 성능의 프런티어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투자를 해온 개발사들이나, 그것을 서비스하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지어온 하이퍼스케일러들은 과연 충분한 투자수익률(ROI)을 거둘 수 있는지,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결국 AI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는 건 아닌지 투자자들은 불안해집니다. 최근 반도체와 AI 인프라주의 차익실현과 급락을 부추긴 배경입니다.


반대로 빅테크와 소프트웨어가 반등한 데에도 마찬가지의 역학이 있습니다. 지난 2년간 AI 밸류체인의 경제적 가치는 GPU, HBM, 범용 메모리,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같은 '물리적 병목'에 집중됐습니다. 그러나 결국 모델 가격이 하락하고 AI 도입이 빨라진다면, 이젠 이미 구축된 인프라를 이용해 실제 매출과 생산성을 만드는 애플리케이션으로 가치가 확산할 차례라는 것입니다. 소비자 접점을 쥔 빅테크와 AI 운영·도입을 지원하는 소프트웨어에게 유리한 게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반도체와 인프라 사이클은 이제 끝났다는 것일까요? 기술주 투자자로 유명한 개빈 베이커 아트레이데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정반대로 봅니다. 그는 저가 모델의 시장 점유율이 커지는 것이 오히려 "AI 인프라에 대한 가장 강력한 초강세 시나리오"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프런티어 모델 개발사들이 가져가던 높은 추론 마진에 주목합니다. 그는 앤스로픽이나 오픈AI의 추론 마진이 90%에 달한다고 추정하는데, 모델 가격이 떨어지면 이 마진의 일부가 고객에게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고객은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지능을 살 수 있고, 그만큼 AI를 도입할 수 있는 업무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고 주장합니다. 싸지면 더 쓰는 '제번스의 역설'입니다.

전체 토큰 사용량과 컴퓨팅 소비는 모델 기업의 마진이 낮아지는 것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인프라 투자 수요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게 베이커의 논리입니다. 사실 엔비디아가 직접 오픈소스 모델을 출시하고 개방 생태계를 적극 지원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오픈 모델 확산하면 엔비디아의 컴퓨팅 수요자가 소수 프런티어 모델 개발사에서 일반 기업, 클라우드, 정부, 연구기관 등으로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사이클 종료 VS 재도약
그렇다면 지금 벌어지는 변화는 AI 시장의 돈이 반도체·인프라에서 애플리케이션으로 완전히 이동하는 것이라기보단, 밸류체인 전체로 확산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애플리케이션이 더 많은 사용자를 끌어들이면 다시 토큰과 GPU, 메모리와 전력 수요를 키우는 선순환도 가능합니다. 결국 AI 가격 전쟁은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끝이 아니라,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시험일 수 있습니다.

다만 이제까지 반도체와 인프라주는 이런 기대를 지나치게 앞당겨 반영했습니다. 단순히 앞으로도 수요가 좋을 것이라는 사실만으로는 이미 반년 만에 두 배 이상 오른 주가를 지탱할 수 없습니다. 최근의 조정은 이런 과열을 식히는 과정입니다.

이제 투자자들은 AI 가격이 내려가는 속도보다 사용량이 얼마나 더 빨리 늘어나는지, AI 투자에 가장 큰 돈을 쓰는 하이퍼스케일러와 프런티어 모델 개발사들이 그 비용 이상으로 매출을 늘리고 있는지, 그리하여 앞으로도 CAPEX를 더 늘리겠다고 하는지를 확인하고 싶어합니다. 오는 22일 구글(알파벳)의 실적 발표로 시작될 빅테크의 2분기 실적과 CAPEX 가이던스가 그 어느 때보다 반도체 투자자들에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뉴욕=빈난새 특파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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