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들도 만원짜리 지폐 물고 다녔는데"…'인천 부자섬'의 눈물 [소멸 리포트]

입력 2026-08-03 09:00   수정 2026-08-03 09:51

"개들도 만원짜리 지폐 물고 다녔는데"…'인천 부자섬'의 눈물 [소멸 리포트]

<i>"공장 기계음보다 매미 소리가 더 크죠? 산업단지가 이렇게 조용해서 되겠나요."</i>

청년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조성된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 강화일반산업단지. 올해를 기준으로 최종 준공 후 약 8년밖에 안 된 젊은 산단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현장의 적막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지난달 29일 평일 낮에 찾은 이곳 공장들 상당수는 셔터가 닫혀있었습니다. 도로를 오가는 근로자나 화물차도 좀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인근 편의점 점주는 한산한 가게를 둘러보며 "산단이 생겼으면 시간이 갈수록 사람이 늘어야 하는데 오히려 더 조용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천의 보물섬'이라 불리는 강화도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최근 3년 평균 경제성장률 1위를 기록 중인 인천에서도 외딴섬처럼 지역 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영광은 온데간데없고 '당일치기 여행지'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지역에서는 '첩첩산중' 규제를 풀어달라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스스로 변화를 위한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습니다.
◇ "개도 만원짜리 물고 다녔다"…화려했던 강화
최근 강화도의 풍경은 "개들도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말이 나왔던 1960~1970년대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당시 조양방직과 심도직물, 평화직물 등 크고 작은 방직공장 60여 곳이 들어섰고, 일대에서만 4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실을 뽑고 천을 짰습니다.

공장의 기계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식당과 상점에도 불이 켜졌습니다. 퇴근 시간이 되면 거리는 노동자들로 붐볐고, 월급날이면 시장과 술집에는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당시 강화군은 서울과 바다 사이에 고립된 섬이 아니라 일자리를 찾아 사람들이 들어오는 산업도시였습니다.


지금 조양방직 옛터에서는 기계 소리 대신 커피머신 소리가 들립니다. 폐공장은 카페와 전시 공간으로 바뀌어 주말에는 관광지로 변화해 가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관광객들은 대부분 해가 지기 전에 다리를 건너 섬을 빠져나갑니다. 일자리를 찾아 사람이 들어오던 도시는 반세기 만에 잠시 들렀다 돌아가는 '당일치기 관광지'가 된 것입니다.
◇ 잘 나가는 인천에서 '꼴찌'
산단 가동률은 83.7%로 역대 최고 수준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통계만으로 드러나지 않는 제조업 위기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산단 내 한 사업장 근로자 A씨는 "경기가 좋으면 주문이 늘어 공장이 활발하게 돌아가겠지만, 지금처럼 주문이 없을 때는 조용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습니다.



강화의 경제 지표도 심상치 않습니다. 가장 최근 통계인 2023년을 기준으로 최근 3년간 강화군의 명목 지역내총생산(GRDP)은 연평균 0.6% 감소했습니다. 인천 10개 군·구 가운데 감소 폭이 가장 컸습니다. 같은 기간 인천 전체 GRDP가 연평균 6.2% 증가한 것과 대비됩니다.

지역 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제조업이 흔들리면서 다른 산업도 함께 침체하는 모습입니다. 2021~2023년 강화군의 산업별 실질 GRDP를 분석한 결과 16개 산업 가운데 제조업을 포함한 11개 산업이 연평균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침체의 여파는 상권으로 이어졌습니다. 강화 초입의 강화풍물시장은 주말이면 관광객이 몰리지만, 다른 전통시장과 상권은 한산하다는 게 지역 관계자들의 설명입니다. 인천연구원도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해 강화군 소매업의 개업 대비 폐업률이 1을 웃돌았다고 밝혔습니다. 새로 문을 연 점포보다 문을 닫은 점포가 더 많았다는 뜻입니다.
◇ 신입생 5명도 안 되는 학교들…텅 비어가는 강화의 교실
경제 지표만큼 빠르게 줄어든 것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입니다. 강화군 인구는 최근 6만9000명 안팎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10년 전보다 약 3% 늘었지만, 수도권에서 귀농·귀촌한 은퇴 인구가 유입된 영향이 컸습니다.

연령별로 들여다보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올해 6월 기준 60세 이상 인구는 3만6706명으로 전체의 52.7%를 차지했습니다. 주민 두 명 중 한 명 이상이 60세 이상인 셈입니다. 반면 20~39세는 8895명으로 12.8%, 0~19세는 6689명으로 9.6%에 그쳤습니다.

10년간 변화는 더 뚜렷합니다. 20~39세 인구는 2016년 1만1749명에서 2021년 1만501명, 올해 8895명으로 24.3% 줄었습니다. 같은 기간 60세 이상 인구는 2만5545명에서 3만1555명, 3만6706명으로 43.7% 늘었습니다. 10년 전 60세 이상 인구는 20~39세의 2.2배였지만, 올해는 4.1배까지 벌어졌습니다.


아이들이 줄어든 현실은 학교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올해 강화군 내 초등학교 20곳 가운데 신입생이 한 자릿수인 학교는 13곳에 달했습니다. 세 학교 중 두 곳꼴로 1학년 전체가 10명도 안 됩니다. 이 가운데 9곳은 신입생이 5명 이하였고, 단 한 명도 받지 못한 학교도 있었습니다.

강화군 길상면에서 만난 70대 주민은 인근 초등학교를 바라보며 "예전에는 학교가 끝날 때면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며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도 많았다. 요즘은 같이 뛸 친구가 마땅치 않아 축구도 하기 어렵다고 한다. 참 서글프다"고 토로했습니다.
◇ "아이 낳으려면 육지로"…분만실도 없는 보물섬
지역에서는 교통 인프라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주말이면 강화의 유명 카페와 음식점 앞에 차량이 길게 늘어서지만, 섬을 오가는 길은 강화대교와 초지대교 두 곳뿐입니다. 평소 한 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거리도 두 시간 이상 걸리기 일쑤라는 게 주민들의 설명입니다.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강화에 갈 때는 부산에 간다고 생각하고 출발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옵니다.

관광객에게는 하루 나들이의 불편일 수 있지만 주민들에게는 생업과 일상이 걸린 문제입니다. 장을 보거나 병원을 찾기 위해 섬 밖으로 나서는 주민들까지 도로 위에 꼼짝없이 갇히기 때문입니다. 철도가 없는 강화에서는 차량 없이 섬을 빠져나갈 방법도 마땅치 않습니다.

이에 강화를 육지와 잇는 세 번째 교량인 가칭 신강화대교가 계양~강화 고속도로 7공구에 포함돼 2026년 3월 착공했습니다. 완공 목표는 2032년입니다.

의료 여건도 열악합니다. 강화군에는 종합병원이 한 곳 있지만 중증 환자를 치료할 기반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김포나 인천의 상급병원으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때 교통 정체까지 겹치면 상황은 더욱 위급해집니다. 강화에 부모님이 사는 홍모씨(46)는 "몇 년 전 아버지가 쓰러졌는데 강화에서는 필요한 치료를 받기 어려워 김포의 병원까지 직접 차를 몰았다"며 "조금만 늦었으면 골든타임을 놓칠 뻔했다"고 회상했습니다. 이어 "누군가의 생명이 강화와 육지를 잇는 왕복 4차선 다리 두 곳의 교통 상황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 너무 답답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출산도 마찬가지입니다. 강화에는 분만이 가능한 의료기관이 없어 임신부가 아이를 낳으려면 섬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 파도 파도 규제
강화의 침체 배경에는 정부가 지정한 인구감소지역이면서도 수도권 규제를 받는 역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성장관리권역인 강화는 공장 신설·증설과 대학 등 인구집중유발시설 설치에 제약을 받습니다. 앞서 살펴본 강화일반산업단지가 분양률 100%를 기록하고도 활기를 찾지 못한 데에는 유치 업종과 부지 규모가 애초부터 제한될 수밖에 없었던 사정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여기에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상 보호구역, 문화유산 주변 건축·굴착 심사, 농지법·산지관리법상 전용 제한까지 겹칩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집 한 채를 증축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는 하소연이 나옵니다. 군사시설을 피하면 문화유산이 나오고, 이를 피하면 농지와 산지가 가로막는 식입니다.

이런 관문을 모두 넘어도 별다른 지원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수도권 기업이 비수도권으로 이전할 때 받을 수 있는 조세특례제한법상 법인세 감면과 지방투자촉진보조금도 강화는 법적으로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규제는 수도권 기준으로 받으면서 지원에서는 비수도권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셈입니다.

◇ 규제 해제·자유구역 지정만 기다리는데...
정치권에서도 이 같은 모순을 해소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습니다. 인천 강화군을 지역구로 둔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월 기존 과밀억제권역·성장관리권역·자연보전권역에 '인구감소권역'을 추가하는 내용의 수도권정비계획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습니다. 수도권 안에서도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은 별도의 기준으로 관리하자는 취지입니다.

법 개정 논의와 함께 강화군은 오랫동안 경제자유구역 지정을 바라왔습니다. 송도와 청라, 영종이 첨단산업과 국제업무 도시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경제자유구역의 규제 특례와 투자 지원이 동력이 됐기 때문입니다.

강화군과 인천시는 길상면·화도면·양도면 일원 20.26㎢를 '강화국제도시'로 개발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1단계 10.03㎢와 2단계 10.23㎢로 나눠 그린바이오 단지와 스마트팜, 종자연구센터, 해양치유지구, 친환경 주거단지 등을 조성한다는 구상입니다.


영종도와 강화를 잇는 도로망이 더해지면 인천국제공항의 항공물류망과 송도의 바이오산업을 강화까지 연결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옵니다.

다만 지역이 기대하는 해법은 대부분 규제 완화와 특구 지정 같은 '외부 처방'에 가깝습니다. 꼭 필요한 요구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누군가 와서 깨워줘야 살아나는 지역'이라는 구조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외부 지원과 함께 강화가 이미 가진 자원을 하나의 산업으로 묶는 내부 전략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강화는 관광자원이 부족한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갯벌과 석양, 온천, 카페, 청동기 시대 고인돌, 고려궁지, 보문사, 평화전망대 등 자원이 곳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하나의 여행 동선이나 소비 생태계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불경기에도 소비자들은 분명한 차별점이 있으면 찾아갑니다. '북한뷰'로 알려진 김포 애기봉 스타벅스가 외신의 주목까지 받으며 관광객을 끌어모은 사례는 가까운 강화가 눈여겨볼 만한 대목입니다.

강화군 방문객은 2019년 1496만명에서 2025년 1720만명으로 늘었지만 2023년 정점을 찍은 뒤 정체된 상태입니다. 관광소비는 202년 1895억원에서 2023년 2394억원까지 늘었지만 이후 2년 연속 감소세를 보였습니다.

주민들의 바람처럼 규제를 풀고 새로운 다리를 놓는 일은 강화가 다시 움직이기 위한 필요조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관광객이 머물고 청년이 일하며 아이가 자라는 섬을 만드는 일은 결국 강화 안에서 시작돼야 합니다. "개들이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옛이야기를 과거의 전설로만 남길지, 일자리와 소비가 다시 살아나는 현재형으로 만들지는 이제 강화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김희선/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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