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조엔 '세수 펑크' 우려에도…다카이치, 감세 승부수

입력 2026-08-04 17:27   수정 2026-08-05 01:34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내년 봄 식료품 소비세율 인하에 승부수를 던졌다. 현행 8%인 소비세율을 2년간 1%로 낮춰 고물가와 소비 부진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집권 자민당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연간 5조원에 이르는 재원이 필요하고 감세안 종료 뒤 물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소비세 향방에 다카이치 정권의 장기 집권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카이치 “소비세 감세는 숙원”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30일 자민당 임시 임원회의에서 내년 4월부터 2년간 식료품 소비세율을 현행 8%에서 1%로 낮추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중·저소득층에는 소비세 1% 상당을 현금성으로 지급한다. 이들에게는 사실상 식료품 소비세율이 0%가 되는 셈이다.

자민당은 이르면 5일 내각회의에서 관련 방침을 확정하고 가을 임시의회에 관련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올해 초 중의원 선거 당시 ‘소비세 제로’를 “나의 숙원”이라고 표현하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유통업계 시스템을 0% 세율에 맞게 바꾸는 데 최장 1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시행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1% 안으로 선회한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가 소비세 감세를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최근 일본 경제를 짓누르는 물가 상승이 자리 잡고 있다. 다카이치 정부의 적극재정과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는 경기 부양 및 주가 상승에 도움이 되지만 엔화 약세를 불러 수입 물가를 밀어 올리는 부작용이 있다. 이는 가계의 실질 구매력 약화로 이어진다. 소비세 인하는 이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떨어지자 다카이치 총리의 마음은 급해졌다. 지난달 마이니치신문 여론조사에서 다카이치 정권 지지율은 41%로 전달(51%)보다 10%포인트 급락했다.

◇자민당 중진의 반발
당내 반발이 만만치 않다. 중진들은 “재정 포퓰리즘이 사회 보장 재원을 훼손하고 국가 재정과 엔화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떨어뜨릴 것”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오부치 유코 전 경제산업상은 지난 3일 자민당 회의 후 기자들에게 “(감세안이 종료되는) 2년 뒤 큰 영향이 나타날 것”이라며 반대 표시로 당내 세제조사회 간부회의 위원에서 사임했다. 고노 다로 전 외무상도 “소비세를 낮춰도 제품 판매 가격이 그만큼 내려간다는 보장이 없다”며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그는 일률적으로 소비세를 인하하기보다 저소득층과 육아 가구를 대상으로 소득에 따라 현금을 지급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아베노믹스 설계자’로 알려진 하마다 고이치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도 최근 마이니치 인터뷰에서 “다카이치 총리가 경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재정 지원이 확대되면 물가가 더 오르고 결과적으로 저소득층의 생활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원 마련도 난제다. 식료품 소비세를 1%로 낮추고 중·저소득층 지원까지 병행하려면 연간 약 5조엔, 2년 동안 약 10조엔의 재원이 필요하다. 일본의 2026회계연도(2026년 4월~2027년 3월) 세수 규모는 83조7350억엔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기업 보조금 축소와 조세특례 정비, 정부 자산 매각, 세수 증가분 활용 등이 거론된다. 고령화에 따른 사회 보장비 증가가 지속되는 가운데 대규모 감세를 추진하면 일본 재정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감세 재원을 놓고 시장 불안이 커지면 일본 국채 금리가 상승하고 엔화 약세가 심해지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소비세율 인하로 낮춘 물가를 환율 상승이 다시 밀어 올리는 역설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의 일방적 의사결정 방식에 대한 불만도 커지고 있다. 통상 세제 개편안은 자민당 내 세제조사회 논의를 거쳐 결정된다. 이번에는 총리가 감세안을 먼저 제시한 뒤 당에 후속 절차를 요구해 당내 반발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2년 뒤 세율을 8%로 되돌리는 문제도 정치적 부담으로 꼽힌다. 아사히신문은 “소비세 감세는 다카이치 총리의 당내 장악력을 시험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권을 흔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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