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취임 한 달 만에 경기도의 재정위기를 공식 선언했다. 추 지사는 20년 만의 지방채 발행과 기금 소진, 일부 법정·민생예산의 9개월분 편성 등 민선8기 재정 운영의 문제점을 공개하며 강도 높은 재정 구조조정과 세입구조 개편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추미애 경기지사는 5일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도 재정 비상 상황'을 공식 선언했다. 추 지사는 "지금 경기도는 새로운 공약사업은 물론 기존 사업조차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더 늦기 전에 재정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단순히 재정난을 설명하는 자리를 넘어 민선8기 재정 운용의 문제점을 공개하고 민선9기 재정개혁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추 지사는 "취임 직후 올해 상당수 민생·필수사업 예산이 12개월이 아닌 9개월분만 편성됐다는 사실을 보고받았다"며 "도민 삶과 직결된 중대한 재정 문제가 공직사회 내부에서도 제대로 공유되지 않았고 심각성 또한 충분히 인식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으면 2~3년 뒤에는 기존 채무를 갚기 위해 다시 지방채를 발행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며 "재정위기는 결코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각종 기금까지 일반회계 재원으로 활용했다. 경기도는 지난해 5월 기금을 통합재정안정화기금 계정으로 예탁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한 뒤 세 차례 추가경정예산을 거쳐 각종 기금 5588억원을 일반회계 등에 투입했다.
남북협력기금도 예외가 아니어서, 평화협력사업을 위해 조성한 384억원 가운데 340억원이 통합계정으로 이전됐고 현재 잔액은 44억원에 그친다. 추 지사는 "미래 위기에 대비해야 할 가용 재원까지 사실상 소진했다"며 "지방채를 발행하고 기금까지 끌어다 쓰며 당장의 위기는 넘겼지만 정작 올해 예산조차 온전히 편성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재정난은 올해 예산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경기도에 따르면 노인장기요양급여와 소아응급 책임의료기관 지원, 친환경 학교급식, 산후조리비, 교육청 급식비, 가족돌봄수당, 농작물재해보험, 시내버스 공공관리제 등 주요 법정·민생사업은 10~12월분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사실상 9개월치 예산만 확보된 상태다. 이에 따라 경기도는 올해 약 7700억원 규모의 감액 추가경정예산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추 지사는 "더 이상 끌어다 쓸 재원도, 위기를 미룰 여력도 남아 있지 않다"며 "조금만 더 일찍 재정 상황을 공개하고 구조조정에 나섰다면 선제 대응이 가능했지만 결국 골든타임마저 놓쳤다"고 말했다.
추 지사는 "신도시 조성과 기업 유치를 위해 교통·소방·복지·기반시설에는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지만 개발과 기업활동으로 발생하는 세수는 시·군에 귀속된다"며 "경기도는 비용은 부담하면서 세수는 확보하지 못하는 구조적 불균형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복지지출 증가도 재정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현재 복지예산은 전체 예산의 약 49%를 차지하며, 최근 5년간 경기도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증가율은 연평균 6.8%로 전국 평균을 웃돌고 있다. 추 지사는 "고령화와 인구 증가로 복지 수요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재정구조 정상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말했다.
도지사 직속 참모조직과 실·국, 공공기관 조직도 재정비해 인력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하고 중복사업을 정리하는 등 조직 효율화를 추진한다. 아울러 지방소비세 확대와 기업 유치에 따른 세수 배분 개선, 국고보조사업 지방비 부담 완화 등 세입구조 개편 과제를 정부와 국회에 건의하기로 했다.
추 지사는 "재정위기를 이유로 민생을 포기하지는 않겠다"며 "도민의 생명과 안전, 취약계층 보호 등 반드시 필요한 예산은 끝까지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불필요한 곳부터 먼저 줄이고 더 큰 책임이 있는 곳이 더 많이 부담하는 공정한 재정개혁을 추진하겠다"며 "경기도의회와 31개 시·군, 1420만 도민이 함께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수원=정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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