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년 전 경제부처를 취재할 때의 일이다.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 본관에서 고위 경제 관료와 우연히 마주쳤다.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는데도 그 관료는 시선을 돌리곤 빠르게 빠져나갔다. 당시 정권 실세가 한은에 대해 ‘척하면 척’이라고 말해 구설에 오른 여파였을까. 몇 달 뒤 그 관료를 만나 한은 본관 얘기를 꺼내니 “불필요한 오해를 살까 봐 그랬다”고 털어놨다.하지만 표를 신경 써야 하는 정권과 재무부 입장에선 중앙은행 통제에 대한 유혹이 만만치 않다. 어느 정권이나 선거를 앞두고선 낮은 금리를 원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 국민의 채무 부담이 낮아지고 시중에 돈이 돌기 때문이다. 재정당국도 국채 이자 부담을 줄일 수 있어 통화정책에 협조하는 것이 나쁠 게 없다.
중앙은행이 알아서 머리를 숙인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권력이 인사권을 무기로 찍어 눌렀다. 그래서 나온 게 ‘중앙은행의 독립성’ 보장이다. 미국은 1951년, 한국은 1998년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각각 기관 간 협의와 법조문을 통해 보장됐다. 중앙은행 총재 임기는 정권과 엇박자가 나게 조정됐고 해임은 까다로워졌다. 권력 눈치를 안 보는 통화정책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최근 1~2년 사이 주요 선진국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과 동시에 제롬 파월 당시 중앙은행(Fed) 의장 찍어내기가 이뤄졌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지난해 공개적으로 ‘기준금리를 내리라’고 압력을 넣었다. 요즘엔 동맹국 일본에 달러를 더 많이 지원하라고 압박 중이다. 친하면 닮는 건지 최근엔 일본 정부도 미국 흉내를 낸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지난 5월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에게 국채 매입을 직접 요청한 것이 대표적이다.
인공지능(AI) 산업 혁명이 진행되면서 기존 경제이론이 무력화하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시대가 왔다. 통화정책을 움직여 경기를 지탱하고 싶은 각국 정부의 절박함은 이해한다. 하지만 중앙은행을 정권에 줄 세웠을 때 물가가 폭등하고 경제가 파탄 난 사례는 열 손가락으로 꼽기 힘들 정도로 많다. 파티를 끝내지 않으려는 미국과 일본의 무리수가 글로벌 경제 전체에 숙취를 안겨줄 것 같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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