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파 무섭게 쳐내는 '시황제'…'숙청 정치'로 4연임 노린다

입력 2026-08-13 17:33   수정 2026-08-13 18:06

“공산주의 지도자가 성공할수록 더 많은 사람이 두려워하고, 그를 파멸시키기 위해 결집한다. 더 많은 숙청이 필요해지고 다시 적들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중국 권력 투쟁 전문가인 조지프 토리기안 미국 아메리칸대 국제관계학부 교수가 제시한 ‘숙청의 역설’이다.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3기에 접어든 중국에서 고위 간부를 향한 칼날이 갈수록 매서워지고 있다. 마오쩌둥 시대 이후 전례 없는 속도로 반대자를 쳐내며 시 주석 1인 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마오 이후 최다 정치국 위원 축출

관영 매체 신화통신은 최근 중국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CCDI)와 국가감찰위원회가 지난달 마싱루이 정치국 위원을 당에서 제명하고 공직에서 해임했다고 전했다. 마싱루이는 중국 우주 개발을 주도해 ‘항공우주 영웅’으로 불리던 인물이다. 지난해까지 신장위구르자치구 당서기를 지낸 마싱루이는 쑨정차이, 허웨이둥 등에 이어 시 주석 체제에서 쫓겨난 네 번째 정치국 위원이 됐다.

이로써 중국 공산당의 핵심으로 집단지도 체제를 구성하는 정치국 위원이 당에서 제명된 사례는 시 주석 집권기에 마오쩌둥 시대 이후 최다를 기록했다. 앞서 국방부장 2명과 외교부장 1명, 군 고위 간부 수십 명도 잇달아 낙마했다.

이는 시 주석이 마오쩌둥 사망 이후 구축된 집단지도 체제를 허물고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과정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시 주석은 국가주석 2연임 제한을 폐지하고 고위직의 연령별 은퇴 관행을 사실상 무력화했다. 내년 열리는 당대회에서는 당 총서기 4연임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후계자가 될 만한 젊은 정치인을 최고지도부에 진입시키는 대신 리창, 허리펑, 차이치 중앙당교 교장 겸 중앙판공청 주임 등 60대 후반~70대 측근을 중용하고 있다.

숙청 작업을 하는 핵심 인물은 차이치다. 그는 시 주석의 일정과 문서, 당무를 관리하는 사실상의 최측근으로 부상했다. 차세대 지도자의 충성도를 검증하는 ‘문지기’ 역할도 맡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내년 당대회에서 상당수 중앙위원이 은퇴 연령에 도달해 교체가 불가피한 만큼 시 주석이 차이치를 통해 능력보다 충성심을 더욱 엄격하게 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 주석의 칼날이 겨눈 건 최고위층뿐만이 아니다. 중앙기율검사위를 중심으로 2012년 시 주석 집권 이후 징계받은 당원은 700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역대 최다인 98만3000명이 징계를 받았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반부패 운동이 통치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며 “당이 시장 통제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부패’의 정의와 단속 범위가 넓어져 과거 용인되던 관행까지 처벌 대상으로 편입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충성 요구에 ‘쓴소리’ 사라져
권력 집중의 부작용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과거 중국 정부는 5개년 경제계획을 수립할 때 정부 부처와 퇴직 관료는 물론이고 세계은행, 조지프 스티글리츠 같은 해외 전문가들 의견까지 폭넓게 수렴했다. 하지만 시 주석 체제 들어서는 최고지도부의 판단과 정치적 충성을 중시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ASPI)가 중국의 5개년 경제계획 수립 과정을 분석한 결과 정부 기관과 퇴직 관료, 외부 전문가 등이 제출한 제안 가운데 실제 계획에 반영된 비율은 2015년 32.6%에서 2025년 21.4%로 떨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경제가 장기 디플레이션 압력에 시달리는 상황에서도 소비 진작을 강조하는 외부의 경고가 정책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숙청이 일상화하자 관련 정보를 미리 빼돌려 돈을 버는 세력까지 등장했다. SNS에 사정 대상 관료의 이력, 사진, 동음이의어 등을 암호처럼 올려 차기 숙청 대상을 암시하는 것이다. 일부는 수백위안을 받고 유료 채팅방을 운영했다.

사정 대상자는 정보를 미리 입수해 증거를 없애거나 불법 자산을 빼돌린 뒤 도주할 수 있다. 투자자들은 낙마할 관료와 연관된 기업, 산업을 파악해 주식을 미리 매도하거나 공매도하는 데 이용하기도 한다.

이에 당국은 검열을 강화하고 내부자 처벌에 나섰지만 감찰 조직조차 숙청을 피해 가지는 못했다. 2023년 한 해에만 7800명이 넘는 반부패 감찰관이 징계를 받았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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