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기억’과 ‘자산’을 지키는 법

입력 2026-08-16 16:28   수정 2026-08-16 16:29


대한민국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만큼 치매와 뇌졸중, 파킨슨병 등으로 판단능력이 저하되는 노인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가족들은 부모님의 판단력이 눈에 띄게 떨어진 이후에도 “자녀니까 대신 처리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한다. 법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부모님의 재산을 관리하거나 부동산을 처분하고 금융거래를 하는 일은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마련된 제도가 바로 성년후견제도다.

성년후견은 질병이나 노령 등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지속적으로 부족한 성인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제도다. 단순히 재산을 대신 관리하는 제도가 아니라 피후견인의 재산과 신상을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실무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사례는 치매 진단을 받은 부모님의 병원비와 간병비를 마련하기 위해 부동산을 처분하거나 예금을 인출해야 하는 경우다. 가족 모두가 동의하더라도 적법한 대리권이 없으면 금융기관이나 등기 절차에서 업무가 중단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다른 경우는 재산 편취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이다. 판단력이 약해진 부모를 특정 자녀가 설득해 과도한 증여를 받거나 제3자가 접근해 불리한 계약을 체결하도록 하는 사례도 꾸준히 발생한다. 성년후견이 개시되면 후견인이 이러한 법률행위를 적절히 관리하고 필요한 경우 취소를 통해 피해를 회복할 수 있다.

성년후견은 가족 간 합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배우자나 4촌 이내 친족 등이 가정법원에 심판을 청구하면 법원은 의료기록과 정신감정, 가족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후견 개시 여부와 적합한 후견인을 결정한다. 가족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거나 재산 규모가 큰 경우에는 변호사 등 전문후견인이 선임되기도 한다.

후견인이 선임되더라도 모든 권한이 자유롭게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 처분 등 중요한 재산행위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후견인은 재산관리 내역을 지속적으로 법원에 보고해야 한다. 이러한 감독 절차는 후견인의 권한 남용을 방지하고 피후견인의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성년후견은 부모님의 재산을 대신 관리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부모님의 삶과 권리를 지키기 위한 법적 안전망이다. 실제로 많은 가족들이 부모님의 판단능력이 상당히 저하된 뒤에야 상담을 찾지만 그때는 이미 사기 피해나 재산 분쟁이 발생한 경우도 적지 않다.

초고령사회에서 가장 현명한 상속 준비는 유언장만 작성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님의 의사결정 능력이 충분할 때 가족의 상황에 맞는 성년후견이나 임의후견 제도를 미리 검토하는 것이야말로 부모님의 존엄과 가족의 평화를 함께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대비책이 될 수 있다.

조한나 법무법인 YK 파트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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