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력공사가 기후위기 대응과 인공지능(AI) 산업 성장에 따른 전력망 확충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터널 굴착기(TBM) 기술을 기반으로 지하 전력구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체 개발한 터널 진단 및 모니터링 기술을 통해 공사 안전성을 높이고, 민간 건설사와의 협업을 확대해 관련 기술의 사업화와 해외 시장 진출을 추진할 계획이다. 국가 첨단산업의 미래 경쟁력과 직결되는 전력망 확충 과정에서 자체 기술력을 통한 공법 고도화를 이루겠다는 구상이다.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와 첨단산업 발달로 전력 패러다임이 변화하며 국가 차원의 전력망 구축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송전선로는 보통 지상 철탑으로 만들어지지만, 도심·하천·바다·산악 등 설치가 어렵거나 민원 우려가 큰 구간은 지하 깊은 곳에 ‘전력구’를 건설해야 한다. 도심지 집중도가 높은 국내 환경 특성상 일부 현장은 지하 100m 깊이에서 굴착이 진행되는 등 시공 환경이 열악하다.
한전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TBM 공법을 전면 도입했다. TBM은 거대한 원형 커터헤드를 회전시켜 암반을 파쇄하는 동시에 터널 구조물을 조립해 나가는 기계식 장비다. 화약 발파 공법보다 소음과 진동이 현저히 작고, 주변 지반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한전은 1987년 부산 전력구 현장에 공공기관 최초로 ‘쉴드 TBM 공법’을 적용했고, 지금까지 총연장 239㎞의 전력구 시공을 마쳤다.
지하 터널 공사 과정에서는 지하수 누수를 방지하고, 지반 침하도 막아야 한다. 고압 작업 환경에서 안전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한전은 10여 년간 연구개발(R&D)을 거쳐 ‘터널 뒷채움 상태 진단기술’을 상용화했다. 터널 외부 상태를 탄성파 등 비파괴 방식으로 진단해 누수와 침하 가능성을 사전에 파악하고 조치하는 시스템이다.
굴착 도구의 마모량을 원격으로 측정하는 기술도 도입했다. 터널 내부 굴착면은 고압이 작용하고, 공간이 비좁아 작업자 진입 시 중대 재해 위험이 크다. 원격 측정 기술을 적용하면 작업자 진입 없이 외부에서 장비 상태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불필요한 가동 중단 시간도 줄여 공사 효율을 높였다. 이 기술은 2024년 국제터널학회(ITA) 어워즈에서 혁신기술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국내 최초 수상 사례로, 주요 터널 시공 현장에 시범 적용됐다.
TBM 공법은 지반 조건과 장비 적합성에 따라 공사 안정성과 속도가 결정되는 초정밀 시공 기술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굴착 대상 지반 특성에 맞춰 굴착 도구의 종류와 수량, 배치 방식, 추진력 등을 다르게 설계해야 한다. 한전은 해외 의존도가 높은 TBM 설계 기술을 국산화해 현장 맞춤형 장비 투입 체계를 구축했다.
이 설계 기술은 건설 중인 500kV 초고압직류송전(HVDC)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 2단계 지중화 구간에 적용된다.
총 13대의 TBM이 투입되는 해당 구간에서 한전은 장비 기본설계에 직접 참여해 주요 설비 성능을 기존 대비 최소 122%에서 최대 237%까지 향상시켰다. 여기에 TBM 제어장치(PLC) 굴진 데이터를 실시간 수집하는 모니터링 기술을 개발·적용해 침하와 싱크홀 등 위험 요인을 사전 통제한다.
한전은 40년간 확보한 TBM 설계·운영 기술을 35개 전력구 건설 현장에 적용해왔다. 최근 대우건설과 ‘대형 교통 터널 TBM 설계기술 고도화’ 양해각서(MOU)를 맺고 기술 제휴 범위를 넓혔다. 독자 터널 굴착 기술이 도로, 철도 등 국가 기반시설 전반으로 확장 활용되고 있다.
한전은 향후 전력망 구축 사업에 축적한 설계, 진단, 실시간 모니터링 기술을 도입해 시공 품질을 고도화할 방침이다. 공정 효율화와 사고 예방조치로 10년간 약 4000억 원의 전력구 시공비 절감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국내 건설사와의 공동 연구개발로 기술 상용화 속도를 높이고, 해외 대형 터널 공사 수주 시장 공동 진출도 추진한다. K-전력구 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인프라 시장에서 새로운 사업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목표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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