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한반도는 잃어버린 빛을 되찾았다. 그 빛은 패망한 일본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 위에서 피어난 것이었다. 그 시대의 빛과 그림자 가운데 한 청년이 서 있었다. 지금까지 그를 '마케터'라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은 재벌 총수 혹은 천재적인 부동산 투자자로 기억하는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얘기다.그는 1988년 경영전문잡지인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부호 순위에서 한국인 중 가장 높은 4위에 오른 적이 있다. 삼성 이병철도 현대 정주영도 아닌 바로 그였다. 하지만 그 숫자가 그의 진짜 정체성을 가려왔다. 그는 경영자이기 전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고 총수이기 전에 마케터였다. 그런 그가 광복 이후 한국에서 성장시켜 온 것은 하나의 기업이 아닌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이었다.
1921년 울산의 빈농 가정, 10남매 중 첫째로 태어난 그는 성공을 좇아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밀항했다. 낯선 땅에서 사업의 기반을 다졌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대공습으로 두 번이나 잿더미를 마주했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일어섰다. 광복 3년 뒤인 1948년 '롯데'를 세웠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다름 아닌 ‘껌’이었다.
본래 껌은 긴장 이완을 위한 물품이다. 긴장 상태에 놓이면 입이 마르고 침 분비가 줄어드는데, 반대로 무언가를 씹는 행위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를 낮춰 긴장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미군이 전장에 껌을 보급품으로 지급한 것도, 운동선수가 경기 중 껌을 씹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즉, 껌은 어른 혹은 극도의 긴장 상태에 놓인 이들을 위한 물품이었지 아이들의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신격호는 전혀 다른 접근을 했다. 껌 속에 대나무 대롱을 넣어 풍선처럼 불고 놀 수 있게 만들었다. 놀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아이들에게 껌을 사야 할 이유를 창조해 낸 것이다. 이는 기존 시장의 파이를 나눠 갖는 경쟁이 아니라 숨어 있던 수요와 구매 이유를 찾아내 시장 자체를 확장한 사례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61년, 롯데가 출시한 ‘쿨민트’ 껌 안에 거액의 경품 응모권을 넣어 '희망'이라는 기대감까지 상품화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과 그 제품을 사야 할 이유를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좋으면 팔린다"가 기술자의 문법이라면, “아무리 좋아도 살 이유를 만들어야 팔린다"는 마케터의 문법이다. 그는 후자에 철저했다.

부존자원이 빈약한 국가와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는 전략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고부가가치 기술을 갖춰 안에서 밖으로 내보내는 것(in-out), 다른 하나는 탁월한 콘텐츠와 마케팅으로 해외의 자본과 사람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out-in)이다. 기술자나 개발자보다 마케터의 언어에 능했던 신격호가 후자를 택한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out-in 전략의 산업적 형태가 곧 관광업이었다.
그는 계열사 사장들에게 늘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을 만큼 낯선 사업에는 좀처럼 손을 대지 않는 보수적인 경영자였다. 그런 그가 관광업에 진출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업의 본질을 마케터의 영역으로 확신하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그는 1973년,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에 맞먹는 1억 5천만 달러를 들여 롯데호텔 신축 부지를 매입하고 건립할 당시 건물의 일부를 백화점으로 활용한다는 구상도 함께 세웠다. 그 당시 백화점이 여럿 있기는 했지만 규모도 크지 않았고 일부 고소득층에만 한정되어 있었다. 관광업과 유통업은 얼핏 보면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닮은 부분이 많다.
쇼핑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행위가 아니라 브랜드를 경험하러 가는 일이다. 백화점에 가서 브랜드나 신상품을 구경하고 맛집을 찾는 행위는 작게 압축된 여행과 다르지 않다. 하나의 쇼핑센터가 작은 관광지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관광과 유통을 관통하는 것은 결국 '경험을 설계하는 감각'이었고 이는 그가 가장 잘 아는 무기이기도 했다.

물론 초고층 빌딩 건립 당시 그룹 내부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다. 초고층 빌딩은 일정 높이를 넘어서면 건설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만큼 적당한 높이의 건물을 여러 채 짓는 편이 합리적이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초고층 빌딩을 고집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에게 진짜 실리란 몇 해의 재무제표를 넘어, 우리나라를 찾는 이들과 더불어 소비자들의 일상 속에 롯데가 강렬하고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이었다.
연령을 불문하고 어릴 적 롯데의 기억이 없는 한국인은 드물 것이다. 롯데는 특정 세대의 브랜드가 아니라 여러 세대의 기억 저장소에 가까운 존재가 됐다. 그가 목표한 것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기업이 아니라 국민의 기억 속에서 가장 많은 경험을 공유하는 기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다면 천재 마케터 신격호가 떠난 그 자리에 넥스트 롯데는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그가 남긴 감각을 지금의 롯데가 어떻게 이어받고 있는지 묻는 일은 단순히 한 대기업의 미래를 추측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곧 우리가 어디서 쉬고 무엇을 먹고 어디로 향할지, 일상 구석구석과 맞닿아 있는 문제다. 그러니 이 물음은 롯데를 향한 것이면서 우리의 더 나은 생활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지금 소비자와 접점을 이루며 롯데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촘촘하다. 특정 행사나 시기가 되면 월드타워 광장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건 그 많은 접점들이 순간에만 반짝이고 흩어진다는 느낌이 강해서다. 진짜 탄탄한 세계관이라면 지금 당장 사람을 끌어모으는 힘만이 아니라, 5년 전 월드타워 광장에서 열렸던 행사와 최근 행사가 서로 연결되는 맥락도 함께 가져야 한다. 각각의 접점은 자유롭게 활약하되 그 밑에 흐르는 맥락만큼은 하나로 이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놀라운 동물이 여러 마리 있다고 해서 동물원이 사파리가 되지는 않는다. 철장을 따라 개별 관람하는 경험과, 하나의 생태계 속에서 이야기를 따라가는 경험은 결이 다르다. 지금 롯데에게 필요한 건 흩어진 접점을 하나의 서사로 엮어 내는 일이다. 그게 가능해진다면 롯데를 통해 누리는 우리의 라이프스타일도 한층 더 풍성해질 것이다.
흥미롭게도 화려한 승부수로 시장의 이목을 끌었던 신격호 창업주가 정작 집무실 벽에 걸어둔 좌우명은 '거화취실(去華就實)', 화려함을 버리고 실질을 좇으라는 말이었다. 얼핏 모순처럼 보이는 이 말이야말로 그를 가장 정확히 설명하는 단서다. 그는 화려함 자체를 좇은 것이 아니라 화려함이라는 수단을 통해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실질적 가치를 얻으려 했다.
지금 롯데에게 필요한 가치와 기준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숫자로 당장 증명되지 않는 과감한 제안을 하되, 그 제안이 결국 무엇을 남기려는 것인지 실질을 꿰뚫어 볼 줄 아는 것. 결국 '신격호적' 접근이 필요하다면 그 DNA를 품은 이들을 알아볼 안목과 그들을 받아들일 용기가 함께 필요한 셈이다. 숫자에 대한 집착을 넘어선 제안을 알아보고 믿어줄 조직을 지금의 롯데는 갖추고 있을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이 언젠가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한 번 더 멋지게 격상시켜 주기를, 지금보다 더 다양한 일상을 누리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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