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원 스무디'로 月 11억 벌었다…인기 폭발 '슈퍼' 가보니 [고은이의 비즈니스 씬]

입력 2026-08-19 12:21   수정 2026-08-19 13:21

'3만원 스무디'로 月 11억 벌었다…인기 폭발 '슈퍼' 가보니 [고은이의 비즈니스 씬]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베벌리힐스에 있는 프리미엄 식료품점 에러원(Erewhon). 노란 꽃무늬 상의를 입은 한 고객이 냉장 진열대에 손을 뻗어 붉은 과일이 담긴 컵을 꺼냈다. 손질된 수박 작은 한 컵은 8.24달러(약 1만2000원). 과일을 씻고 자르는 수고가 사라지자 평범한 수박이 다시 가격표를 달았다. 가격표 앞에서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고객도 눈에 띄었다. 에러원에서 가격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콘텐츠가 된 셈이다.

몇 걸음 옮기자 가격은 더 비싸졌다. 냉장고를 가득 채운 자체브랜드(PB) 케일 주스 한 병은 14달러(약 2만원), 오렌지주스는 15.50달러(약 2만2000원)였다. 유리병에 담긴 렌틸수프 역시 15.50달러 안팎. 수프와 주스, 케이크 한 조각을 집으면 40.25달러, 약 5만7000원이다.

에러원은 같은 식재료를 한 번만 팔지 않는다. 생채소 코너엔 당근과 케일, 파프리카가 색깔별로 쌓였고, 맞은편 냉장고에는 이를 갈아 만든 주스가 줄지어 진열됐다. 그 옆에서는 수프와 소스, 샐러드가 유리병에 담겨 팔렸다. 즉석 코너에서는 검은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구운 채소와 샐러드를 접시에 담아줬다. 가공도가 올라갈 때마다 가격에는 씻기와 자르기, 조리하기, 메뉴를 고르는 수고의 값이 더해지는 방식이다.

에러원 가격 전략의 정점은 스무디다. 대표 상품인 ‘스트로베리 글레이즈 스킨 스무디’ 한 잔은 21달러, 약 3만원이다. 미국 가구가 일주일 동안 식료품 구매에 쓰는 평균 금액(169달러)의 약 12%다. 2022년 모델 헤일리 비버와 함께 출시한 뒤 SNS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2025년 공개된 판매량은 월 4만 잔에 달했다. 단순 계산하면 스무디 한 종류가 한 달에 약 84만달러(약 11억7000만원)의 매출을 만드는 셈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에러원은 1만2000원짜리 컵과일로 브랜드를 처음 경험하고, 2만원짜리 주스와 수프를 일상적으로 구매하며, 3만원짜리 스무디를 사진 찍어 공유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연 1만5000달러(약 2100만원)을 써야 에러원 고객 최고 등급인 리저브 회원이 될 수 있다. 가격이 상품의 가치를 표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고객을 구분하고 다음 구매로 이동시키는 ‘사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리저브 회원에게는 매일 커피와 페이스트리, 전용 매장 콘시어지를 제공한다. 연 구매액이 5000달러(약 700만원)를 넘는 프리미어 회원은 계산 우선처리와 상시 무료배송을 받을 수 있다.

진열대에 가장 많이 반복된 글자는 상품명이 아니라 ‘EREWHON’이었다. 주스와 수프, 쿠키, 케이크는 물론 쇠고기 포장에도 같은 연분홍색 로고가 붙었다. 국내 유통업체의 PB가 주로 제조사 브랜드보다 저렴한 대안으로 출발했다면 에러원 PB에는 오히려 웃돈이 붙는다. ‘에러원이 골랐다’는 사실 자체가 품질 보증이자 프리미엄이 됐기 때문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매장 뒤편이 아니라 도시 반대편에 있는 중앙주방이다. 에러원은 LA 버넌 지역에 종전보다 다섯 배 큰 6만5000제곱피트(약 6040㎡) 규모 센트럴키친을 운영한다. 베이커리와 주스·파스타 제조실, 연구개발 및 교육용 주방을 갖췄다. 이곳에서 만든 상품은 매일 오전 5시께 각 매장으로 보내진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한국 유통업계에도 비슷한 시도가 나오고 있다. 소비자가 델리를 주말 장보기 상품이 아니라 집 근처에서 해결하는 ‘오늘의 한 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업계에선 에러원의 핵심을 고가 전략 자체가 아닌 ‘고객 경험의 외주화’로 본다. 씻기, 자르기, 조리하기, 메뉴 선택, 대기 시간까지 줄이는 과정마다 가격을 붙이는 방식이라서다. 이 관계자는 "수프와 샐러드, 주스 등 개별 상품을 단순히 확장하는 방식으로는 브랜드 자산이 축적되기 어렵다"며 "제조와 메뉴 개발, 포장 디자인, 매장 경험이 하나의 이름으로 통합될 때 비로소 PB에 프리미엄 가격을 붙일 수 있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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