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남는 게 하나도 없어요. 손은 많이 가서 골병이 듭니다. 김밥을 계속 말다 보니 손가락 관절도 이상해졌어요."</i>
최근 한 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에 김밥집 점주가 남긴 글이다. 또 다른 업주는 "재료 준비는 극악의 체력을 요구한다"며 "뼈 빠지게 팔아도 남는 게 없는데 손님들은 '김밥 재료가 얼마나 된다고 그러느냐'고 무시한다. 4000원짜리 김밥도 비싸다고 욕한다"고 토로했다.
원재료비와 인건비가 동시에 오르면서 동네 김밥집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가격을 올려도 비용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지만 소비자의 가격 저항과 저렴한 편의점 김밥과의 경쟁 때문에 추가 인상도 쉽지 않다. 지난해 전국 분식점 사업자가 1년 새 2600여명 감소하고 주요 김밥 프랜차이즈 매장까지 줄어드는 등 김밥집의 위기는 수치로도 나타나고 있다.
◇ "4000원도 비싸다고 욕해"…팔수록 줄어드는 마진
20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김밥집. 나름 일대에서는 입소문을 탄 곳이지만 최근 김밥 가격을 한 줄당 500원씩 올렸다. 수년간 가격을 유지했지만 식재료 가격이 잇달아 뛰면서 더는 버티기 어려웠기 때문. 점주 A씨는 "가격을 더 올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양을 줄이면 손님들이 찾아오지도 않고 배달도 안 시켜 먹는다"고 한숨을 쉬었다.김밥은 대표적인 노동집약형 음식이다. 밥을 짓고 계란을 부친 뒤 당근과 시금치 등 여러 재료를 일일이 다듬어 볶아야 한다.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김밥을 말고 써는 과정도 대부분 사람의 손을 거친다.
최근에는 여러 줄을 한꺼번에 써는 절단기와 김밥을 말아주는 성형기가 보급되면서 일부 작업은 수월해졌다. 그러나 기계가 대신하는 것은 일부 공정에 그친다. 이러한 설비 가격도 영세 점포에는 부담이다. 현재 온라인 주방기기 판매점에서 업소용 김밥 절단기는 적게는 수십만원, 많게는 수백만원에 달한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쌀 가격은 전년 동기보다 13.2% 올랐다. 계란은 9.0%, 김은 2.5% 상승했다. 지난 18일 기준 당근 소매 가격은 한 달 전보다 14.9%, 시금치는 97.5% 뛰었다. 최저임금도 2021년 8720원에서 올해 1만320원으로 18.3% 올랐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 6월 서울 김밥 한 줄 평균 가격은 3838원으로 1년 전보다 5.9% 상승했다. 주요 외식 품목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이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김밥을 저렴한 서민 음식으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 5년 버티는 분식점 10곳 중 3곳뿐

국세청 국세통계포털 조사 결과, 전국 분식점 사업자 수는 2021년 5만5429곳에서 2025년 4만9026곳으로 줄었다. 4년 연속 감소한 데다 2025년에는 처음으로 5만곳 아래로 내려앉았다. 2026년 6월 기준으로는 4만7863곳까지 감소했다. 최근 들어 감소 폭도 커지면서 분식점 업황 악화가 이어지는 모습이다. 5년 생존율은 약 30%로 국세청이 조사한 100대 생활업종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대형 프랜차이즈도 매장을 줄이고 있다. 김가네의 가맹점·직영점은 2022년 448개에서 2024년 378개로 감소했고, 고봉민김밥은 같은 기간 541개에서 450개로 줄었다. 바르다김선생도 2023년 125개에서 지난해 94개로 축소됐다. 1992년 문을 연 김가네 대학로 1호점마저 지난달 31일 34년간의 영업을 끝냈다.
◇ 외국인은 김밥집 찾는데…특수는 편의점으로

해외에서 김밥의 인기는 높아지고 있다. 최근 해외 커뮤니티 레딧에는 "한국 여행을 왔는데, 딸아이가 김밥을 먹고 싶어 한다. 도대체 어디에서 살 수 있느냐"고 묻거나 "한국에서 주변에서 김밥처럼 가볍게 먹을 음식을 파는 곳을 찾기 은근히 어렵다. 그럴 때는 편의점이 대안"이라고 경험담을 올린 게시물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이렇게 늘어난 수요는 동네 김밥집보다 편의점으로 향하고 있다. BGF리테일에 따르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케이팝 데몬 헌터스' 방영 이후인 지난해 7~8월 CU의 해외 결제 김밥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231% 급증했다. 편의점은 대량생산과 유통망을 앞세워 김밥을 2000~3000원대에 판매한다.
업계 관계자는 "원재료값과 임대료가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김밥처럼 객단가가 낮은 상품은 갈수록 살아남기 어려워지고 있다"며 "뚜렷한 경쟁력을 갖춘 곳이 아니면 상당수 수요가 편의점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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