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을 눈앞에 둔 한 팀장의 인사가 하루 만에 뒤집혔다. 팀 합류를 원했던 후배가 '배신'했기 때문이다. 이 후배는 과거 힘든 상황에 놓였다면서 팀을 옮기고 싶다고 요청했다. 팀장은 이를 받아줬지만 이후 후배가 새로 부임한 상사와 함께 팀장을 감사팀에 신고했다.잘못을 입증할 뚜렷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음에도 회사 인사위원회는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이 팀장은 지방으로 발령 났고 팀장직도 내려놔야 했다. 회사 출범과 동시에 직접 맡았던 프로젝트도 자신을 신고한 상사에게 넘겼다.
이 팀장은 리멤버 커뮤니티를 통해 "하루 전까지만 해도 '네가 진급할 것이다. 걱정말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제 후배랑 짜고 친 판이었다"고 털어놨다. 이 글이 순식간에 조회수 3만회에 육박한 가운데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댓글은 "미련을 버리고 이직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직장인들은 소위 '사내 정치'에 학을 뗐다. 24일 한경닷컴이 리멤버 리서치와 직장인 52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이 같은 인식이 확인됐다. 조사는 경력 3~9년차이면서 기본급 4000만원 이상인 직장인 대상으로 이뤄졌다.
이들에게 '연봉을 현재보다 30% 이상 올려줘도 절대 입사하지 않을 회사의 조직문화'를 물었더니 응답자 중 40%는 '사내 정치와 줄서기가 우선시되는 환경'을 꼽았다. 이어 '사업 모델의 성장성 정체' 18.8%, '불투명한 평가·보상 시스템' 16%, '권위적인 사내 문화' 13.1%, '마이크로 매니징·톱다운 의사결정' 10.4% 순이었다.
이직 과정에서 중요하게 보는 기준은 다르더라도 사내 정치를 바라보는 인식은 같았다. '실질적 권한과 성장'을 중시한 281명 가운데 45.6%(128명), '기업 네임밸류'를 중시한 239명 중 33.5%(80명)는 '사내 정치'를 1순위 기피 요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이 게시글에 대한 반응 중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댓글은 정면 반박하는 내용이었다. 댓글 작성자는 "역학관계를 귀신같이 파악하고 태클 안 걸리는 방법을 정확하게 알고 마찰을 사전에 '제로'로 만들어도 정치질 휘말려서 프로젝트 취소당하는 게 인생이다. 방어 운전한다고 사고가 안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라고 꼬집었다.
한 22년 경력의 부장급 직장인은 그간 사내 정치에 나선 경험이 없다면서 "내 일만 열심히 했을 뿐인데 벌써 세 번 라인이 바뀌었다"고 털어놨다. 부서 이동과 인사 발령이 반복되는 사이 '대학 라인', '이사 라인', '부사장 라인'이란 꼬리표가 차례로 붙었단 설명이다. 그는 "내가 선택한 라인은 없고 그냥 남들이 레이블을 붙여줬다"고 했다.
'정치'를 지목한 응답자들은 "줄타기·사내 정치, 일하는 척만 잘하는 사람들이 성과를 가져가면 일을 하고 싶은 의욕이 사라진다", "직원 간 정치질 금지가 필요하다", "라인으로 연봉 인상을 결정하는 것을 고쳐야 한다"는 등의 반응을 나타냈다.
사내 정치를 기업 내 암(癌)으로 볼지, 조직 역학 구도를 읽어내는 생존능력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다만 경력직 설문에선 '연봉을 30% 더 준다'고 해도 10명 중 4명꼴로 사내 정치·줄서기가 우선인 회사를 피하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보였다.
경력직들은 사내 정치를 피하기 위해 채용공고를 특히 주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리멤버 관계자는 "사내 정치가 자라는 자리는 대체로 역할과 책임, 평가 기준이 불분명한 곳인데 경력직은 그 신호를 공고에서 먼저 읽어낸다"며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문서로 정해두지 않는 조직이라면 결국 목소리가 큰 사람 쪽으로 굴러갈 것이라고 추론한다"고 귀띔했다.
김대영/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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