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질문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 120여 년 전 영국 법원의 유명한 Krell v. Henry 판례가 있다. 1902년 런던, 국왕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 행렬이 6월 26일과 27일 이틀간 Pall Mall을 지난다는 발표가 있었다. 60년 만의 대관식(coronation)이었으니 도시 전체가 들썩였다.
Pall Mall에 아파트를 소유한 Paul Krell은 자기 아파트를 임대하기로 했고, C. S. Henry는 바로 그 대관식 행렬을 보기 위해 이틀간 그 아파트를 빌리기로 했다. 임대료는 75파운드, Henry는 계약 당시 25파운드를 선지급했다. 계약서 자체에는 "대관식 행렬을 보기 위해 임차한다"는 문구가 없었고 문언만 보면 특정 날짜의 단순한 단기 임대차였다. 하지만 임차 기간이 행렬 예정일과 정확히 일치했고, 빌린 방 또한 행렬이 지나가는 바로 그 거리에 있었다.
그런데, 대관식을 앞두고 국왕이 중병에 걸리며 행렬이 무기한 연기됐다. 아파트는 훼손되지 않았고 사용도 여전히 가능했다?즉, 이행불능(impossibility)은 발생하지 않았다. Henry는 잔금 지급을 거절했고, 선지급한 25파운드의 반환까지 구했다.
법원은 Henry의 손을 들어주었다(Krell v. Henry [1903] 2 K.B. 740). 쟁점은 "이행이 가능한가"가 아니라, "계약의 실질(substance of the contract)이 무엇인가"였다. 법원은 계약 문언을 넘어, 체결 당시 양 당사자가 공유하고 있던 주변 사정을 근거로 대관식 행렬의 관람이 이 계약의 기초(foundation)였다고 보았다. 대관식이 열리지 않은 이상, 그 기초는 소멸했고, Henry의 지급 의무는 면제된다고 판단하였다.

Krell v. Henry 사건에서, 법원은, 방은 여전히 사용할 수 있었지만, 그 방을 빌린 핵심적인 목적이 사라졌다면 계약을 그대로 이행하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오늘날 계약법에서 이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개념이 바로 "Frustration of Purpose(계약상 목적 달성의 좌절)" 법리다.
흥미로운 것은 이 원리와 이행의 실행 곤란성(impracticability) 원리의 관계다. 후자가 이행을 제공해야 하는 당사자를 보호한다면, 전자는 그 대가를 지급해야 하는 당사자를 보호한다는 점에서 서로 짝을 이룬다. 다만, 이 법리가 인정하는 "목적"은 당사자 한쪽이 마음속으로 품은 개인적 동기(motive)와는 구별된다.
"돈을 벌려고 계약했는데 벌지 못했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목적이 계약 체결 당시 양 당사자에게 "공유된 계약의 기초"로 인식되었는가이다. Krell에서 법원이 주목한 것도 Henry 혼자만의 바람이 아니라, 임대 기간·물건의 위치·임대 경위와 같은 객관적 정황으로부터 확인되는 공유된 전제였다.
이 구별이 "Frustration of Purpose(계약상 목적 달성의 좌절)"가 "손해를 본 당사자의 도피처"가 아니라 엄격한 요건을 가진 법리로 만든 것이다.
대법원은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계약 해제·해지를 계약준수 원칙에 대한 예외로 보면서, ① 계약 성립 당시 당사자가 예견할 수 없었던 현저한 사정변경이 발생하고, ② 그 변경이 당사자의 책임 없는 사유로 발생했으며, ③ 계약 내용대로 구속력을 인정하는 것이 신의칙에 현저히 반하는 경우에만 이를 인정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정" 역시 일방의 주관적 사정이 아니라 계약의 기초가 된 객관적 사정이어야 한다. 대법원은 특히 "계약 당시 의도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명확히 선을 긋는다. 토지 매수인이 그 토지에 음식점 등을 건축하려 했으나 행정상의 사정으로 건축이 어려워진 사건에서, 대법원은 그 목적이 계약의 객관적 기초였다고 볼 수 없다면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07. 3. 29. 선고 2004다31302 판결).
개인의 주관적 목적과 계약의 객관적 기초를 엄격히 구별한 것이며, 이 기준은 이후 판례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되어 지금까지 살아 있는 법리로 기능하고 있다. 결국, 법체계는 다르지만, 영미법의 원리와 우리 민법이 던지는 질문은 놀랍도록 닮았다. 즉, 계약의 원하던 결과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계약을 깨려는 것인지, 아니면 계약을 지탱하던 전제 자체가 무너진 것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Frustration of Purpose(계약상 목적 달성의 좌절)"의 법리는 계약준수 원칙(pacta sunt servanda)의 예외이기에, 법원은 이를 쉽게 인정하지는 않는다. 사업이 예상보다 덜 이익이 났다거나 이행이 다소 불리해졌다는 정도로는 부족하며, 당사자가 애초에 감수하기로 한 통상의 사업위험과 계약의 전제가 된 본질적 사정의 소멸은 구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법리가 필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계약은 미래를 대상으로 하고, 누구도 미래를 완벽히 예측할 수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 문제를 현실로 끌어왔다. 공연·전시·스포츠 경기·국제회의·호텔업에서는 체결 당시 당연했던 전제가 이후 취소되거나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인공지능, 기후변화, 지정학적 갈등, 공급망 재편, 정부 규제처럼 계약 체결 시점에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계약서를 잘 쓴다는 것은 의무와 책임을 촘촘히 나열하는 것을 넘어,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계약의 목적이 좌절된 것으로 볼지, 그 위험을 누가 부담할지, 계약을 변경하거나 종료할 수 있는지를 미리 설계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Krell v. Henry의 진짜 교훈은 "목적이 사라지면 계약을 깨도 된다"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 목적이 한쪽의 희망이었는지, 아니면 양 당사자가 공유한 계약의 기초였는지를 먼저 구별하라는 것이다.
120여 년 전 대관식은 끝났고 그때의 런던도 사라졌다. 하지만, 계약의 목적과 구속력 사이에서 법이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느냐는 질문은, 계약이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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