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발등에 불 떨어진 한국…'中에 반도체·車·조선 먹힐 판'

입력 2026-08-25 18:03   수정 2026-08-26 10:45

이 기사는 8월 25일 오후 4시34분 한국경제신문의 투자 정보 유료 플랫폼인 '한경 프리미엄9'(www.hankyung.com/premium9)에 게재됐습니다. 한경 프리미엄9을 구독하시면 더 많은 단독 기사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일본 도시바를 제치고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에 오른 것은 사업에 뛰어든 지 10년 만인 1993년이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기업의 과감한 투자를 앞세운 ‘패스트 팔로어’ 전략이 먹힌 결과다. 한국은 반도체를 비롯해 자동차와 조선, 철강 산업 등을 차례로 일궈내며 제조 강국으로 우뚝 섰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중국이 이 성공 방정식을 그대로 써먹고 있다. 속도는 더 빠르다.


25일 시장조사업체 마크라인즈에 따르면 중국을 뺀 글로벌 전기차 시장(58개국)에서 중국 브랜드(완성차 그룹 25개)의 점유율은 올 상반기 22.2%에 달했다. 4년 새 세 배가 됐다. 판매량은 2022년 21만5000대에서 지난해 98만3000대로 4.6배로 늘었다. 올해 상반기에는 75만7000대를 팔아 연간 150만 대 돌파가 유력하다.

신흥국은 이미 접수했다. 브라질(93.4%)과 인도네시아(91.6%), 태국(90.8%)에서 판매된 전기차 10대 중 9대가 중국 차다. 유럽 점유율도 2022년 8.7%에서 17.5%로 두 배가 됐다. 100% 관세 장벽을 세운 북미(1.9%)를 빼면 뚫리지 않은 시장이 거의 없다. 한국 점유율(8.0%)도 2024년 0.8%에서 2년 새 열 배로 높아졌다.

전선은 전방위로 넓어지고 있다. 중국 조선사는 세계 선박 수주의 72%를 차지하고 있다. 반도체에선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국산보다 30%가량 싼 D램으로 물량을 빼앗으며 첨단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진입까지 노린다. 디스플레이는 한국이 절대우위를 지켜온 정보기술(IT)용 8.6세대 라인 투자를 늘리고 있다.

중국 기업은 이제 추격을 넘어 세계 시장을 호령하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의 천문학적 보조금을 등에 업고 거대 내수시장을 테스트베드로 삼은 덕분이다. 반도체와 조선 호실적 착시에 갇힌 사이 70년 ‘제조 강국 코리아’의 근간이 잠식당하고 있다는 경고음이 나온다.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미국의 대중국 관세가 사라지면 자동차와 반도체, 조선 등 한국 주력 산업이 한꺼번에 잠식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흥국 점령한 中전기차, 현지 브랜드·유통망 빌려 유럽까지 잠식
유휴공장 인수, 생산기지로 활용…자율주행·SDV 등 기술 '역수출'
이탈리아의 유력 자동차 딜러사인 로카우토두에는 60년 넘게 푸조와 시트로엥 등 유럽 차만 고집했다. 이 업체 전시장에 중국 전기차 업체 립모터의 차량이 자리한 건 2년 전이다. 푸조 모기업인 스텔란티스가 2024년 5월 립모터와 합작사를 세운 뒤 판매 수익을 나누는 대가로 유통망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2년이 흐른 지난 3월 립모터의 소형 전기차 T03는 이탈리아에서 판매량 기준 3위에 오르는 이변을 낳았다. 중국 차의 인기가 치솟자 이 딜러사는 지리자동차와 지커 차량도 팔기 시작했다.

중국 전기차가 자국 밖 글로벌 전기차 시장(58개국)의 22.2%를 차지한 건 가격이 저렴해서만은 아니다. 현지 업체의 유통망과 브랜드를 빌려 쓰고 유휴 공장까지 재활용하는 정교한 전략을 앞세워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최근엔 자율주행 등 기술력을 무기 삼아 신흥국을 넘어 전통 완성차업체가 지켜온 시장까지 뚫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년 새 점유율 껑충… 선진국도 잠식
중국 차의 무서운 점은 시장 잠식 속도다. 자국 브랜드 입지가 탄탄하던 이탈리아에서도 중국 전기차 점유율은 작년 말 22.7%에서 올 상반기 42.1%로 6개월 새 19.4%포인트 치솟았다. 호주(42.1%→54.8%)와 멕시코(45.1%→55.5%)도 같은 기간 점유율이 10%포인트 넘게 올랐다. 신흥 시장은 이미 장악을 끝냈다. 브라질에선 비야디(BYD)가 현지 진출 3년 만에 13년 업력을 지닌 현대자동차를 제치고 전체 완성차 판매 4위에 올랐다.

중국의 기본 무기는 저렴한 가격이다. 원재료 채굴부터 배터리 등 부품 생산, 완성차 조립까지 수직 계열화를 완성한 덕에 경쟁사보다 생산 단가를 20~30% 낮췄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여기에 현지 시장의 거부감을 지워내는 전략을 앞세워 잠식 속도를 높였다.
◇유통망 파고들고 유휴 공장도 매입
먼저 파고든 것은 유통망이다. 중국만큼 싼 전기차를 내놓기 어렵다고 판단한 유럽 업체들은 판매 수익을 공유하는 대가로 중국에 판매망을 내주기 시작했다. 스텔란티스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립모터와 글로벌 판매 합작사(스텔란티스 지분 51%)를 세운 뒤 시트로엥·푸조 대리점 850여 곳에 립모터 차량을 깔았다.

브랜드를 빌려 쓰는 ‘배지 엔지니어링’도 위력을 발휘했다. 중국산 차에 대한 소비자의 저항감을 현지 브랜드로 지우는 전략이다. 중국 체리자동차는 스페인 완성차 브랜드인 에브로와 합작사를 세운 뒤 2024년부터 스페인 바르셀로나 공장에서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 체리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티고’에 적용된 플랫폼과 기술에 에브로의 상표만 얹었다. 네 가지 모델로 출시된 이 차량은 지난해에만 1만4000대가량 팔렸다.

다른 자동차 회사가 쓰던 현지 공장 부지를 공략하는 것도 이들의 전략이다. 거점을 마련하는 데 드는 투자비와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다. BYD는 2021년 미국 포드가 철수한 브라질 카마사리 공장 부지를 2023년 사들인 뒤 2년 만인 지난해 10월 새 공장을 준공했다. 둥펑자동차도 프랑스 렌에 있는 스텔란티스 유휴 공장을 활용해 현지 조립에 들어갔다. 지리차는 포드의 스페인 유휴 공장을 인수해 자사 전기차를 생산할 계획이다.
◇자율주행 등 기술 역수출
정부 차원의 철저한 품질 통제도 공습을 뒷받침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올해 1월부터 전기차 수출 허가제를 도입했다. 기술력과 사후서비스(AS) 역량이 검증된 업체에만 수출 허가를 내주고 현지 AS센터 구축을 의무화한 게 골자다.

더 위협적인 건 자율주행 등 미래 모빌리티 기술이다. 최근 폭스바겐은 샤오펑의 자율주행 시스템을 자사 차량에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아우디도 상하이자동차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사들였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전기차 진영은 가격 경쟁력을 넘어 현지 유통망 흡수와 자율주행 기술력을 앞세워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며 “이제는 유럽 본토와 주요 선진 시장에서도 기존 완성차 생태계를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길성 기자/베이징=김은정 특파원/김우섭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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