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영대학원(MBA) 과정에서 창업경영(Entrepreneurshp)의 비중이 날로 커지고 있다. 경영학 교과과정이 자리가 잡힌 대형 제조기업을 중심으로 구성된 데다 그 내용도 거의 상식이 되어버려서 자칫 그럴듯한 단어나 늘어놓는 ‘회사공무원’이 되기 딱 좋다는 반성도 있고 언제든 내 사업을 해보자는 학생들의 수요도 반영된 면이 있다.
전략계획이나 사업분석은 직접 사업계획을 만들고 발표-토론할 때 그 의미가 살아난다. 자금조달과 투자집행은 주주계약 하나 잘못 짜면 회사를 통째로 빼앗기는 절실한 상황을 생각해야 실력이 는다. 한심한 경영학 책에는 ‘성장’이 당연한 명제지만 창업을 생각해보면 빨리 돈을 뽑아낼지 성장에 집중할지 운명을 건 도박이 필요하다.
별다른 내용도 없이 ‘창업’ 제목 붙이고 경영학 수업자료 재활용해서 ‘창업지원정책’ 자금을 얻어쓰고 ‘창업은 벤처이고 IT’라는 미신이 대세가 되어버린 부끄러운 현실이 창업경영에 대한 사랑을 가로막고 있지만 그나마 남은 역할도 인공지능에 뺏길 처지에 있는 경영학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인수창업(Entrepreneurship through Actuisition)은 가장 인기 있는 과목이다. 맨 바닥에서 기업을 일구는 도전은 당연히 훌륭하지만 경영진으로서 혹은 금융전문가나 기술자로 사회적 기반을 만들고 적절한 기업을 인수해서 새롭게 가치를 만들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제품·기술 아이템보다 경영능력이 더 나은 경영대학원 출신들의 자연스러운 선택이기도 하다. 100세 시대에 인생 2~3모작을 위해서나 기업승계나 구조조정에 대한 해결책으로도 의미가 있다.
새로운 기술과 제품·서비스로 사업을 시작하는 위대한 도전도 있지만 일정한 시장 기반을 확보한 기업을 인수하고 경영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인수창업도 의미 있다. 디지털전환을 통한 사업모델 변화, 해외를 포함한 시장과 공급망의 개편, 재무구조 재편이 대표적인 방법이다. 창업과 인수합병의 재무적·법률적 틀이 그대로 적용되는데 인수형 창업에 특화해서 자금을 모아 지원하는 ‘서치펀드(search fund)’가 있다.
마이클은 유수의 경영대학원을 마치고 컨설턴트를 거쳐 빅테크 기업의 본부장으로 10년째 일하고 있다. 연봉 100만달러와 개인자산 1000만달러, 변호사인 부인과 함께 경제적 안정을 갖춘 마당에 이제 ‘나의 사업’에 도전하고 싶다. 맨땅에서 시작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에는 그의 능력과 사회적 관계로 훨씬 더 좋게 만들 회사들이 많다.
가업승계로 고민 중인 고향 타운의 맥주회사는 유럽 브랜드에 붙이면 3배는 키울 수 있다. 변호사 부인이 자문하는 핀테크 기업은 동업자들 사이의 갈등으로 헤매다 부도 직전에 있는데 벤처캐피털 지분을 인수하고 재무구조를 보완하면 해볼 만하다. 인공지능과 디지털전환의 능력을 바탕으로 IT 서비스 부문을 독립시킬 수도 있다.
맨땅 창업이 제품·기술 전문성이 절대적이라면 인수형 창업은 대상기업을 찾아 평가·검증하고 사업모델과 재무구조를 바꾸는 전략과 금융의 비중이 크다. 맥주 회사에는 마이클의 IT와 금융의 역량이, 핀테크 회사에는 전략적 전문성이 자산이 된다. 투자와 대여를 하는 서치펀드나 그 전주들도 당연히 천사는 아니고 성과에 따라 지분을 추가로 받아(vesting) 경영권을 확보하는 과정은 권력투쟁이 따로 없다. 그러나 나름 실전으로 단련된 마이클에겐(일부 투자하고 자문도 해주는 부인도 있어서) 해볼 만하다.
인수창업 분야에서는 몇 가지 금언이 있다. 첫째, 하루아침에 빅테크가 되는 화려한 성공을 경계하고 푸석푸석하고 먼지 쌓인 회사를 잘 바꿔서 확실한 성과를 내라고 한다. 안타를 쳐야 다음 타석이 있고 홈런 기회도 있다는 얘기다. 둘째, 날고기는 투자자보다 더 무서운 것이 현장의 일하는 사람들이다. 숨은 부실, 거래처가 파놓은 함정 등 심란한 속사정은 실사로 다 찾을 수 없고 이분들이 풀 수 있다. MBA나 컨설팅에서 배웠다고 마구 휘두르면 순식간에 망한다. 셋째, 좋은 인수 대상을 찾아 성사시키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다. 섣불리 나섰다 딜 시한에 쫓겨 부실기업을 떠안을 수도 있다.
창업경영은 불확실성과의 싸움이다. 훌륭한 기술과 사업모델이라도 세상이 아직 모르니 돈도 인재도 모이지 않고 시장도 열리지 않는다. 이 간극을 메워 기회를 실현시키는 것이 창업경영자의 역할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위기와 도전의 성격이 달라진다. 애써 키운 회사를 지키지 못하고 떠나는 슬픈 스토리인지, 적절한 시점에 성과를 얻고 더 잘할 사람에게 넘기는 성공신화인지는 보기 나름, 하기 나름이다.
성공신화는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이어달리기로 이뤄지는데, 인수창업은 ‘경영과 금융의 능력’이 필요한 시점에 뛰어들 수 있는 기회다. 자리 잡힌 기업을 인수해서 변신시킨다면 400m 계주를 1600m 올림픽 허들로 만드는 셈이다.
최고를 외쳐대는 대기업의 인재들은 왜 이런 기회를 만들지 않을까? 회사만 한 대안이 없어서, 살아남으려 버티다 보니 너무 늦어버려서, 눈치보며 참다보니 무디고 멍해져서…. 심란한 사연은 많다. 찾아보면 성공사례도 있다. 만만한 중소기업을 노리다 빈틈을 타서 흔들고 인수하는 악덕사례도 있지만 가업승계를 지원한다며 나랏돈 퍼주는 방식보다는 유능한 경영자의 인수창업이 낫지 않을까.
쓸데없는 과목들을 외워대며 심신이 피폐해지는 학교 공부와 복종심을 핵심 역량으로 회사공무원으로 삭아가는 인생이 30년 넘게 이어지며 창업의 정신력이 쪼그라드는 심란한 현실이 걸림돌이지만 ‘성과급 X억’이 낯설지 않고 꼰대박멸이 화두가 된 더 좋은 나라에선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용기만 있다면.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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