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수입 700만원?”…‘삐에로 남친’ 사연에 2030 열광한 이유

입력 2026-08-29 07:00   수정 2026-08-29 08:09

[비즈니스 포커스]


‘일삐 모자’, ‘키삐 모자’.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이벤트 업체 ‘피오엔터테인먼트’ 사무실 분장실에는 생소한 이름표가 붙은 모자들이 빽빽하게 놓여 있었다. ‘일삐’는 일반 삐에로, ‘키삐’는 2m 높이의 발판(스틸트)을 신는 키다리 삐에로를 뜻하는 업계 용어다. 이곳은 주말이면 빨간 분장을 하고 전국 각지로 흩어지는 삐에로 8인이 집결하는 공간이다.
‘얼굴 빨간 청년’들의 반전 수입
최근 2030세대에게 삐에로라는 직업이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이름부터 생소한 이 직업이 갑작스레 부각된 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하나가 순식간에 퍼지면서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삐에로 남친이랑 결혼할 수 있어?” 결혼을 생각 중인 남자친구의 직업이 삐에로인데 가족의 반대에 부딪혔다는 사연이었다. 20대인 남자친구가 삐에로 일로 모은 돈만 2억원에 달했지만 아버지는 단호했다. “노후에도 삐에로로 먹고살 수 있겠느냐”는 이유였다.

댓글 수백 개가 삽시간에 달렸다.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지인 중에 ‘대박삐(에로)’가 있는데 월 700만원씩 통장에 꽂힌다.”
“코로나 같은 대형 악재만 없으면 평생 안정적인 직업이다.”

증언이 잇따랐다. 삼촌이 삐에로에서 품바로 전향해 고급 외제차를 타고 출퇴근한다는 사연부터 학교·아파트 행사는 한번 잘해두면 입소문으로 예약이 연달아 들어온다는 유아교육 종사자들의 입증까지 이어졌다.

화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배경은 딱 하나였다. 대중의 편견을 비웃는 듯한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월 소득이다.

“거래처가 꾸준히 확보된 경우라면 평균적으로 일반 회사원의 2배 정도는 벌 수 있습니다.” 피오엔터테인먼트 박건우 대표는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된 고소득 소문이 결코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임금근로자 월평균 임금은 320만5000원이다. 베테랑이나 탄탄한 업체를 끼고 활동하는 삐에로들은 월 700만원 이상의 고수익을 거머쥐는 셈이다.



‘삐에로’라고 하면 영화나 테마파크 속 먼 존재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한 번쯤 주변에서 마주쳤을 것이다. 풍선을 불어주고 나눠주는 키다리 삐에로. 지자체 축제나 대규모 지역 행사뿐만 아니라 아파트 주민 축제, 유치원 및 어린이집 행사, 초등학교 운동회, 대형마트 개점 행사 현장에는 어김없이 삐에로가 등장한다. 최근에는 개인적인 키즈카페 대관 파티, 아기들의 돌잔치, 심지어 독특한 연출을 원하는 결혼식장 로비나 개별 생일파티에까지 삐에로를 부르는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행사장의 분위기를 한순간에 반전시키고 멀리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아 인파를 모으는 ‘호객과 흥행의 마술사’ 역할이다.

박 대표가 처음 이 업계에 발을 들인 계기 역시 남다른 ‘벌이’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삐에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그는 당시 일반 아르바이트 시급보다 2~3배 이상 높은 점에 매료됐다. 박 대표는 “10년 전 당시 아르바이드 시급이 6000원 정도였는데 1만2000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2026년도 최저시급이 1만320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삐에로 현장의 시간당 단가는 지금도 압도적이다. 실제 아르바이트 채용 시장에서 키다리 삐에로 공고의 시급은 2만5000원 선에 형성돼 있다. 4시간 일하면 10만~15만원을 버는 구조로 법정 최저시급의 2.5배에 달한다. 행사 한 건당 정해진 기본 단가가 높은 데다 실제 공연은 짧고 굵게 진행되어 노동 시간 대비 수입의 가치가 매우 높다. 박 대표 역시 높은 페이와 현장의 매력에 이끌려 평일 회사원, 주말 삐에로 아르바이트 생활을 거치다 결국 8명의 삐에로 팀원을 이끄는 청년 사업가로 올라섰다.

물론 모든 삐에로가 고소득자는 아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대박삐(에로)’가 있고 그렇지 못한 삐에로도 많다. 소득의 격차를 가르는 것은 계절(날씨)과 거래처다.

삐에로 업계의 성수기는 여름 장마철을 제외한 봄부터 가을이다. 행사의 달인 5월과 10월은 극성수기다. 날씨가 곧 매출과 직결되는 야외 노동의 숙명이다.

행사 자체가 드문 비수기엔 수입이 곤두박질친다. 특히 개인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경우 확보한 거래처 수에 따라 수입 격차가 극심하게 벌어진다.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신규삐’라면 알바 수준에 그친다. 코로나19 사태 때는 이벤트 업체 대다수가 폐업하며 참혹한 고통을 겪었다. 지금도 경기에 민감한 이벤트 산업 특성상 진입장벽은 낮지만 생존 경쟁은 치열하다. 박 대표는 “매년 새로운 업체들이 많이 생기는 만큼 사라지는 곳도 많다”며 “경기침체기에는 일감 자체가 확 줄어든다”고 전했다.




삐에로 품위유지비도 있다. 요술풍선을 매일 몇백 개씩 소모하고 피부 트러블을 줄이는 고급 분장 도구는 세트당 10만원을 훌쩍 넘는다. 키다리 삐에로의 핵심 장비인 스틸트는 개당 15만~20만원 상당이며 의상은 기성복이 없어 전량 맞춤 제작해야 한다. 여기에 전국 현장을 누비는 교통비까지 더해지면 유지비용도 상당하다. 고수익의 이면에 비수기의 불안정성과 끊임없는 현장 투자가 함께 공존하는 구조다.
MC부터 벌룬쇼, 품바·연예인까지
대신에 갈래 길이 다양하다. 업계 관계자들은 “삐에로로 처음 행사를 접한 뒤 여러 분야로 뻗어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무대에서 단련된 소통 능력과 현장 경험을 살려 다양한 갈래로 직업적 확장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실제로 행사를 진행하는 MC를 겸업하거나 직접 이벤트 기획 대행사를 차리는 전직 삐에로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경력 10년 차 삐에로이자 현재 행사 기획 엔터테인먼트사 운영을 겸하는 박 대표가 대표적인 사례다. 연차가 쌓인 베테랑 중에는 풍선 아트를 발전시켜 커다란 용이나 봉황 등 대형 조형물을 무대에서 시연하는 ‘벌룬쇼’ 아티스트로 넘어가기도 한다.

또 다른 유력한 선택지는 ‘각설이·품바’다. 키다리 삐에로의 경우 무거운 발판(스틸트)을 장시간 타야 하므로 체력 소모가 크고 무릎 등 관절에 무리가 가기 쉽다. 이론상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다지만 현장에서 활동하는 최고령 삐에로가 대개 50대 초반에 머무는 이유다. 이 시기가 오면 자연스럽게 대중과 호흡하는 결이 비슷한 품바 공연으로 눈을 돌리곤 한다.

박 대표는 “전통시장 행사에서는 삐에로보다 품바 섭외 문의가 훨씬 많다”며 “나이가 더 들면 각설이나 품바도 한번 해볼까 싶다”고 농담 섞인 계획을 밝혔다. 실제로 40대 중후반에 삐에로에서 품바로 전향해 시골 장터와 지역 축제를 누비며 고수익을 올리는 사례도 흔하다. 이들은 노인회관 공연으로 비수기인 겨울철에도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별도의 부가 수익까지 창출한다.

삐에로 출신으로 화제를 모은 개그맨 이용주. 유튜브 캡처

대중 앞에서 즉흥적으로 호응을 유도하고 분위기를 띄우는 직업 특성상 연예계로 진출하는 경우도 잦다. 개그맨 이용주, 허경환, 이은지를 비롯해 배우 윤경호, 박해수, 류승수 등 대중에게 친숙한 연예인 상당수가 과거 삐에로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들을 두고 우스갯소리로 ‘엘리트 삐(에로)’, ‘정통 삐(에로) 코스’를 밟았다고 말한다. 무대 위에서 관객과 맨몸으로 부딪치며 쌓은 삐에로 시절의 내공이 결국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탄탄한 자양분이 된 셈이다.
AI 시대 생존자?
연예계 진출이나 고소득 프리랜서라는 매력 외에도 최근 2030세대와 취업준비생 사이에서 삐에로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데는 또 다른 시대적 이유가 있다. AI와 로봇 기술이 일자리를 위협하는 시대에 살아남을 ‘대체 불가능한 직업’이란 재평가다.

생성형 AI의 발전으로 화이트칼라 사무직은 물론 정교한 숙련도가 필요해 AI 안전지대로 꼽히던 현장 기술직마저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대표적 기술직인 건설 현장의 미장공이나 도배사조차 최근에는 로봇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AI와의 가상 연애가 현실화되고 인간형 로봇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는 만큼 삐에로라는 직업 역시 AI와 로봇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체감하는 장벽은 단단하다. 단순히 풍선을 불어 형태를 만드는 일이라면 로봇이나 자동화 기계도 해낼 수 있다. 하지만 풍선 아트를 위한 손끝의 미세한 감각과 2m 높이의 스틸트 위에서 균형을 잡는 신체 기술 외에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서적 교감이 집약돼 있다. 낯가리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천천히 다가가거나 떼쓰는 아이의 기분을 상황극으로 달래는 일은 단순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이 대처하기 힘든 감정 노동이자 실시간 스킨십이다.

물리적 제약도 만만치 않다. 불특정 다수가 몰리는 야외 행사장에서 돌발적으로 뛰어드는 아이들을 피하며 높은 곳에서 중심을 잡아야 하는 현장 안전성과 촉각적 스킨십은 로봇이 단기간에 넘기 힘든 벽이다.

박 대표 역시 AI가 인간 삐에로의 자리를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그는 “아이들마다 성향이 전부 다르다”며 “처음에 겁을 먹고 낯설어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먼저 장난을 치며 하이파이브로 다가오는 걸 좋아하는 아이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로봇이 기계적으로 다가가 풍선을 접어주는 방식으로는 삐에로가 현장에서 전달하는 특유의 따뜻함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결코 만들어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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